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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백운포에서 본 붉은 귀 거북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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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부산의 백운포라는 곳에서 낚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낚시꾼들 사이에선 '낚시 포인트'(고기가 잘 잡히는 곳)로 유명한 곳입니다. 낚시를 잘 모르지만 '낚시광' 후배를 따라 저도 자리를 잡고 릴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한창 낚시를 하던 중 저는 신기한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눈앞에 팔뚝만한 거북이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야생거북이라고 생각한 저는 무척 놀라워하며 그 장면을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옆을 보니 낚시를 하던 아저씨들이 거북이를 건져내는 게 보였습니다. 갈고리 모양의 도구를 이용한 이른바 '홀치기' 낚싯대로 거북이를 끌어올린 것이었습니다. 주변 낚시꾼들은 삼삼오오 모이더니 거북이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겁먹고 한껏 움츠린 거북이를 뒤집어 뱅뱅 돌리기도 하고 심지어 등껍질 위에 올라타기까지 했습니다. 전 안 되겠다 싶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들은 제가 핸드폰을 든 모습을 보더니 눈치가 보였는지 괴롭히던 걸 멈췄습니다.

붉은 귀 거북을 괴롭히는 낚시꾼들
 붉은 귀 거북을 괴롭히는 낚시꾼들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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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후 거북이 근처로 가봤습니다. 거북이는 주차된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떨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주변에 있던 아저씨들은 저를 보자 다짜고짜 "이건 교란종"이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무당들이 종교적 이유로 방생한 거라며 구청에 가져다 주면 오히려 돈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조금 괴롭히고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는 얘기인 듯했습니다.

주차된 차 밑에서 떨고 있는 붉은 귀 거북
 주차된 차 밑에서 떨고 있는 붉은 귀 거북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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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생김새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아저씨들 말대로 '붉은 귀 거북'이라고 불리는 생태계 교란종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북이를 방치할 순 없었습니다. 아무리 교란종일지라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이 앞서서였습니다. 그대로 두면 지나가는 차에 밟히거나 사람들의 장난감이 될 게 뻔했습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잠깐 부산에 들른 제가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해답을 얻으려 전 부산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으신 분은 매우 귀찮은 목소리로 교란종이니 그냥 두라며 통화를 빨리 끊으려 했습니다. 동물보호협회조차 교란종은 생명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뜻밖의 현실을 마주한 것입니다.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를 검색해 보면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생태계 교란종 관리'라는 문구가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를 검색해 보면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생태계 교란종 관리’가 나온다.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를 검색해 보면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생태계 교란종 관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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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보면 교란종은 생명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거북이 위에 올라타던 낚시꾼들, 전화 받기 귀찮아하던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관련자뿐만이 아닙니다. 기사들을 보면 교란종을 없애지 못해 안달입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단어로 기사를 검색해 보면 '퇴치', '제거'라는 단어가 제목에 꼭 들어갑니다. 교란종에 대한 인도적 처리나 교란종을 들여 온 우리 인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서울대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뉴트리아는 항문을 꿰매서 퇴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태계 교란종도 엄연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생명'은 기본적으로 어떤 종류든 존중받아야 합니다. 독일 동물보호법 제1조 1항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을 해할 권리가 인간에겐 없다.'

선진국과 달리 동물학대를 주로 '재물 손괴죄'로 처리하는 우리나라이기에 '합리적 이유'라는 부분에서 트집을 잡힐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태계 교란 방지'가 '합리적 이유'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생태계 교란'에 대한 진짜 죄는 동물이 아니라 그들을 들여온 인간에게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뉴트리아는 모피용, 식용으로, 붉은 귀 거북은 애완용으로 국내에 도입됐죠.

생태계 교란종도 생명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많은 생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되도록 인도적으로 교란종을 처리할 방법을 찾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아무런 죄의식 없이 교란종을 괴롭히던 시민들의 행동도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붉은 귀 거북의 처리를 귀찮아하던 동물보호협회 활동가의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당시 백운포에서 낚시를 하며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거북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북이를 바다로 다시 보냈습니다. 다시 바다로 던져진 거북이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다시 어딘가로 헤엄쳐 가는 거북이
 다시 어딘가로 헤엄쳐 가는 거북이
ⓒ 최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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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붉은귀거북, #생태계교란종,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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