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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총 3개월 19일(2013년 12월 10일~2014년 3월 29일) 동안 매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근무했습니다. 84일 동안 84장의 초단시간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며 근무했지만 일용직근로자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부당해고를 구제받기 위해서 6월 25일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고, 지난 8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해서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필자가 청년유니온과 자문 노무사단의 도움을 받아 일구어낸 성과였습니다.

판정과 동시에 문제제기를 하려 했지만, 12월 11일 중노위에서 공식적인 판정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기에서 다룬 내용을 근거로 롯데호텔 측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롯데호텔 측은 인사부서 책임자를 통해 '판정이 나오면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원직복직시킬 의사가 없으며, 행정소송을 제기해서라도 끝까지 갈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에 저는 지난 16일, 청년유니온, 참여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노동자의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부당해고를 규탄했습니다. 이 글은 그날 못 다한 이야기를 담아, 롯데호텔 송용덕 사장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 기자 말

롯데호텔에서 3개월 가량 근무하면서 매일 작성했던 84장의 근로계약서이다.
▲ 초단시간 근로계약서 롯데호텔에서 3개월 가량 근무하면서 매일 작성했던 84장의 근로계약서이다.
ⓒ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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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송용덕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3월 29일 부당해고를 당하기 직전까지 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약 3개월 동안 일한 김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일하는 동안 매일매일 사장님과 하루짜리 근로계약을 맺으며 일했습니다. 사장님 도장이 찍힌 근로계약서를 84번이나 작성했지요. 이 호텔에는 저와 같은 사람이 워낙 많으니 사장님이 저를 기억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세 살입니다. 벌써 1년 전이네요. 작년 12월, 학업 때문에 전주에서 상경해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며 타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생활비를 벌어야했기에 백방으로 일자리를 구하던 중 롯데호텔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야 할 청년에게 괜찮은 일자리의 기준이란 분명합니다. 두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만큼 장기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저임금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입니다. 해고되기 직전까지 롯데호텔은 제게 그런 일자리였습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롯데호텔에 출근하던 첫 날 받은 근로계약서에는 '초단시간 근로계약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관리자는 그 계약서를 주면서 "앞으로 출근해서 매일매일 이걸 2장씩 써서 한 장은 김영씨가 가져가고 한 장은 회사에 내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매일매일 2장씩 작성하던 그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보면서도 '아, 나는 일용직 알바니까 그날그날 계약이 만료하면 내일은 일이 없는지, 출근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건가?'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롯데호텔이 구인광고에 '장기간', '오래' 일할 주방보조를 구한다고 공고했고, 임금도 일주일마다 지급되었으며, 근무 스케줄도 일주일마다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근태를 관리할 목적으로 출근부를 이렇게 작성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계속 장기간 일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 넘게 매일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네가 있는 그 업무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적합하다는 윗분의 지시가 있었다. 그러니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호텔에서 잘렸습니다.

12월 16일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롯데호텔 송용덕 사장님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김영의 모습.
 12월 16일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롯데호텔 송용덕 사장님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김영의 모습.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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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 5성급 호텔 사장님이 일용직 근로자들을 편한대로 쓰고 '일회용품' 버리듯 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하루 밥 두 끼가 제공되는 그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족했던 저는 당장 내일의 삶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지요.

송용덕 사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20대 초반 대학생의 생계따윈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해고해야 하는 긴박한 사유라도 있었나요? 제가 매일매일 해오던 일에 당장 여자가 더 적합하다는 경영상의 판단을 내려야 할 긴박한 상황이 있었나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이 근로자들에게 매일매일 형식적인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윤을 위해 그들을 언제든 부담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법을 교묘히 악용하고 있는 상황에 저는 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제가 재심을 신청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부당해고'라고 판정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단지 호텔로 다시 돌아가 예전처럼 동료들과 웃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롯데호텔이 지금 이렇게 원직복직을 미루고 있는 것이 제게는 큰 상처이자, 경제적인 어려움이 됩니다.

송용덕 사장님,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인정하시고 저를 복직시켜주십시오. 그리고 해고기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사장님께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제 사건을 빌미로 현재 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와 같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그 어떤 불이익도 가하지 말아주십시오.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용직 근로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제 이야기가 사장님께 꼭 전달되기를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롯데호텔 부당해고자 김영 드림.


태그:#청년유니온, #롯데호텔, #일용직노동자, #청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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