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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인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전단지 아르바이트 공고 갈무리.
 한 구인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전단지 아르바이트 공고 갈무리.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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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전단지 아르바이트이다. 홍보물을 가게에서 받아와 특정장소에서 나누어주거나 부착하는 단기알바. 각종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오천 원대부터 만 원 사이의 시급을 지급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나이나 성별 역시 중요하지 않다보니 미성년자들 혹은 반대로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주로 이 일을 한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알바? 추위라는 강적을 만나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단순한 일이기는 하지만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은 알바생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다. 몇 분만 서 있어도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말이 잘 안 나오는데다가 손까지 얼어 전단지를 건네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학교 앞으로 이동해 등교하는 학생들을 기다렸다가 홍보물을 나눠주고 교복을 맞춰 입으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가져오면 할인을 해준다는 문구 때문인지 학생들은 우리를 피하지 않고 순순히 잘 받아갔다.

하지만 등교시간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손에는 홍보물이 많이 남아있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받지 못 한 친구들에게 주라며 두세 개씩 손에 들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온몸이 꽁꽁 얼은 채로 두 시간을 소리치고 홍보물을 나눠준 대가로 우리의 손에 쥐어진 돈은 만 오천 원이었다.

역 앞은 홍보를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출퇴근시간에는 그들이 등장한다. 전단지를 한 아름 들고서.
 역 앞은 홍보를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출퇴근시간에는 그들이 등장한다. 전단지를 한 아름 들고서.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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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며 빗자루 질 하실 수 있으세요?

'마음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라'라는 자기계발서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행복한 마음으로 하면 즐길 수 있다며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예로 든다. 백설공주는 지저분한 방을 보면서 한숨을 쉬다가 동물친구들과 함께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빗자루 질을 한다. 다음은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명곡 '일할 땐 휘파람을 부세요'의 가사다.

방을 쓸 때면 빗자루가 당신의 연인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그럼 어느새 가락에 맞춰 춤을 추게 될 거예요.
가슴이 설레면 시간이 훨훨 날아다니죠.
그러니 일을 할 때면 휘파람을 부세요. 

하지만 허드렛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어가며 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거절을 당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받았다. 아주머니가 건네던 명함크기의 작은 홍보물.
 결국 받았다. 아주머니가 건네던 명함크기의 작은 홍보물.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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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일학 그녀, 정말 휘파람을 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역 앞에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거절하고 걸어가는데 멀리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단발머리를 한 작은 체구의 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에 카드같이 작은 크기의 홍보물을 들고 있었다. 역 근처 미용실의 전단지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나눠줄 법도 한데 그녀는 달랐다.

"00헤어↗입니다. 감↘사↗합니다."

헤어라는 말에서는 음이 높이 올라가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리드미컬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듯 흥겹게 외쳤다. 그리고 전단지를 받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짐 때문에 손이 부족해 받아갈 수 없다는 여자에게는 동의를 얻어 친절하게 쇼핑백 속에 전단지를 넣어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처음이라 의욕이 넘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좀 지나면 다른 사람들처럼 하겠지. 가뜩이나 추워죽겠는데.'

하지만 며칠 후에도 그녀는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 층 더 높아진 톤으로 외치고 달려가 전단지를 건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는 그 아줌마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전단지를 건네기도 전에 먼저 달라고 하고 받아갔다. 딱히 필요가 없는 홍보물을 선뜻 받은 건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줌마가 그렇게 즐겁게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시급을 올려 받거나 칭찬을 받지는 못 했을 것이다. 일용직 아르바이트가 그렇듯 그녀는 그저 그 일을 거쳐 간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움직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필요 없는 전단지를 받아가게 하고 그 모습을 몇 주씩이나 관찰하게 만들었으니까. 늘 '최선'이 '최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최선'은 어쨌든 사람을 감동시키게 된다는 것. 그건 최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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