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자주 옮기는 운동 선수를 '저니맨'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선수가 무려 6번의 이적을 경험한 최익성(은퇴)이다. 당시 프로야구가 8개 구단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최익성은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한 모든 팀의 유니폼을 수집했다.

사실 저니맨이라는 표현이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주 팀을 옮겨 다녔다는 것은 그만큼 소속팀에서 '전력 외 판정'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최익성 역시 현역시절 3번의 트레이드와 3번의 방출을 경험했다).

하지만 팀을 여러 번 옮기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바꿔 생각하면 자신을 원하는 팀이 끊임없이 나타났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22일 KT위즈와 입단계약을 체결한 크리스 옥스프링처럼 말이다.

LG에서 14승 후 퇴출, 4년 만에 롯데에서 23승

2000년대 중반 심각한 외국인 투수난에 시달린 LG는 2007년 삼성 라이온즈를 2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 하리칼라를 영입했다. 하지만 하리칼라는 LG에서 6승8패 평균자책점 5.21의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중도 퇴출됐다.

2007년 4강 싸움을 하던 LG는 일본 프로야구 경험이 있는 옥스프링을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했다. 비록 LG는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옥스프링은 짧은 기간 동안 4승5패 3.21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2008년 LG는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옥스프링은 10승10패 3.93으로 봉중근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무너진 LG마운드를 지탱했다. 옥스프링은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2009년에도 또 한 번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개막 직전 릭 바우어로 교체됐다.

옥스프링은 그렇게 '추억 속 외국인 선수'로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옥스프링이 한국 무대를 떠난 지 4년이 지난 2013년 3월, 옥스프링은 호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제3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며 다시 야구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WBC를 통해 건재를 과시한 옥스프링은 작년 시즌 직전 롯데와 계약을 체결하며 4년 만에 한국무대로 복귀했다. 국내에서 검증됐던 투수라곤 하지만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옥스프링의 영입에 반신반의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옥스프링은 13승7패 3.29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논란을 불식시켰다.

올 시즌에도 부진한 쉐인 유먼(한화 이글스) 대신 롯데의 실질적인 1선발로 활약한 옥스프링은 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184.1이닝을 소화하며 10승8패4.20을 기록했다. 만약 올 시즌 롯데 마운드에 옥스프링마저 없었다면 롯데는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2년 동안 367.2이닝 책임진 검증된 이닝이터

롯데는 옥스프링을 보류 선수 명단에 포함시키며 재계약 의사를 드러냈다. 하지만 롯데는 신임 이종운 감독이 부임하면서 안정보다는 변화와 도전을 선택했고 새 외국인 선수 조쉬 린드블럼과 브룩스 레일리를 차례로 영입하면서 옥스프링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잠시 실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옥스프링은 일주일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옥스프링 영입에 성공한 팀은 바로 신생팀KT였다. 이미 앤디 시스코, 필 어윈과의 계약을 마친 KT는 마지막 남은 외국인 선수 한 자리를 옥스프링으로 채웠다. 이로써 옥스프링은 한국에서만 3번째 유니폼을 입고 5번째 시즌을 맞게 됐다.

옥스프링의 영입은 KT로서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현재 KT에는 국내 리그에서 검증된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KT 마운드에서 1군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선수는 FA로 영입한 김사율인데 주로 불펜에서 활약했던 김사율의 통산 승수는 22승에 불과하다.

반면에 옥스프링은 한국에서 보낸 기간은 3년 반에 불과하지만 그 중 3년을 풀타임 선발 투수로 활약했고 한국에서 쌓은 통산 승수만 37승에 달한다. KT마운드에 '경험'이라는 무기를 장착한다는 의미에서 옥스프링만한 적임자는 없다.

혹자는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옥스프링의 많은 나이를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옥스프링은 최근 2년 동안 367.2이닝을 소화한 '철완'이다. 국내 리그에서 최근 2년 연속 18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옥스프링이 유일하다.

외국인 선수는 계속 잘하다가도 단 한 시즌의 부진으로 퇴출의 칼바람을 맞게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 냉정한 현실에서 3번이나 국내 구단의 부름을 받은 옥스프링은 '행복한 저니맨'이 아닐 수 없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야구 KT 위즈 크리스 옥스프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