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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평화공원과 기념관. 위령탑은 제주 특유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이며 중앙조형물은 희생자의 넋의 상징인 인간의 형태를, 금속원형 고리는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제주 4·3평화공원과 기념관. 위령탑은 제주 특유의 역동성과 경건함을 가진 제주도의 분화구 형태이며 중앙조형물은 희생자의 넋의 상징인 인간의 형태를, 금속원형 고리는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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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도 제주와 같은 현대사평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4·3유적지 답사에 나선 일행이 섯알오름과 백조일손지지를 방문한 후 답사에 나선 곳은 4·3평화공원이다.

과거 4·3은 반세기 넘도록 금기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제주도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법제화 노력으로 마침내 결실이 이뤄졌다.

일행을 안내한 김창후씨로부터 희생자 묘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일행을 안내한 김창후씨로부터 희생자 묘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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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게 학살된 희생자를 그린 그림.
 무자비하게 학살된 희생자를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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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고 3월 24일자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4·3희생자 추념일' 지정을 위한 대통령령 개정안이 마침내 공포됐다. 제주 4·3연구소가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 추념일이 공포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본다.

4·3 진상규명운동과 수난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자 4·3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960년 5월 제주대학생 7명이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를 결성하고 진상조사 작업에 나섰다. 5월 27일에는 모슬포에서 유가족 등 주민들이 집회를 열어 '특공대 참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제주도내 각지에서 진상규명을 원하는 소리가 봇물처럼 터졌다.

산속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겨울 동안 취사를 한 모습을 재현한 모습.
 산속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겨울 동안 취사를 한 모습을 재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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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구경하는 일행들 .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구경하는 일행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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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상규명운동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5·16발생 이튿날 진상규명동지회원 이문교, 박경구가 구속돼 옥고를 치르고 유가족들도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6월 15일, 경찰은 '백조일손 위령비'를 부숴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20년간의 군사정권하에서는 반공법, 국가보안법, 연좌제가 무서워 발설조차 무서웠던 진상규명은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재인식하게 됐다. 작가는 4·3사건을 소재로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0년 1월 11일 청와대에서는 진상규명 운동에 앞장선 유족과 시민단체 대표 8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4·3특별법에 서명했다.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해 진상보고서에 근거해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실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4·3평화공원 조성과 4·3평화재단 설립

4·3평화공원은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추모의 장임과 동시에 평화, 인권 교육의 장으로서 후세대에 역사적 교훈을 물려주기 위해 조성됐다. 제주시 명림로 430에 면적 39만6743㎡(약 12만평)의 넓은 공간에 자리한 공원은 1단계에 총사업비 112억 원, 2단계 480억 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이름을 모르는 유골함에는 영어와 숫자가 일련번호로 붙어 있다. JIA가 붙어있는 유골은 제주국제공항(Jeju International Airport)의 약자로 제주공항 인근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골을 의미한다.
 이름을 모르는 유골함에는 영어와 숫자가 일련번호로 붙어 있다. JIA가 붙어있는 유골은 제주국제공항(Jeju International Airport)의 약자로 제주공항 인근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골을 의미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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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말한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해 백비로 남아 있다.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말한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해 백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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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평화기념관 지하 1층에는 전시실이 있고 4층까지는 전시와 관련된 공간과 업무공간이 있다. 전시내용으로는 '역사의 동굴', '흔들리는 섬', '바람타는 섬', '흐르는 섬', '새로운 시작'의 주제별 전시관이 있고 특별관에는 다랑쉬굴의 현장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4·3사건이 발발하기 전부터 4·3의 후유증과 진상규명의 역사가 연대기적으로 잘 전시되어 있다. 다시는 4·3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세에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는 4·3희생자 1만 4231명 중 생존자 106명을 제외한 1만 409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위패 가운데는 경찰 희생자 95위, 군인 희생자 35위의 위패도 포함되어 있다. 일행을 안내한 전임 4·3연구소장 김창후씨의 설명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이 일본군 무기를 폭파시키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2차대전이 끝나고 제주도에 진주한 미군이 일본군 무기를 폭파시키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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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이 제주시내에서 멀어 접근성 문제가 있습니다. 공직에 있거나 완전 멸족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조사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좀 나아졌지만 진상조사 초기에 4·3에 대해 물으면 '모르쿠다(모릅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토벌군을 처벌하자고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방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에는 연간 22만여 명의 참배객과 국내외 과거사 연구자, 수학여행단이 방문해 4·3의 진실과 과거사 청산의 교훈을 직접 확인하며 배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제주4.3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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