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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타이완 현지취재를 통해 타이완 시민사회와 군이 장병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타이완의 병영 인권 상황 개선 노력을 통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 군이 나가야 할 방향을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훈련을 받고 있는 타이완 군 신병들.
▲ 훈련중인 타이완 군 훈련을 받고 있는 타이완 군 신병들.
ⓒ 타이완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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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군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대대적인 감군에 따라 복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아졌다는 점이다.

타이완 정부가 비현실적인 '반공대륙(反攻大陸, 대륙으로 반격하자)' 노선을 폐기하고 현재 실효지배 중인 타이완 본도(本島)와 그 부속도서의 방어를 확고히 하는 것으로 기본안보 정책을 수정하면서 감군의 여지가 생겼다.

병력 소요가 줄어들면서 종교적,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 제도도 도입되었다. 병사들의 복무 기간도 2003년부터 20개월에서 2009년에는 1년, 2011년에는 11개월로 줄어들었다. 마잉주 총통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 규모 축소는 더욱 가속했다. 2008년 총통 선거에서 "모병제를 실시하여 정예군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던 마 총통은 취임직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완전 모병제 시행 준비에 들어갔다. 군인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장비를 현대화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올해부터 1994년 1월 1일 이후 출생한 남성은 4개월간의 군사훈련만 받고 동원예비군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마치게 됐다. 훈련을 마치고 지원병으로 군대에 남을 경우 기본 4년, 최장 10년간 병사로 복무할 수 있다. 이등병의 월 급여는 37,560 타이완달러(한화 약 131만 원)로 타이완 대졸 신입 평균 초임을 웃도는 수준이다.

타이완군, 병영 인권 개선 위해 시민사회까지 포용

이와 함께 타이완군의 장병 인권이 나아지는 데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바로 타이완 시민사회가 기울여온 노력이다.

여기에는 지난 1995년 군에서 아들을 잃고 군인 인권 향상 운동에 앞장서 온 군중인권촉진회 첸피에(황마마) 대표와 같은 무수한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역사가 숨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군대 내 사상자 수가 400여 명이 넘자, 부당체벌과 기합, 의문사, 각종 인권유린 사건 등 열악한 군 인권 실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자칫 군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시민사회의 간절한 호소가 보수적인 군 당국을 움직이게 한 것.    

애초 시민사회는 병영 내 인권 침해 사안들을 조사하고 장병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를 군 외부에 설립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방부 내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충됐다.

비록 타이완 시민사회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군에 비판적인 시민단체관계자와 의사, 법률가 등 각계 전문가를 참여시켜 만든 '국군관병권익보장위원회'(아래 관병권익보장위)는 군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침해 사건에서 장병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민군 협력을 통해 장병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발상에서 탄생한 관병권익보장위는 유명무실한 우리의 소원(訴冤) 수리 제도와 대비된다.

한국군은 '마음의 편지' '국방 헬프콜' 같은 소원수리제도를 운영하기는 하지만 병사들의 평가는 하나 같이 부정적이다. 당사자의 신원이 빤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문제해결은커녕 불이익만 받기 십상이다. 소원 처리를 결국 해당 부대의 지휘관이 하는 것도 이 제도를 있으나마나하게 하고 있다.   

또 "복무 관련 고충사항은 법령이 정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외부에 해결을 요청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는 군인복무규율도 병사들의 고발을 어렵게 하는 독소조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명무실한 우리의 '소원수리'제도와 대비되는 '관병권익보장위원회'

그렇다면 타이완군의 '관병권익보장위원회'는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타이완 국방부를 찾았다. 

타이베이시 중산구, 국립묘지인 충렬사 앞을 지나 베이안 로(路)를 따라가다 보면 국방부와 해군총사령부, 공군총사령부 등 타이완의 주요 군 기관들이 나온다.

지난 9일 오전 기자는 다안 지구에 있는 공군총사령부 접견실에서 군 관계자들과 만나 타이완군이 시행하는 인권보장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공문으로 취재 요청을 한 지 석 달 만이다. 

왼쪽부터 타이완 국방부 총감찰장실 군기감찰처장 지앙종더 육군 소장(우리 군의 준장에 해당), 법률사무사 처장 진오우와 공군 상교(대령), 군사신문처 부처장 황훙붜 해군 상교(대령).
▲ 관병권익보장위원회에 대해 설명하는 타이완 국방부 관계자들 왼쪽부터 타이완 국방부 총감찰장실 군기감찰처장 지앙종더 육군 소장(우리 군의 준장에 해당), 법률사무사 처장 진오우와 공군 상교(대령), 군사신문처 부처장 황훙붜 해군 상교(대령).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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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는 타이완 국방부 총감찰장실 군기감찰처장 지앙종더 육군 소장(우리 군의 준장에 해당), 법률사무사 처장 진오우와 공군 상교(대령), 군사신문처 부처장 황훙붜 해군 상교(대령)가 나왔다.

지앙 소장이 속해있는 군기감찰처는 군내에서 일어난 각종 비리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군부대에 대한 감사권한을 가지고 있고, 법률사무사는 군의 법무 기능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군사신문처는 군 공보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1/2이 군 외부인사, 1/3은 여성 위원으로 구성

- 최근 총기난사 사건, 집단구타 사망사건 등 병사들의 인권 유린이 원인이 된 일련의 사건들로 큰 충격에 빠져있는 한국에서는 비슷한 처지에 있던 타이완군의 인권 상황 개선에 관심이 많다. 먼저 취재를 허락해줘서 감사하다.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궁금한 것을 질문해 주시면 상세히 답변하겠다."

-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관병권익보장위원회의 설립과 구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1999년 3월 국방부 본부에 관병권익보장위가 신설되었다. 2006년 위원회의 비서실이 국방부 군법사로 편입되면서 국방부 군법사 소원(訴冤)권보장처가 되었다가, 2013년 1월 법률사무사와 군법사가 법률사무사로 통합되면서 법률사무사 소원권보장처 관병권익보장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병권익위에는 1명의 주임위원(위원장)이 있다. 창립 초기에는 국방부장(국방장관)의 지시로 부부장(차관)이 주임위원을 겸임했지만, 지금은 국방부장이 임명한 참사(參事)가 주임위원을 겸임하면서 사무를 총괄하고 있다. 위원회는 1급 권익보장위와 2급 권익보장위로 구성되며 각각 15~21명의 위원이 있다. 1심을 담당하는 1급 권익보장위는 국방부 정치작전국, 육군 사령부, 해군 사령부, 공군 사령부에 설치되어 있다. 1심 처리결과에 불복하는 자는 국방부 권익보장위(2급 권익보장위)에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2급 권익보장위의 경우 위원의 1/2이 군 외부 인사, 1/3이 여성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장군 이상 군인, 변호사, 의사, 공무원 등으로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 국방부 내에 관병권익위 말고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다른 위원회들도 있는가.
"관병권익위가 설립될 때 국방관련 법규를 다루는 법규회, 국가배상사건처리회, 소원심의회가 함께 만들어졌으며 이 위원회들은 각각 부주임 위원을 두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병권익보장위가 출범할 때 군중인권촉진회 첸피에 대표 같은, 군에서 보자면 비판적인 입장의 외부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군 내부에서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는가.
"그런 일은 없었다. 첸피에씨는 국방부에서 특별히 초청해서 관병권익보장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전혀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 관병권익보장위에서는 어떤 안건을 처리하는가.
"권익 침해 안건, 부당한 처분 혹은 불공평한 대우를 당한 안건, 이성 관계 분쟁, 기타 개인의 권익을 침해한 안건을 심의하고 처리한다. 단 민사, 형사, 행정 소송 중이거나 국가배상에서 불기소 처분된 경우는 제외한다."

- 관병권익보장위에 신청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설명해 달라.
"현역 군관(장교), 사관(부사관), 사병과 군사교육조례에서 정하는 사관학교 생도, 권보증(국가유공자보조금 수급 증명서)이 있는 관병의 가족과 유가족, 국군 초빙 인사가 관병권익보장위에 권리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신분이다."

- 위원회에 안건을 접수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가.
"인적사항과 구체적인 증거, 이유, 요구사항, 과거 소원(訴願)을 진행했던 증명 및 소송 결과 불복 이유 등을 정리해서 서면이나 전화, 이메일 등 각자 편리한 방법을 통해 각 권익보장위에 신청하면 된다."

관병권익보장위는 항소 제도

- 만약 어떤 병사가 복무 중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이 위원회를 통해서만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가.
"타이완군에는 권리침해를 당한 군인이 구제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가 있다. 가장 먼저 소속 상관에게 보고하거나 관련 책임자에게 직접 권리구제를 신청하는 방법, '국군 1985 전화'를 통한 구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만약 이런 제도를 통해서도 권리 구제가 되지 않을 때 관병권익보장위에 항소할 수 있다."

- 설명대로라면 관병권익보장위는 일종의 항소 장치인 것인가.
"그렇게 보면 된다. 앞서의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 관병권익보장위로 오는 것이다"

- 관병권익보장위에서 내린 결정은 강제력이 있나.
"위원회의 결정 내용에 대해서는 이행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당사자는 이 결정 내용을 그대로 진행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 앞서 말씀한 '국군 1985 전화'에 대해 설명해 달라.
"2006년 이전에는 '0800 신고 전화'가 있었다. 그런데 장병 권익 침해, 부당 처분, 억울한 사건, 성추행, 사기 신고까지 0800 전용 번호가 12개로 너무 많고 복잡해져서 2006년 8월 1일부터 '국군 1985 문의전화'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번호는 중국어로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뜻의 '니 쥬 방 워'와 발음이 비슷한 '1985'로 정했다."

-'1985 전화'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이전 0800 전화에서 제공하던 모든 서비스와 후방물품 조달, 의료, 군인 대출, 심리 상담을 연중무휴로 24시간 제공한다."  

권리구제 신청한 당사자 불이익 없도록 1년간 관찰

- 만약 상관과의 문제를 이 전화로 신고한다고 했을 때 당사자가 불이익을 받을 여지는 없는가.
"그런 우려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1985는 (명령계통에서 벗어난) 독립부문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안전과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보장된다. 또 권리구제 신청을 한 당사자에게는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도록 1년간의 추종기간을 두고 살펴보기 때문에 소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다."

-관병권익보장위나 1985 전화가 실질적으로 병영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최근 군내 자살자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사인이 군 복무와 직접 관련된 자살자 숫자는 2010년에 1명, 2011년 1명, 2012년에는 없었고, 지난 해 1명이 있었고 올해는 자살자가 없다."

- 장병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명확히 인식시키기 위한 교육을 따로 실시하고 있는가.
"그렇다. 매년 2월, 6월, 7월 타이완군의 모든 군인은 자신의 권익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통해 장병 개개인에게 어떤 법적 권리가 있고, 이 권리가 침해당할 때 어떤 구제절차를 밟을 수 있는지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 지금까지 설명한 타이완군의 장병 인권 보장 노력이 시작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자살자와 사고 사망자를 통틀어 복무중 사망률이 어느 정도나 줄어들었는가.
"사망자 수는 (감군에 따른 효과를 제외하고도) 약 30% 정도 줄어들었다."

-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까지 설명해 준 방법을 통하지 않고 군 복무 중에 발생한 권리 침해에 대해 군 외부, 즉 시민단체나 언론에 알리는 것이 허용되는가.
"우리는 기본적으로 군 안에서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장병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으려고 외부에 자신의 문제를 공개하는 것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것도 그의 권리다. 타이완군 장병은 누구든 자신의 문제를 어디에라도 털어 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 통역 : 박종순


태그:#관병권익보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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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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