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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그늘돌쩌귀꽃, 뿌리에는 맹독성이 있어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그늘돌쩌귀꽃, 뿌리에는 맹독성이 있어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 임소혁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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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단의 발흥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3월 13일 용정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은 훈춘·화룡·연길 등 북간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서간도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이 3·1운동을 계기로 서북간도, 연해주 일대에서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항일전을 표방하는 수많은 독립군단들이 편성되고 있었다.

김좌진(金佐鎭)·서일(徐一) 등이 통솔하는 대한군정서와 안무(安武)가 거느리는 대한국민군,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 등이 대표적이요, 이밖에도 이범윤(李範允)을 중심으로 한 항일의병들의 대한의군부 그리고 이범윤을 단장으로 추대한 대한광복단, 방우룡(方雨龍)의 의민단, 김규면(金奎冕)의  대한신민단 등 수많은 독립군단들이 활발하게 대일 항쟁 활동하고 있었다.

망국 10년을 맞이한 1919년 8월부터 이들 독립군단들은 마침내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했다. 홍범도가 인솔하던 대한독립군은 그 선두에 서서 압록강을 건너 혜산진을 한때 점령하고, 그 해 9월에는 갑산의 일제기관을 공격하기도 했다.

독립군단의 국내진공작전은 1920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홍범도를 비롯하여 최진동, 안무 등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과 군무도독부, 김좌진이 지휘하는 대한군정서 소속의 독립군은 기회가 올 때마다 국내진공작전을 펼쳐 일제 기관과 군경을 살상했다.

여러 독립군단들은 망국 10년 이래 겨레의 숙원이던 독립전쟁을 수행함에 충분한 총기와 탄약 등 무기 조달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독립군단들은 국내외 동포들로부터 모은 군자금으로 우선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해주에 출병하였던 체코 군이 철수하면서 매각한 무기들을 사들여 무장하였다. 이밖에도 독립군단들은 러시아제, 미제, 독일제, 일제 등 가리지 않고 무기를 구입한 결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1920년 5월 28일, 홍범도를 중심으로 여러 독립군단들은 군사조직 통합을 추진한 결과 대한독립군단과 대한국민군 그리고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도독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그 거점을 왕청현 춘화향 봉오동에 확보하고, 그곳에 병력을 집결시켜 대대적인 국내진공작전을 펴기로 했다. 

이 무렵 대한북로도독부은 1200여 명으로, 무기로는 기관총 2문 총 900정, 수류탄 100여 개였다고 일제는 탐지하였다. 그 당시 그 일대에 큰 토지와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대한북로도독부 부장 최진동이 가산을 헌납했기 때문에 독립군 주둔이 가능했다고 한다.

봉오동 초모정자산, 이 산 아래 봉오동 상동, 중동 하동 마을이 있었다(2004. 6. 1. 제3차 항일유적지답사 때 촬영).
 봉오동 초모정자산, 이 산 아래 봉오동 상동, 중동 하동 마을이 있었다(2004. 6. 1. 제3차 항일유적지답사 때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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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항일 명장 홍범도(洪範圖)를 사령으로 한 대한북로도독부가, 우리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두만강을 건너온 일본군 나남 제19사단 야스가와(安川) 소좌가 거느린 독립군 월강추격대대를 참패시킨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전투다(대일 독립전쟁에서의 최초 승리)..

이 봉오동전투는 사흘 전인 1920년 6월 4일에 있었던 화룡현 삼둔자(三屯子)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삼둔자 전투는 그동안 독립군의 소규모 국내진공 작전이 빌미가 되어 벌어졌다. 6월 4일 새벽 30명 정도의 독립군 소부대는 국내 진공 게릴라작전으로 삼둔자를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 강양동으로 가서 일제 헌병 순찰소대를 격파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일본군 2개 중대는 이를 보복하려고 독립군 추격에 나섰다. 이들은 두만강을 건너 삼둔자에 이르렀으나, 독립군을 발견치 못하자 그 분풀이로 애꿎은 조선인 양민들을 무차별 살육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독립군은 삼둔자 서남쪽 산기슭에 잠복하고 있다가 돌아가는 일본군들을 섬멸시켜 버렸다. 이에 함경북도 종성군 나남에 주둔했던 일본군 제19사단은 독이 바짝 올랐다. 그들은 삼둔자전투 참패를 설욕하고,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대대적으로 편성했다.

이들 월강추격대대는 야스가와(安川) 소좌 인솔로 6월 6일 밤 9시부터 국경 두만강을 건너 이튿날 새벽 3시 30분에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으로 진격해 왔다. 이런 낌새를 미리 알아 차렸던 총지휘관 홍범도 장군은 그들과 교전에 앞서 주민들을 산중으로 미리 대피시켜 마을을 텅 비우게 했다. 그러고는 봉오동 상동 험준한 사방 고지 기슭에 독립군 각 중대를 매복시켜 놓은 다음, 월강추격대대를 이곳으로 유인하여 포위망 속에 가둬두고 일망타진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두만강 건너 북한 함북 종성, 일본군 나남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는 이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으로 쳐들어왔다(2004. 6. 1.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두만강 건너 북한 함북 종성, 일본군 나남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는 이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으로 쳐들어왔다(2004. 6. 1.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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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안의 쥐가 된 월강추격대대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1개 분대를 일본군 월강추격대대가 쳐들어오는 길목에 내보내 교전하는 척하면서 봉오동 깊은 골짜기로 후퇴케 하여 그들을 유인했다.

그날 아침 8시 30분 무렵에 월강추격대대 첨병은 이 작전에 말려들어 독립군 1개 분대의 뒤를 쫓아 봉오동 어귀에 이르렀다. 그때 독립군 유인 분대는 감자기 자취를 감췄다. 일본군 월강추격대대 첨병은 독립군 유인 분대를 놓치고 봉오동 하동을 정찰한 결과, 독립군이 이미 겁을 먹고 죄다 북으로 도주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 첨병은 월강추격대 본대를 불러 봉오동 하동 마을을 뒤지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노약자를 살육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 월강추격대는 봉오동 하동을 실컷 유린한 다음, 오전 11시 30분에 다시 대오를 정돈하여 봉오동 중동, 상동을 향하여 진군했다.

그날 오후 1시 무렵에는 일본군 월강추격대대 전위부대가 사방 고지로 둘러싸인 상동 남쪽 300미터 지점까지 진출하여 완전히 독립군 포위망 속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은 곧장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들 주력부대가 모두 포위망에 걸려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잠시 후, 일본군 월강추격대대 전위부대에 이어 주력부대도 독립군 포위망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제야 홍범도 장군은 일제 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을 발사했다. 이에 삼면 고지와 산기슭에 매복하고 있었던 독립군들의 총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뜻밖에 기습 공격을 받은 일본군 월강추격대대 병력들은 필사적으로 돌격해 왔다.

하지만 유리한 지형을 미리 차지한 독립군의 맹렬한 집중 사격과 수류탄 투척으로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는 독 안에 든 쥐의 꼴로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만 속출할 뿐이었다. 그들은 독립군 포위망 속에서 3시간 이상 끈질기게 버텼으나 이미 작전상 허를 찔려 더욱 사상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전투는 무모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제야 후퇴하기 시작했다. 독립군 제2중대장 강상모는 부대를 이끌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잔적을 소탕하였다. 이 봉오동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일본군 월강 추격대대 100여 명을 살상시킨 통쾌한 대일독립전쟁 첫 승첩이었다.

봉오동반일전적지 기념비(2004. 6. 1.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봉오동반일전적지 기념비(2004. 6. 1.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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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영웅 홍범도

이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 나남 제19사단은 본국 육군대신에게 다음 전문을 보내며 그 대책을 강구케 했다.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
ⓒ 홍범도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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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회(今回, 이번 전투에서) 다음 사실을 확인하였다. 대안(對岸, 두만강 건너) 불령선인단(不逞鮮人團, 조선독립군단)은 정식으로 군복을 사용하고 그 임명 등에 사령을 쓰며, 예식(禮式)을 정하고 있는 등 전적으로 통일된 군대조직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제 경고를 줄 필요가 있다."
- 강덕상 편 <현대사자료 27>, '조선군사령관 제102호 전문'

봉오동전투 이후 일본은 큰 충격을 받고 '간도지방불령선인초멸계획'을 서둘러 만들게 되었다. 한편 독립군 측에서 머슴 및 포수 출신의 홍범도 장군은 신출귀몰한 전설의 독립군 영웅으로 길이길이 추앙받게 되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회 기사는 장세윤의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한국독립유공자협회의 <중국 동북지역 한국독립운동사>, 윤병석의 <한국독립운동의 해외사적 탐방기>, 박도의 <항일유적답사기> 등을 참고로 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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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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