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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2013. 12. 22).
▲ 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2013. 12. 22).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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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22일 오후 5시 17분]

"피고인들은 각 무죄."

판사의 무죄 선고에 법정 303호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부장판사 오성우)는 1년 전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최근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과는 다른 이번 판결을 두고 법정을 찾은 철도노조 관계자들은 연신 "대박"이라고 외쳤다. 이들은 기자들 앞에서 손을 맞잡고 "철도민영화 저지 투쟁 만세"를 외쳤다. 김명환 전 위원장은 "가슴이 벅차다"면서 "국민의 지지와 함께 절차를 지키고 평화적으로 '민영화는 안된다'고 한 철도노동자의 절절한 요구가 재판부에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변호인인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상식적인 판결"이라면서 "(이러한 판결을 내리는 데에) 용기가 필요한 엄중한 시국에도 이러한 판결을 해준 재판부의 용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번 판결은 철도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다는 것을 법원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절차 지킨 파업,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

헌법은 노동자에게 단결권 등 노동3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지금껏 노동자의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해왔다. 절차를 지킨 평화적인 파업이라 해도, 업무방해죄를 피하기 어려웠다. 노동자의 파업권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으로 인해 사실상 봉쇄된다는 비판이 컸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2월 22일 경찰이 파업을 주도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에 강제 진입하면서 업무방해죄 혐의라고 쓴 체포영장을 내밀었다. 재판부가 이번 판결 관련 보도자료에서 밝힌 것처럼, 전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파업을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정부에 업무방해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법조계의 비판이 컸고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전후사정과 경위에 비추어 사용자(회사)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회사에 큰 피해를 끼친 노동자들의 파업만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았다. 업무방해죄의 구성 요건을 엄격하게 한 것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노동권을 신장시키는 데에 유의미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재판부는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지난해 철도노조의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김선수 변호사가 "아주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한 이유다.

이번 판결은 절차를 지켜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영향을 받아 헌법상 기본권인 쟁의권을 행사하면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있었다"면서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사실 재판부는 철도노조 파업의 목적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하면서 수서발 KTX 법인 설립·출자를 위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사회 의결을 막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철도공사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어 파업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전격성을 다루면서 철도노조 파업에 전격성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물리쳤다. 재판부는 "사전에 예고되고 노사 간에 논의가 있었으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일련의 절차를 거쳤다"면서 "철도공사는 파업을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고, 파업을 대비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철도공사는 비상수속대책을 세우고 대체 인력을 투입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어 "파업으로 인해 열차운행이 중단되었고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환영과 걱정 교차 "상급심에서 뒤집힐 수도"

김명환 전 위원장은 "이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 공적 기구가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는 게 아니라 국민 위해서 쓰이는 기구가 될 수 있도록, 또한 철도·가스·의료가 공공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재판이 그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국 교수는 "지난 8월 대법원은 2009년 11월 철도노조의 파업은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심을 파기한 적이 있다"면서 "하급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상급심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히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김선수 변호사는 "하급심 판사들이 법리와 상식에 충실하게 판결해주면 상급심 판사들도 거기에 맞게 움직여주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 "검찰이 항소하겠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충실하게 따르면, 이번 판결과 달리 판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 철도노조 파업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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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철도노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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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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