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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수(44·충북 옥천군 옥천읍)씨는 지난 2011년 2월 정차해 있다가 만취 상태에서 불법 좌회전하는 차량과 부딪혔다. 이 사고로 뒷목(경추 4-번, 5-6번 간 추간판 탈출증)을 크게 다쳐 8개월여 입원치료를 받았다. 치료비만도 1800여 만 원이 나왔다. 게다가 사고로 잘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까지 당했다.

다음 해인 2012년 강씨는 대전지방법원에 가해 차량의 보험회사를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8개월여 A씨를 간병한 가족들도 30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하지만 대전지방법원(민사 19단독)은 최근 판결을 통해 강씨에 대해 선지급금 수백만 원을 뺀 6만 1427원, 강씨 가족에게는 7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어떻게 일방적인 사고를 당해 수천만 원의 치료비에 직장까지 잃는 피해를 입었는데 몇 만 원에 불과한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것일까?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강씨가 사고를 당하기까지 모 주식회사(2008년 입사, 생산직)에서 월 280만 원 월급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8개월 치료기간 동안 병원치료비 외에도 임금 소득 손실 및 후유장해등의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강씨가 사고 전 질환을 앓고 있었던(기왕증)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고 피해에 대해 사고 전 앓고 있던 질병에 의한 영향을 70% 적용하고 나머지 30%만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기왕증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근거로 치료비와 치료기간 예측되는 손해에서 70%(기왕증 부분)을 공제한 것이다.

결국 사고로 인한 임금과 노동능력 상실 등의 손해가 인정됐지만 치료비 1800만 원 중 기왕증(70%)으로 인한 1200만 원을 자부담하도록 해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6만여 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인 강씨는 이 판결이 두 가지 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기왕증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기왕증 70%를 적용하면서 그 근거로 모 대학병원의 신체감정촉탁서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강씨는 "법원이 기왕증의 근거로 삼은 신체감정촉탁서에는 '질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막연한 의학적 소견이 전부"라며 "이를 근거로 70%의 기왕증을 적용한 것은 평소 현장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일해 온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 전에는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건강했는데 교통사고로 입원치료를 받은 것"이라며 "이는 다니던 회사에서 착실히 근무하며 매월 280만 원의 월급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증명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하나는 사고에 의한 병원 치료비까지 기왕증을 적용, 병원 치료비까지 피해자인 A씨에게 부담시킨 부분이다.

강씨는 "법원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치료비까지 부담하도록 했다"며 "막연한 기왕증을 근거로 치료비까지 피해자에게 떠넘긴 엉터리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고 원인이 전적으로 가해차량에 있는 만큼 사고로 인해 안정된 직장을 잃고 부모와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 맞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병원 진단도, 법원 판결도 엉터리"
[인터뷰] 피해자 강명수씨

강명수씨
 강명수씨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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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2011년 2월 충북 옥천읍내에서 퇴근길에 왕복 2차선 도로에 정차해 있었다. 갑자기 빠른 속도로 불법 좌회전하는 차량이 내 차를 뒤에서 가격했다. 당시 목이 심하게 앞뒤로 젖혀졌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만취상태였다."

-사고로 다친 곳은?
"뒷목을 다쳤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통증으로 목을 돌리기가 어려웠다. 어깨 통증도 심해졌다.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었다. 회사 측에서도 근무지 변경 등 여러 방안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끝내 권고사직 했다"    

-가장 큰 피해는?
"직장을 잃은 것이다. 비정규직 상태에서 주말도 쉬지 않고 일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비교적 임금도 괜찮았다. 사고로 안정적인 직장을 잃게 됐다. 부모와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데."

-치료는 잘 됐나?
"수술을 받고 좋아졌다. 하지만 가끔 통증이 있다. 사고 전보다는 좋지 않다."

-2012년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최근에서야 판결이 나왔다. 왜 이렇게 늦어졌나?
"병원 측에서 법원에 신체감정촉탁서를 늦게 제출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법원은 사고 전 앓고 있던 질병으로 인한 영향을 70% 적용하고 나머지 30%만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황당할 뿐이다. 사고 전 뒷목에 같은 질병(추간판 탈증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 기왕증이 70%가 있었다면 어떻게 회사 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겠나? 사고 전까지 아무 문제없이 회사 일을 해왔다. 실제 대전의 모 종합병원에서는 질병원인을 100% 교통사고로 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서는 기왕증을 50%로 보았다. 반면 대전의 대학병원에서만 기왕증을 70%로 추정했다. 법원은 이중 대학병원의 추정치를 그대로 인용했다."

-법원은 치료비까지 피해자에게 부담하게 했는데?
"나는 일방적으로 사고를 당한 피해자다. 백번 양보해서 기왕증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어떻게 치료비까지 피해자인 나에게 부담하도록 할 수 있나? 병원 측의 진단도, 법원의 판결도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정말 황당할 뿐이다."

-지금은 왜 병원에 입원해 있나?
"치료 후 다른 회사를 알아봤지만 교통사고 사실을 밝히자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지난해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일하다 컨테이너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동안 통원치료를 받아오다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태그:#대전지방법원, #교통사고,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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