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이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단어가 아닐까. 원주 동부의 베테랑 빅맨 김주성이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부는 1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3라운드 경기서 25점 4리바운드 2블록을 기록한 김주성을 앞세워 고양 오리온스에 74-71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4연승을 달린 동부는 18승9패로 리그 3위를 유지했다.

김주성은 이틀 전인 17일 안양 KGC 인삼공사 전에 이어 2경기 연속 25점을 기록했다. 김주성의 올 시즌 한 경기 최다득점이다. 출전시간도 연이어 30분 이상을 소화했다. 올해 35세의 노장으로서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특유의 영리하고 효율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은 여전했다.

특이 돋보인 것은 승부처에서 보여준 김주성의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KGC-오리온스 전에서 김주성은 전반까지 각각 8점-6점을 기록하며 공격에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동부도 전반 각각 33-46, 30-41으로 크게 끌려가는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김주성이 후반 팔을 걸어 붙이고 나서면서 2경기 연속 3.4쿼터에만 17점(13+4), 19점(11+8)을 몰아넣는 맹활약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초반 경기내용이 좋지 못했던 동부는 김주성이 공격의 중심에 서면서 팀의 전체적인 공수밸런스가 살아나는 뒷심을 선보였다.

사실 김주성은 원래 공격력으로 승부하는 선수는 아니다. 커리어 평균 15점을 기록하고 있는 김주성이지만 득점보다는 수비와 경기운영 능력 등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팀 공헌도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다. 정확히 시즌 절반인 27경기를 소화한 현재 10.1점, 6.3리바운드를 기록 중인 김주성은 최근 2경기에서 고득점을 올리기 전까지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 득점(9.5점)에 그치는 등, 대부분의 기록에서 커리어 최하를 달리고 있었다.

팀 사정과 김주성의 컨디션 고려한 전략적 선택

하지만 이것은 팀 사정과 김주성의 컨디션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에 가까웠다. 2002년 데뷔 이후 동부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김주성은 그동안 종종 과도한 혹사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다. 올 시즌에는 샌안토니오의 팀 던컨(38)처럼, 나이에 맞게 출전시간의 부담을 줄이면서 짧은 시간 집중력 있는 플레이를 추구하는 '조커'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영만 감독은 올 시즌 김주성의 출전시간을 가급적 20~25분 내외로 조절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팀사정상 100% 계획대로 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26분 26초의 평균출전시간은 김주성의 데뷔 이후 최저 기록이다. 김주성의 커리어 평균은 33분 30초에 이른다. 과도한 출전시간으로 체력적 부담이 크고 부상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어야했던 지난 몇 년간에 비하면 그나마 '관리'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대로라면 2007~2008시즌 이후 7년 만에 전경기 출장(54경기)도 기대할만하다.

올 시즌 동부는 과도기에 있다. 김주성의 바통을 이어 동부의 에이스 자리를 맡아 줘야할 윤호영은 잔부상으로 좀처럼 100%의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 데이비드 사이먼 역시 초반에 비하여 안정감이 많이 떨어졌다. 두경민과 허웅은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한 어린 선수들이다. 동부는 전통적으로 공격보다 수비에 더 강점이 있는 팀이지만, 강력한 수비력으로 정규리그 최다승을 기록한 11-12시즌에 비하면 아직은 조직력을 쌓아나가는 단계다.

최근 김주성의 득점과 출전시간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공수 밸런스에 기복이 있다 보니, 경기가 안풀리면 다시 옛날처럼 김주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상적인 패턴은 아니지만 안 좋은 경기내용에도 동부가 꾸준히 승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김주성이 여전히 '맘만 먹으면' 언제든 많은 득점과 함께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장악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덕분이다.

또한 김주성은 KBL 통산 기록에서 현재 8,827점-3,778리바운드-955 블록슛을 기록하고 있다. 팀플레이를 중시하고 워낙 개인기록에는 신경 쓰지 않는 선수라서 손해를 본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통산 득점에서 서장훈, 추승균, 문경은(이상 은퇴)에 이은 역대 4위이고 블록슛은 부동의 1위다. 현역 선수로만 국한하면 모든 기록에서 단연 으뜸이다.

어느덧 프로 13년차인 김주성은 이번 시즌 내 9천 득점-1천 블록슛 돌파가 유력하고, 1~2년 정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면 대망의 1만 득점-4천 리바운드 달성도 기대해볼만하다. 또한 이 모든 기록을 동부 한 팀에서만 달성한다는 것도 영예로운 의미가 아닐 수 없다.

김주성과 함께 KBL 역대 최고의 토종 빅맨으로 꼽히던 서장훈은 39세이던 2012-13시즌까지 15시즌 간 현역으로 활약하며 사상 최초의 1만득점(13.231점)-5천 리바운드(5.235개)의 대기록을 남긴바 있다. 서장훈이 탁월한 공격형 빅맨의 전형이라면, 김주성은 역대 최고의 수비형 빅맨으로 한국농구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젊은 시절만 해도 운동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빅맨으로서는 호리호리한 체격과 잦은 혹사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던 김주성이 30대 이후에도 장수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주성은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지금도 KBL 최고의 빅맨으로서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비록 과거같은 운동능력과 몸싸움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지만 농구를 풀어가는 시야와 효율성은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무르익고 있다는 평가다.

김주성이 앞으로도 팀 던컨처럼 벤치의 꾸준하고 적절한 관리만 뒷받침된다면 40세까지도 충분히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로 건재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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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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