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는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강정호(27, 넥센)가 '꿈의 무대'를 향한 첫발을 순조롭게 내디뎠다.

지난 20일 결정된 강정호의 포스팅 금액은 500만 2015달러(약 55억 원)다. 최고 입찰액 구단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액으로는 역대 포스팅에 참가한 한국인 선수 중 2012년 투수 류현진(다저스)이 기록한 2573만 7037달러 33센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아시아 타자로는 스즈키 이치로(외야수, 1312만 5000달러), 니시오카 츠요시(내야수, 532만 9000달러)에 이어 세 번째. 기대한 대로 강정호를 향한 메이저리그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증거다.

강정호에 앞서 포스팅에 입찰했던 투수 김광현은 샌디에이고로부터 200만 달러를 제시받았고, 양현종은 원 소속구단 KIA가 포스팅 입찰액을 거부했지만 약 150만 달러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은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한국 야구 수준을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와의 온도 차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실제로 과거 한국인 선수들의 포스팅 역사를 돌아봐도 이상훈(60만 달러) 임창용(65만 달러) 진필중(2만 5000달러) 최향남(101달러) 등 모두 냉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야수로는 강정호가 포스팅 시스템에 도전한 최초의 사례였다. 아시아 야구계에서 가장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일본인 내야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전례가 드물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강정호도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강정호, 순조로운 메이저리그 도전

 4일 오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4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 라이온즈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넥센 강정호가 2점 홈런을 쳐내고 환호하며 베이스를 돌고 있다. 2014.11.4

지난 11월 4일 오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4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삼성 라이온즈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넥센 강정호가 2점 홈런을 쳐내고 환호하며 베이스를 돌고 있다. 2014.11.4 ⓒ 연합뉴스


하지만 강정호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포스팅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일각에서 1000만 달러 이상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최근 미국 야구계의 분위기나 강정호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서로 합리적인 수준에서 응찰액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강정호의 가치를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역대 일본인 내야수들보다 최소한 동급이거나 그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고무적이다.

일단 시장 상황도 강정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올겨울 현재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쓸만한 내야수들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어급으로 꼽히던 헨리 라미레스(보스턴)와 파블로 산도발(보스턴) 등의 거취가 정해지면서, 강정호가 포스팅 시기를 약간 늦춘 것이 오히려 적절했다는 평가다.

아시아 출신 야수로는 드물게 '펀치력'을 갖춘 선수라는 것이 강정호만의 차별화된 장점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강정호는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유격수 40홈런을 달성한 것을 비롯하여, 20홈런 이상 시즌도 4차례나 된다. 통산 타율도 3할 가까이 이를 만큼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아시아 야수는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추신수 등을 꼽을수 있다. 이 중에서 거포 유형으로 꼽힐만한 선수는 사실상 마쓰이 정도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아시아 거포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장타력이 크게 하락하는 현상을 드러냈다는 것은 고려할 부분이다.

더구나 강정호의 포지션인 내야수로만 범위를 좁히면 대부분이 교타자들이다. 니시오카 츠요시, 이와무라 아오키 등이 있지만 그나마도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내야수로 성공한 사례 자체가 드물다. 거포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도 유격수가 지난 시즌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려낸 경우는 단 12명, 20홈런 이상은 3명뿐이었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국내 시절만큼의 홈런 타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15개 내외의 홈런에 2할 7~8푼 정도의 타율만 기록해도 공격형 유격수로서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변수는 포지션 '변경'

변수는 포지션 변경 여부다.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보다 오히려 더 관심을 모으는 것은, 과연 미국 야구계에서 유격수로서의 강정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점이다. 수비 부담이 많은 유격수의 특성상, 강정호의 수비력으로 메이저리그 거포의 빠르고 위력적인 타구를 시즌 내내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 부호가 따라 붙는다. 한국보다 평균적으로 기본기가 탄탄하고 수준이 더 높다는 일본 출신 내야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단지 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게 핵심이다.

강정호는 타구 처리나 위치 선정은 수준급이지만, 유격수로서는 수비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고,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강정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2루수나 3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어차피 포스팅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구단과의 직접 협상에 달렸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해외 진출과 아시아 내야수라는 연결고리에서 강정호와 자주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니시오카 츠요시의 경우, 지난 2010년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포스팅에서 532만 9000달러, 연봉 협상에서는 3년 총 925만 달러를 제시받은 바 있다. 강정호 측이 기대하는 대우도 이 정도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봉 문제는 옵션 등으로 협상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얼마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류현진처럼 입단 첫 해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 수비 위치 보장 등의 조항을 삽입할 수 있다면 최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검증 안 된 아시아 출신 내야수에게 그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할 가능성은 낮다. 에이전트의 협상력과 구단의 기대치에 따라 강정호가 얼마나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메이저리그 첫 해 적응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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