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이 오산시민회관에서 '거북놀이'를 연주하고 있다.
▲ '어울마당'의 거북놀이 연주 지난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이 오산시민회관에서 '거북놀이'를 연주하고 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단풍이 막 시작되던 지난 10월 중순, 수원 화성문화제가 한창인 화성 창룡문 앞, 승마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너른 잔디밭 한켠에 사물놀이 복장을 입은 20여 명의 무리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나갑니다"

사물놀이판을 이끄는 상쇠가 팔을 번쩍 들었다 휘두르자 높고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연주의 시작을 알린다.

"덩 따다 쿵 따쿵 따당 땅 따."

이어지는 장구소리에 상모를 높이 치켜든 상쇠가 앞으로 뛰어가고 장구와 북, 소고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그 뒤를 따른다. 상쇠가 이끄는 가락을 따라 한 몸처럼 노는 사물놀이패의 모습에 구경하던 관객들도 몸을 덩달아 흔들기 시작한다. 관객들을 흔들흔들 춤추게 만든 이들, 올해 경기국악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사물동아리 '어울마당'이다.

지난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이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 정기연주회에 참가해 한바탕 신명나게 연주했다. 조명숙 씨의 아들 박태인(9)군이 공연을 함께했다.
▲ '어울마당'의 구성원들 지난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이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 정기연주회에 참가해 한바탕 신명나게 연주했다. 조명숙 씨의 아들 박태인(9)군이 공연을 함께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창단 멤버이자 회장을 맡고 있는 최철민(53)씨.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명함의 소유자로 형제전기조명의 전무다. 부부가 모두 LG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장구잽이 박상순(50)씨와 조명숙(45)씨는 성실함의 대명사로 통한다.

'백만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고잽이 박길용(49)씨는 항공기부품공장을 운영하면서 틈날 때마다 연습을 하는 연습벌레다. 마지막으로 박경환(52)씨는 20여년 경력의 베테랑 공무원. 하지만 '어울마당'에서는 이제 2년차의 풋내기 소고잽이다. 사물놀이의 '사'자도 모르던 이들이 모여 신명나게 놀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물놀이가 좋아서 무작정 시작한 사람들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의 '거북놀이' 연주가 연주회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다.
▲ 절정으로 치닫는 '어울마당'의 연주 10월 26일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의 '거북놀이' 연주가 연주회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오전 6시에 일어나는 철민씨는 자가용을 타고 아침 9시까지 자신의 직장으로 출근한다. 출근하자마자 그날의 스케줄을 먼저 파악하는 그는, 업무 중간중간 손에 잘 익지 않는 꽹과리 가락을 짬짬이 연습한다. '짝짝짝짝' 왼손은 쫙 펼치고 오른손은 주먹을 줘 꽹과리를 치는 시늉을 하거나 고개를 까딱까딱 저으며가 락을 맞춘다.

"점심에도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아 이렇게라도 연습할 수밖에 없어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잠깐이라도 연습을 안 하면 바로 잊어버리죠."

틈틈이 연습해야만 하는 것이 사물놀이 연주의 철학이라고 귀띔하는 철민씨다.

반면 장구잽이 명숙씨는 점심시간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다. 수원LG서비스센터에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그는 점심시간이외엔 시간이 나질 않는다고 한다. 출근하자마자 메일검토 하랴 아침 회의하랴 업무에 쫓기다보면 짬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점심시간에 휴게실에서 발동작이나 장단을 외우기도 하고 상모 연습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동료들 말이 내가 근무할 때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펜으로 장구가락을 탁탁 맞추고 있다네요"라며 웃어 보인다.

삼흥기공의 부장인 길용씨 역시, 점심 식사 후 30분정도를 사물놀이 연습에 투자한다. 자가용에서 상모와 소고를 꺼내 회사주차장에서 연습을 하는 그는 "배웠던 모든 가락 중에 잘 안 되는 가락을 모두 연습해요'라며 "그렇게 열중하다보면 30분이 짧게만 느껴져요"라고 아쉬워한다. 문득 직장인들의 사물놀이 동아리인 '어울마당'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20대 초에 익혔던 사물놀이가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 아까웠어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철민씨에게 젊은 시절 잠깐 익혔던 사물놀이는 항상 마음 한켠의 미련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면서 직장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 무렵, 반가운 소식 하나가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산 신용협동조합에서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준다는 뉴스를 우연히 접한 것. 오산에 거주하는 그는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 오산 시민 누구나 지원해준다'는 광고를 본 후,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동아리 사람들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가정주부 강신자(53)씨가 첫 번째로 섭외됐다. 주변을 수소문하던 중,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사물놀이 동아리활동을 했다는 말을 듣고 팀에 들어와 달라 부탁했다. 그녀 역시 대학교 졸업 후 가정을 이루면서 사물놀이와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철민씨의 부탁을 듣고 사물놀이에 대한 그리움에 가족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팀에 합류했다.

신자씨의 가입에 이어 농사를 짓는 임승재(60)씨가 신자씨를 통해 섭외 되면서 회원 수가 늘어나자 이제는 제대로 된 사물놀이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 모두가 발로 뛰었다.

동아리 회원들의 나이대가 장년층이다 보니 동작을 따라 하기에 무리가 없는지 선생님으로 모셔오기 위한 사물놀이 고수에 관한 동영상과 공연을 통해 꼼꼼히 살펴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난 1994년의 사물놀이 동아리 '어울마당'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협에서 동아리 지원을 중단하면서, 오산 세마동사무소로 연습실을 옮겨 지금까지 활동하게 됐다.

연습 연습 연습... 끝이 없는 연습 릴레이

연주가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 정기연주회의 마지막 공연을 '어울마당'이 장식하고 있다.
▲ '거북놀이' 연주의 시작 연주가 오산외미걸립농악보존회 정기연주회의 마지막 공연을 '어울마당'이 장식하고 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전에 해 봤으니 쉽다고 생각했죠."

철민씨를 비롯한 회원 모두들 같은 생각으로 '어울마당' 회원으로 모여들었다. 자신이 익혔던 악기를 그대로 다루는 데다 가락이 있으니 조금만 연습하면 곧바로 예전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현실은 너무 달랐다. 회원 대부분이 십 수 년 만에 악기를 다시 잡았기에 사실상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모두 직장인이기에 퇴근 후 모여도 쉽게 지쳐 오래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누구 한명이라도 야근을 할라치면 효율은 뚝 떨어졌다.

조명숙씨의 경우, 서너 달이면 웬만큼 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다. 장구를 치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한 번 뛸 때마다 허리도 같이 숙여졌기 때문이다. "장구를 친지 이제는 4년이 됐는데도 가끔 허리가 무너질 때가 있어요.  몸의 리듬을 어느 정도 유지 했다고 생각하면 리듬이 깨지더라고요. 업무 중간중간에 발동작을 연습해도 직접장구를 메고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어서 리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죠"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모두 착용해야 하는 상모도 극복할 수 없는 난간이었다. 벙거지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마에 두르는 흑두건조차 머리를 조여 힘들었다. 그런데 그 위에 매듭을 앞으로 짓는 꽃천과 모자인 벙거지, 그리고 벙거지를 고정시키는 백선 순으로 상모를 쓰고 나면 온갖 끈이 얼굴을 조여 왔다. 꾹 참고 상모를 돌리려 온몸에 힘을 주면 정작 상모의 꼬리는 돌아가지 않았다. 상모의 몸통인 진자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모는 목에 힘을 뺀 상태에 서 무릎을 굽혔다 펼 때 리듬을 타며 느리듯 빠르게 돌려야 해요. 처음 배울 때는 목에 계속 힘을 주다보니 목과 어깨근육이 뭉쳐 목을 제대로 쓰지 못했죠"라며 "그래도 빨리 상모를 돌리고 싶어 회사 점심시간에도 상모를 쓰며 연습을 했어요"라고 고백하는 길용씨다.

떠돌이 사물놀이패, 그리고 새로운 인연

제대로 된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4시간뿐이다. 동사무소측에서 제공하는 공간을 다른 동아리와 함께 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연습으로는 공연과 대회를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연습시간을 메우기 위해 마땅한 장소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근처 공원에서 연습하려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쫓겨났다.

농사를 짓는 회원의 농장 공터에서도 몇 번 연습해 봤지만, 스무 평이 채 되지 않는 공간에 18~20여 명의 인원이 연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근 한 달여를 헤맨 끝에 팔달산 세마대 등산로 입구에 마련된 200여 평 크기의 주차장을 찾아냈다. 등산객이나 약수를 뜨러 오는 몇 사람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연습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주차장에서 연습하는 동아리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왔기 때문. "20대 초반에 몇 년 동안 사물놀이를 했었는데, 직장을 다니며 자연히 멀어지게 됐습니다. 5년 전 독산성을 등산하고 내려오다가 주차장에서 연습하는 '어울마당'을 만난 겁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가입 했죠" 세마대주 차장에서 가입하게 된 길용씨의 말이다.

'어울마당'은 사물놀이에 대한 갈망으로 모인 사람들인만큼 단원들 간의 유대가 강하다.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회원들은 으레 농장에 모여 함께 농사도 짓고 술도 한잔씩 하죠"라는 길용씨는 "회원들 간의 가족들끼리도 매우 친하다"고 귀뜸한다.

'어울마당', 그들의바람

직장 일과 사물놀이를 병행하는 터라 시간을 쪼개고 쪼개야 하는 그들이지만 지금은 마냥 행복하다고 말한다. "직장인으로서 대회에서 입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라며 미소를 머금는 철민씨. 현재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직장인들이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팀에서는 최고가 되는 것"라며 활짝 웃는 명숙씨. '어울마당'은 그녀에게 분명 제2의 인생을 안겨준 소중한 터전이었다.


태그:#사물놀이, #직장, #공연, #오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