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미생이야." <미생>의 주인공. 왼쪽부터 장그래(임시완 분), 오상식(이성민 분), 김동식(김대명 분)

▲ "우린 모두 미생이야." <미생>의 주인공. 왼쪽부터 장그래(임시완 분), 오상식(이성민 분), 김동식(김대명 분) ⓒ CJ E&M


tvN 드라마 <미생> 열풍이 뜨거웠다. 공감을 무기로 수많은 직장인을 울고 웃기다 막을 내렸다. 드라마가 그토록 섬세히 그린 회사원의 고충은 비단 회사 안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회사 밖 누군가도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를 보고 울고 웃었다.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게 <미생>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취준생 J양(24)에게 이 드라마의 배경은 '동경의 공간'이다.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면서 공감을 하게 된다는데, 나는 그 힘든 직장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어. 을이 되고 싶고, 노동자가 되고 싶어"라며 농반진반 자기 견해를 밝혔다. 장그래의 치열한 일터는, 회사 밖에 있는 누군가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미생>은 어떻게든 번듯한 일자리를 얻고 싶은 취준생에게도 공감할 부분이 있다. 누구도 온전히 의지하기 어려운 인간관계, 모든 것은 그럴싸한 결과물로 나와야 하는 성과 만능주의, 유리천장과 학벌주의로 드러나는 차별의 단상은 본격 회사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유효한 주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다수의 취준생과 대학생이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미생>이 그리는 회사 문화는 수많은 취준생, 대학생이 처한 삶의 연장인 것이다.

동경과 공감. 이 양면적인 감정은 취준생과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미생>을 보며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오늘도 많은 젊은이가 사회생활의 지독함을 알면서도 회사생활을 동경한다. '회사생활이 정말 저럴까?'라며 가슴 졸이다가도, 어떻게든 괜찮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일부 취업 준비생에게 장그래는 동경과 공감을 이끄는 대상이다.

일부 취업 준비생에게 장그래는 동경과 공감을 이끄는 대상이다. ⓒ CJ E&M


"<미생>에 나왔던 사람처럼 대놓고 학력 차별했던 선배가 있었지. <미생>은 드라마니까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해. 보통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거 같아."

대기업계열사 홍보팀에 대리로 일하는 L 대리(30)는 직장생활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생>을 보며 직장 동료와 캐릭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겪는 고충 대부분을 겪었기에 극에 깊이 몰입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직장인들에게<미생>은 좋은 친구와 같다.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도 너만큼 힘들었다'며 말없이 등을 토닥이는 따뜻한 친구 말이다. 회사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기 어려운 끈끈함이 직장인과 이 드라마 사이에 생겨났다. <미생>을 즐기는 수많은 회사원은 이 공감을 딛고 위안을얻었다.  

대한민국에 부는 <미생> 열풍은 우리 사회가 그토록 공감을 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너도 그랬구나'라는 태도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자기 고통이 가벼워지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공감은 홀로 버텨내기 각박한 누군가에게 적잖은 힘이 된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한 기운을 감출 수 없다. 장그래와 안영이한테 공감은 했는데, 공감 이후의 처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장그래도 버틴다. 나도 버틸 수 있다'며 자기 다짐을 하거나, '안영이가 참 힘들게 회사 생활을 하는군. 그래도 뭐 어쩌겠어. 여자가 사회 생활하려면 다 저렇지'라며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다 여성 취업자로서 좁은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미생>의 공감이 남긴 건 '그럼에도, 버티자'라는 다소 소극적인 자기 위안에 그친다.

먹고 살기 위해 버티기. 이 선택지 외에 딱히 택할 길이 없음이 우리 사회가 <미생>에 열광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미생>을 보다 잠시 눈물을 훔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공부하러, 스펙 쌓으러, 일하러 돌아가야만 한다.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주인공 장그래는 회사를 떠난 오 차장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걷는다. 그가 뜨거웠던 2년을 뒤로한 채 새로운 길에 발을 디딘 데엔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회사 생활을 버티다가 끝내 벗어난 장그래의 선택이(정규직 전환 실패라는 이유가 있지만), 오늘도 자기만의 바둑을 두는 수많은 '미생'에 어떤 울림으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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