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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해체를 결정하였다. 9명의 헌재 위원 중 8인의 찬성으로 결정된 그 사안을 놓고, 많은 이들이 분노하며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 있다. 굳이 통진당을 지지하고 안 하고 상관 없이 적어도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과 그 정당의 사멸이라는 결정에 분노한 것이다.

87년 당시 여야는 위정자가 헌법을 유린하는 사태를 견제하고자 독일식 헌법재판소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때와 지금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해 있게 되었다는 것이 사실 기묘한 일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듀플레이가 교도소 지붕 위에서 한 교도관이 친척에게 증여받은 재산을 놓고 세금으로 뺏길 것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다짜고짜 다가가 "부인을 믿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앤디는 그 교도관에게 부인에게 증여하면 세금을 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이혼수속을 권유한다. 이렇게 부인에게 온 재산을 증여하고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이혼수속을 밟았는데 믿었던 그 부인이 오히려 딴 남자와 눈이 맞아 온재산을 갖고 도망쳐버린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참담함과 똑맞아 떨어진다.

헌재 소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설마 해체까지는 아니겠지. 설마'하며 목을 빼고 헌법재판소만 바라보다 뒤통수 맞고 참담함에 빠져버린 사람들 그게 바로 현재의 우리들이다.

가장 믿어야 할 사람들로 구성되어 개인의 해석보다는 법적인 해석이 우선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법 도덕이 선행되어야 할 헌법재판관들이 지금 권력의 시녀가 되어 고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이없는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그렇게 이룩한 정당을 한 순간에 해체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버릴 수 있는가. 도대체 헌재란 곳은 무엇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를 전과 후로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사안마다 언제나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국가보안법에 한정합헌 판결을 내리고, 행정수도 법률에 '관습헌법'이란 엉뚱한 근거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헌재가 의사 결정의 최종점에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 국민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기관이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최종 결정기구가 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같은 중대 사안을 헌재가 결론 짓는 게 옳은가. 우리는 당시에도 많은 고민을 했다. 헌재는 무슨 델포이의 무녀인가? 자, 신탁이다. 닥치고 따를 따르라. 무소불이의 권력, 그게 지금 내 조국에서의 헌재의 위치다.

현행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 추천으로 3명을 임명하고 있는데, 일단 헌재가 지금처럼 중요한 사안을 판단할 권한을 가지려면 의결 숫자인 6명을 국회 동의 없이 임명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 추천을 늘리고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제대로 거쳐야 한다. 아예 헌법재판관 일부 또는 전체를 선출직으로 두어 국민의 의사가 헌재에 직접 반영되도록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 은근슬쩍 자리 잡은 그들이 권력과 손잡고 나면 국민들은 정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 어느 곳에서도 하소연 할 곳 없이 그저 그 결정을 따라야만 하는 어이없는 현실. 헌재는 이제 국민의 신뢰나 염원 그리고 국민의 공감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다만 그들이 새롭게 취득한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렸다.

왜 우리는 국민이 뽑지도 않은 헌재의 말에 다들 목을 빼고 그 판단에 주목하며 가슴 졸여야 하는가?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는 상반되게 나이 많은 보수주의자들로 가득 찬 헌재를 보며 가슴을 치고, 그들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그저 속수무책이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땅에서 헌재의 필요성도 물론 있지만 점점 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염원을 무시한 기관으로 변질된다면 더는 헌재라는 특수한 기관의 위상은 흔들리고 만다.

사법이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작용을 말한다. 이는 몽테스키외의 3권 분립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거의 모든 국가가 사법 기관을 두고 있다. 우리 헌법에서의 사법권은 원칙적으로 법원에 속한다. 그러나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위헌 정당 해산 심판, 권한 쟁의 심판, 헌법 소원 등은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사법권은 입법권이나 행정권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 헌법 제101조 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함으로써 사법권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물적 독립)이란 법관이 재판에 관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오로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수행하고, 외부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법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법원 재판의 정당성을 유지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양심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 가지는 법적 양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법관은 개인의 주관적, 인간적 양심과 법률적 양심이 충돌할 때에는 법률적 양심을 우선시하여야 한다.

이 최소한의 법률적 양심에 대하여 헌재는 지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가.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부끄러움에 우리의 운명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헌재로서의 믿음을 이미 상실하였다. 헌법재판관들은 전원 사퇴하고 이제 헌재라는 곳에도 국민의 중지를 모은, 국민의 염원을 실은 인물들로 채우는 선출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헌법재판관들은 이미 죽었다.

갑오년 12월 민주주의를 사멸시킨 8인의 헌법재판관들에게 국민의 뜻을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자자손손 많은 이들의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태그:#통진당해체,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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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샛별 이야기발전소 협동조합 이사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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