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주희정

SK 주희정 ⓒ 연합뉴스


KBL 역대 최장수 선수인 SK 주희정(37)이 정규리그 900경기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주희정은 22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정규리그 통산 9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1쿼터 1분 41초 김선형과 교체 투입되며 코트를 밟은 주희정은 15분 34초간 활약하며 3점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SK는 87-73으로 대승하며 레전드의 대기록 달성을 자축했다.

한국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화석

주희정은 KBL 역사의 살아있는 화석이다. 현역 최고령은 문태종(LG)이지만, 늦게 한국무대에 진출하며 KBL 경력은 이제 겨우 5시즌째다. 주희정은 1997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수련선수로 나래 블루버드에 처음 입단하여 프로생활을 시작했고, 2년째인 1997~1998시즌부터 경기에 출장하면서 어느덧 18시즌째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한국프로농구 역사의 태동부터 현재까지를 모두 지켜온 '조상님'이라고 할만하다.

KBL에서 주희정의 900경기 출장 기록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경기수를 기준으로 KBL에 데뷔한 신인선수가 주희정의 기록에 근접하려면 꼬박 17시즌 정도를 결장 없이 소화해야 한다. 올 시즌 대학졸업반인 신인들이 만 22세에 데뷔하여 39세로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시간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병역의무로 두 시즌 정도를 결장해야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주희정의 기록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한국보다 경기수가 더 많은 NBA(82경기)에서도 주희정만큼의 경기수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스타들이 상당수다.

실제로 주희정에 이어 역대 출장 2위가 추승균의 738경기로 주희정과 큰 격차를 드러낸다, 그 뒤를 서장훈(688경기), 신기성(613경기), 문경은(610경기)까지 모두 이미 은퇴한 선수들이다. 현역 선수 중에선 주희정과 1977년생 동갑인 오리온스 임재현의 604경기가 최다이고, KBL의 또 다른 철인으로 평가받는 양동근(모비스)도 이제 겨우 428경기로 주희정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뿐만 아니라 주희정은 전매특허인 어시스트(5095개)와 가로채기(1431개) 부문에서도 부동의 역대 1위에 올라있다. 또 다른 전설인 서장훈의 13.231득점, 5.235리바운드 기록과 더불어, 향후 최소 10~20년 이내는 누구도 넘보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대기록들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주희정의 기록은 아직도 현재진형행이라는 점이다.

주희정은 고려대 2학년 재학 당시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일찍 진출했으며 병역의무도 면제받았던 탓에 공백기 없이 오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KBL은 NBA처럼 고졸 선수들의 프로 조기진출이 드물고, 대학 선수들도 빨라봐야 보통 3학년 이후에나 프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더구나 프로에 진출한다고 해도 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거나 꾸준히 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는 한계가 없다' 보여줘

무엇보다 주희정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모범이다. 주희정은 프로에 처음 입단할 때만 해도 철저한 무명선수에 불과했다. 타고난 천재적 재능이나 학벌, 인맥의 혜택과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오직 노력과 실력만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자수성가의 대명사다.

주희정은 특유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단한 노력을 앞세워 매년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켜왔으며, 부상이나 슬럼프로 자리를 비운 경우도 극히 드물다. 아무리 데뷔를 일찍했다고 해도 실력이 부족하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프로의 세계에서 버텨낼 수 없었다.

데뷔 초기만 해도 빠르기만 하고 슛없는 가드라는 오명도 들었지만 부단한 연습을 통하여 정교한 3점슛을 장착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KT&G(현 인삼공사) 시절에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평균 기록이 오히려 향상되는 '역주행'을 이뤄내는가 하면, 6강 플레이오프 탈락팀 최초의 정규시즌 MVP에 등극하고 늦깎이 국가대표에도 발탁되기도 했다.

또한 주희정이 활약하던 시기는 한국농구에 특급 가드들의 황금기였다. 허재, 강동희에서부터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양동근, 김태술 등 한국농구의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가드들과 모두 코트에서 직접 경쟁해본 유일한 선수가 바로 주희정이다. 스타성에서는 이상민, 전성기의 임팩트에서는 김승현, 우승경력에서는 양동근에 밀렸지만 주희정은 그들보다 더 오랜 시간, 많은 경기를 코트에서 변함없이 살아남으며 결국 KBL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다.

주희정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자신의 커리어를 통하여 증명해냈다. 주희정이 데뷔 이후 부상 등으로 경기에 결장한 것은 18시즌 동안을 모두 합쳐도 고작 10경기에 불과하다. 주희정은 30대 중반을 훌쩍 넘겨서 팀내 최고참이 된 지금도 언제나 엄청난 개인 훈련량을 소화하는 연습벌레로 알려져 있다. 팀사정상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한 2012년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묵묵히 팀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희생정신은 주희정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주희정은 남은 농구인생 동안 팀의 우승과 함께 개인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처럼 부상 없이 꾸준히 뛴다는 전제하에 2016~2017시즌이 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때 주희정의 나이는 어느덧 40세가 된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그때까지 선수생활을 할수 있을지도 고개를 갸웃할 법 하지만, 어쩐지 '주희정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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