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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엄마가 입으라고 챙겨준 코트, 그 코트로 배추 한포기를 살렸습니다.
 딸이 엄마가 입으라고 챙겨준 코트, 그 코트로 배추 한포기를 살렸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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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 8시, 파주의 기온은 영하 -14°C입니다. 애완견 해모의 아침밥을 챙기고 쓰레기 수거일을 맞아 배출물을 정리하는 짧은 시간, 집 바깥에서 몸에 와 닿는 냉랭한 기운에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제가 어릴 적 아버지는 계절에 관계없이 먼동이 트기 전에 기상하셨습니다. 차가운 겨울날 저는 해가 뜨고도 아버지가 불을 지피고 계신 따뜻한 아랫목에서의 게으름을 즐겼지요.

그 아버지가 1925년생 소띠니 올해 90세입니다. 어머님은 아버지보다 한 살 많은 쥐띠 1924년생입니다.

12월 7일 시제(時祭)를 위해 고향에 갔던 길에 부모님을 서울로 모셨습니다.

해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을 고향에서 계시고 겨울 한 철을 서울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 여전히 아들·딸에게 얹혀 살기를 단호히 거절하는 부모님과의 타협이었습니다.

고령 탓에 몇 년 전부터 어머님은 기억이 옅어지셔서 치매 증상에 대응하는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계십니다. 저희 가족의 신경은 온통 어머님의 악화를 막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뵌 부모님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 모습입니다. 그동안 어머님을 돌본 아버지의 기력이 완전히 쇠잔해진 모습이셨습니다.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어머님이 돌보는 모습으로 역할이 역전된 것입니다.

치매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위해 손수 밥까지 지었던 아버지의 기력이 떨어졌습니다. 그 아버지를 이번에는 어머님이 돌보는 모습입니다.
 치매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위해 손수 밥까지 지었던 아버지의 기력이 떨어졌습니다. 그 아버지를 이번에는 어머님이 돌보는 모습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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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모셔오기 전에 고향의 인근도시에 살고 있는 누이들이 잠시 아버님을 모셔다가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세 계절 동안 두 누이의 보살핌이 적이 안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인들도 칠순이 넘으셨습니다. 손위 누이는 부모님을 뵌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부모님의 늙은 모습에 애달파 하며 흐느낍니다. 천 리밖에 있는 동생에게 몸도 성치 않은 누이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2

서울로 모시고 온 아버지는 몇 개월 사이에 놀랄 정도로 기력이 쇠잔해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15cm 높이의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어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그런 아버지 옆에서 "왜 이럴까"를 반복하십니다. 

아내의 월차 휴가 날이었던 지난 17일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갑자기 기운이 떨어진 원인이 혹시 노령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진단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아내가 아버지의 진단결과를 가족들에게 카톡 그룹으로 알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기립성저혈압이라고 하네. 앉거나 누웠다 일어설 때 자동으로 피가 머리로 돌아야 되는데 중력에 의해 그게 잘 안돼서 어지러운 게 아닌가 하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이야. 더 정밀한 것은 피 검사 해봐야 아는데 진단된다고 약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신 영양제 주사와 약을 처방해주셨어. 현재, 할아버지 영양제 주사 맞고 계시는 중. 네 시간 걸린다는군."

확진을 받아도 처방약이 없다는 기립성저혈압을 의심한 의사는 아버지에게 영양제를 대신 처방해주셨습니다.
 확진을 받아도 처방약이 없다는 기립성저혈압을 의심한 의사는 아버지에게 영양제를 대신 처방해주셨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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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처치가 끝나고 아내는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헤이리로 모셨습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 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녁 한 끼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매운 것을 전혀 못 드시는 아버지. 우리의 선택은 늘 닭백숙입니다.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저의 생각은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한 궁리로 고아 만든 백숙도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서걱거렸습니다.

쇠잔한 것은 기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단호하시던 아버지의 기상도 희미해져서 상황 판단도 헷갈려하셨습니다.

"서울에서 그저 누워 있기만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니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시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당장의 고민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던 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 어머님의 헌 외투로 폭 싸놓은 배추 한 포기를 뽑도록 했습니다. 겨울이 깊어지도록 귀향하지 않은 아들에게 당신이 직접 지은 그 배추를 싱싱하게 전하기 위해 돌보았을 아버지의 노력이 읽혔습니다.

긴 고드름을 단 이 지하수 수돗물은 이제 봄이 되어야 녹을 것입니다.
 긴 고드름을 단 이 지하수 수돗물은 이제 봄이 되어야 녹을 것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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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엄동설한에 가장 실한 배추 한 포기를 코트로 덮어 살린 뜻은…….
 아버지가 엄동설한에 가장 실한 배추 한 포기를 코트로 덮어 살린 뜻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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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를 드는 것조차 불편한 아버지를 나는 과연 아버지가 돌본 배추만큼이나 정성스럽게 돌볼 수 있을 지. '자식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부모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다'는 세태에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자식이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아버지, #배추, #고향, #앳골,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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