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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 31일 죽산 조봉암 선생이 사형 당했다. 이유인즉 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평화통일론을 앞세워 북한에 동조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과 조봉암이 북한의 공작금을 받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있었다. 이승만과 자유당의 엄청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조봉암은 유효투표의 30%나 되는 215여 만 표를 획득하였다. 이것은 장기집권을 꿈꾸는 이승만에게는 악몽이었다.

선거 후 1956년 11월 조봉암은 '평화통일론'을 강령으로 하는 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이승만 정권은 진보당의 강령과 정책을 공산당 이론과 북한 노동당 강령 등에 연계시켜 1958년 1월 조봉암 등 진보당 주요 간부를 국가보안법으로 검거했고, 2월에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이어 4월에는 '간첩 양명산 사건'을 조작하여 진보당과 연계시켰다. 양명산은 이승만 정권과 미 정보국의 공작원으로 밝혀진 인물이다.

"평화통일 주장은 범죄야!"

1958년 7월 1심에서 평화통일 주장이나 간첩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이 나고 오직 조봉암에게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그러자 이승만 정권은 법원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10월 2심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을, 이듬해 2월 최종심에서 사형을 확정 시켰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가 기각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조봉암은 교수형을 당했다. 조봉암에 위기를 느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한 마디 "평화통일 주장은 범죄야"가 진보당을 간첩몰이로 일망타진한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는 진보라는 이름은 곧 빨갱이와 동일어가 되어 인권에 입각한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사회는 분열되고 독재가 판을 쳤다. 이는 이승만 정권 혼자서 만든 사건이 아니다.  친일파는 물론이고 반 이승만 세력들도 들러리로 가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봉암은 일제강점기 시절 사회주의에 입각한 항일독립운동가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한 좌익 지도자였다. 일제에 의해 수감되어 7년을 복역한 후 지하운동을 하다 또 검거되어 수감 중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1946년 박헌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공산당을 탈당한 우익인사로 국회부의장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이승만 계열의 우익진영은 그의 공산당 전력을 빌미삼아 공격했다. 조봉암 사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침묵은 결국 자유당 정권이 우리 사회를 끝없이 얕잡아 보아 친일파가 득세를 하며 독재를 일삼게 하였다.

조봉암 선생이 타계한 지 55년이 지난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다. 이유인즉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으로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실제 이유는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13석이나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과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는 그녀의 노골적인 공격이 악몽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본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정치적 보복은 두 개로 나누어 실행되었다. 그것은 전교조와 통합진보당을 없애는 것이다. 전교조는 아직 해체시키지는 못했지만 숨만 쉴 정도로 만들어 놓았고 통합진보당의 해체는 성공했다. 여기에는 통합진보당 내의 대립과 분열이 한 몫을 했다. 이 와중에 한 내부고발자에 의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자 2013년 11월 정부는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이 내부고발자를 양명산과 동일시하면 무리일까?

조봉암 사건도 1년이 넘어 최종 선고가 내려졌는데 헌법재판소는 17만 쪽이 넘는 문서를 다 읽어나 보았는지 1월에 첫 공개변론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전무후무한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당을 해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이미 각본이 짜여져 있었다는 것 외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단지 형식을 갖추기 위해 1년 정도 끌었을 뿐이다. 정부의 주장과 개인의 감정이 표출된 일부 재판관의 주장이 이를 입증한다. 소수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정당해산제도가 다양성이 결여된 재판관의 구성으로 오히려 악용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박근혜 정권 혼자서 만든 사건이 아니다. 신자유주의파를 포함한 반 박근혜·새누리 세력들까지도 들러리로 가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사회의 최고 기득권층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앞에서 자신을 희생해 가며 투쟁했다. 그녀는 국회의원으로서 평화적인 통일과 고통 받고 가난한 일반 서민을 위해 일했다. 

통합진보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남들처럼 자신의 안위만을 위했다면 그녀 역시 당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퍼붓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고 당을 지켰다. 그러나 당이 해산되는 비운을 맞보게 되었다. 조봉암 사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침묵은 결국 자유당 정권이 우리 사회를 끝없이 얕잡아 보아 친일파가 득세를 하는 등 독재를 하게 했듯이 우리가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이정희 대표의 구속을 두고 보면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될 것이다.

또다시 된서리 맞은 '진보'

대한민국에서는 또다시 진보라는 이름이 된서리를 맞았다.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진보적인 정당의 힘이 약화되어 자본은 더욱 판을 치고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조봉암의 장례행위까지 억제하고 조문객을 통제하는 인권유린을 저질렀듯이 박근혜 정권의 공안수사가 이어지며 과거 독재정권으로 회귀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하다. 또한 과거 서북청년단 등이 그랬듯이 수구단체들의 테러에 준하는 행동들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보당과 조봉암 사건을 이승만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려고 저지른 조작 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재심을 권고하여 대법원은 2011년 1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조봉암이 무죄 판결을 받았듯이, 언젠가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반성 없는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니까.

조봉암 선생은 말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승만 박사와 싸워 졌으니, 패자가 승자로부터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타협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대표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박근혜 후보와 싸워 졌다는 것뿐이다. 이정희에 감정이 상할대로 상했던 박근혜 현 대통령의 "이정희! 너 기분 나뻐!" 이 한 마디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리일까?


태그:#조봉암, #이정희, #통합진보당, #진보당,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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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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