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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어도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 한자 한자 정성스레 써 내려갑니다~ 팔순이 넘어도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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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곳도 있어서 지금 이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온이 내려가니 몸도 함께 움츠려집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몇 달간 정말 힘들게 부산을 오가며 공부하랴 일하랴 이런저런 집안의 대소사를 정리해가며 보내고 나니, 이제야 한숨을 돌립니다.

휴일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안 가면 걱정되고, 궁금하고, 다녀오면 좋긴 한데 마음 한편으론 돌아오는 길이 무겁고 그렇습니다.

"여보세요~누군데요~"
"내다, 막내다~알믄서 모른척 하노~"
"아이고, 우리 공주가~밥 묵고 댕기나~"
"못 묵고 댕긴다~시간 없어가지고~엄만 묵었는교~"
"내사 요새 밥 묵고 할 일이 없다 아이가~끼 때마다 잘 챙기 묵는다~"
"그라믄 됐제~밥 잘 챙기 묵고 해라~마이 춥네~그래서 전화 해봤다 아이가~"

시골은 이 맘 때는 농한기라 심심하기도 하고, 혼자 추운데 어떻게 지내나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다음 휴일에 한번 다녀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렇게 며칠을 보낸 후, 휴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공부가 마침 시험 기간이라 틈틈이 공부를 해야 하고,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공부는 안 되기도 하고, 휴일 아침부터 그동안 못다 한 집안일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아침을 먹고 있느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나다~"
"아~네~아침은 묵었어요~"
"그래~묵었다~오늘은 쉬는가베~어디 안 가나~"
"어디 가겠노~할 일이 많아 오늘은 집에 쫌 있을라카는데~와아~"
"아니~혹시나 다른데 들맀다가 가는 길에 집에 올까해서~""글세~오늘은…"

글은 다 못 배워도 수료식했다고 자랑하십니다~
▲ 고향집에 들어서자 자랑하시네요~ 글은 다 못 배워도 수료식했다고 자랑하십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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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집에서 공부를 좀 하려고 했더니 어머니는 아침부터 고향집에 들를 일 없는지, 지나가는 길은 없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말을 돌려 물으시는 건 고향집에 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는 것이지요. 누구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정확한 답은 하지 못하고 가게 되면 들르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주말마다 찾아오던 큰형부와 큰언니가 일이 있어 못 갔는지 휴일 날, 혼자 계시니 꽤나 심심하신 모양입니다. 그런 마음이 또 짠해서 공부고 뭐고 다 미루고 서둘러 남편과 고향집으로 향했습니다. 잠시나마 가서 어머니 얼굴을 보고 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겸사겸사 다른 볼일을 한꺼번에 봐야 할 것 같아 일을 마치고 고향집으로 갔습니다. 사실 갈지 안 갈지 몰라 정확하게 어머니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어머니는 현관 앞에 작은 의자 하나 놓고 앉아 계셨던 것입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저를 그렇게 점심 먹고 난 뒤부터 기다리신 겁니다.

"이 추븐데 여기 앉아 기다리믄 우야노~"
"혹시나 올까 해서 있어봤다 아이가~"
"안 오믄 우야라꼬~확실하게 답 안 했다 아이가~아이고~엄마~"
"시간 되던갑제~"
"지난주에 왔다 갔는데 이 막내가 그리 보고 잡던교~야~아~"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혹시나 올까 해서 현관 앞에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매주 거의 일이 있든 없든 고향집에 가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는데, 큰언니가 아니면 둘째언니, 그리고 아니면 작은오빠나 큰오빠, 이렇게 시간이 되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고향집에 들릅니다. 뭐 딱히 언니와 오빠들의 본가나 처가가 시골이어서 일을 해 드리러 가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고향집으로 다들 시간되면 찾아오지요. 아마 이것도 젊어서 고생한 저희 어머니의 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농사짓는 자식 하나 없는 게 아쉽다고 말씀 하시지만 그래도 각자 맡은 일 최선을 다해 하고 있고, 다들 모나지 않고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게 큰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한번씩 어머니를 위로 해드립니다. 한 해 두 해 어머니의 외로움은 깊어지는데 그렇다고 아들네는 결사반대 안 가신다고 하니 답은 하나, 저희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뵈러 가는 일 밖에 다른 방법이 없네요.

어찌 되었건 어머니는 방안으로 저를 데리고 들어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앉히시고, 뭐 먹을 것을 가져다주겠다며 왔다 갔다 하십니다. 안 먹겠다는 데도 굳이 바구니에 홍시를 한가득 가져오고, 제가 사 간 빵이며, 과자도 챙겨 놓았습니다.

날짜 지난 빵을 아직도 어머니는 안 드시고 개봉하지 않은 채 계셨어요~
▲ 저 주려고 안 먹었답니다~ 날짜 지난 빵을 아직도 어머니는 안 드시고 개봉하지 않은 채 계셨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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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 앉아 어머니와 이런 저런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에 수료식 한 한글공부 책가방을 슬그머니 저에게 갖다 놓으십니다. 가방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자 어머니는 신이 나서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책이며, 공책,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이며, 쓰다 만 찢어진 공책들을 제 앞에 놓으며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글자도 계속 쓰믄 늘겠나~나도 글자 읽고 싶데이~"
"와아~누가 글자 못 읽는다 카더나~"
"그건 아이고, 엊그제 수료식 하는데 저 아랫마실 남천댁이 대표로 답산가 뭔가 하는데 잘 읽데~그래 가지고 나도 글자 읽으믄 좋겠다 싶어가지고 안그라나~"
"그러게 쓸 줄은 몰라도 읽을 줄만 알아도 좋제~자꾸 글자를 보믄서 읽고 그라고 쓰는 연습도 해봐야 하는데~"

언젠가 제가 어머니의 한글을 가르치다 다 못하고 결혼을 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마을 회관에서 하는 할머니들의 한글공부에 일주일에 한 번 농번기 때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배우러 다니셨지요. 그런데 옆에서 가르쳐주고 해도 쉽지 않을텐데 혼자서 농사일 해가며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어머니의 그 마음이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서믄 니 시집 안 가고 있을 때 글자 쫌 배울걸~그차~"
"그러게~그때 못한 게 그렇네~그래도 지금이라도 자꾸 읽고 써봐래이~담에 올 때 공책하고 한글 책 하나 사올게~"
"그랄라나~오늘은 그라믄 빈칸에다 너거 오빠야들하고 언니들 그라고 손자 아~들 이름이라도 써 놓코 가그래이~"

한 자 한 자 공책 빈 칸에다 큼직하게 써 놓고 몇 번 반복해서 읽혔습니다. 글자를 못 배운 게 평생에 한이라고 그랬지만 귀담아 듣지 못한 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지요.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보고, 색칠도 해 보았다며 이것저것을 내놓으셨습니다.

침 발라 가며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그리고 받침도 맞지 않는 글자들이 어머니의 공책에 가득합니다. 팔십이 넘은 어머니의 마음속에 아직도 배우지 못한 한이 자리하고 있는지 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참을 공부한 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으스름 지려고 하자 어머니는 냉장고를 자꾸만 열었다 닫았다 하십니다.

별난 걸 다 해보았다며 쑥스럽게 꺼내놓으십니다. 그리고 붙이고, 잘 하셨지요~
▲ 별스러운 걸 다 했네~ 별난 걸 다 해보았다며 쑥스럽게 꺼내놓으십니다. 그리고 붙이고, 잘 하셨지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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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자꾸만 냉장고 문 열고 그라노~"
"뭐~어 줄 게 있나 싶어 그라제~이자는 줄 게 없네~우짜노~"
"김장도 했고, 가져갈 거 다 가져갔는데 뭐 있다고~그냥 갈랍니더~"
"이거~시래기라도 가져갈라나~이거 밖에 없네~어~"
"시래기는 싫고~뭐 다른 거 좋은 거 다 내 놔 보이소~ㅎㅎ"

하도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해서 저는 집에 있는 것 좋은 것 다 싸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애꿎은 냉장고 문만 열었다를 여러 차례 어머니는 그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셨습니다.

"이제 갈랍니더~담에 시간 되믄 또 올게요~추운데 나가지 말고 보일러도 틀고 하이소~"
"그래~조심해서 가~라~담주에 또 올끼제~"

어머니는 자주 보는데도 가는 사람 붙잡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과정이 어찌 되었건 잠깐이라도 그렇게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글자를 배우고 싶어 하는 팔순의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어머니.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마음껏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는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네요~이쁘게 잘 썼죠~
▲ 삐뚤삐뚤한 어머니의 글씨~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네요~이쁘게 잘 썼죠~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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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게 가슴이 아파오는 걸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휴일엔 꼭 공책이랑 한글책을 사서 어머니를 찾아뵈어야겠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새해카드를 보내드렸는데, 그것을 들고 옆집 이장님께 들고 가서 읽어 달라고 한다는 것이 불편해 카드 보내는 걸 미루었는데 오늘에야 뉘우칩니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행복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태그:#어머니, #한글, #배움, #자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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