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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성이다. 그리고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의 회원이다. 단지 후원만 하는 회원이 아니라, 활동에 참여하고 소모임을 위해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는 꽤나 적극적인 회원이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좋은 일 하시네요."

더 구체적으로 옮기자면 이렇다.

"와, 남자인데도 그런 활동을 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오해를 막기 위해서 미리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의 칭찬이 기분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자기 문제도 아닌 일에 그렇게 헌신하다니'식의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사람들의 칭찬과 달리, 내가 단체에 가입한 동기는 다소 불순했다. 계기는 민우회가 주관하는 한 강의에 참여한 것이었다. 여느 단체가 주관하는 강의가 그렇듯, 강의의 시작 전에 민우회의 홍보영상이 상영됐다. 그런데 영상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민우회의 활동을 배경으로 흐르는 노래는 신나기 그지없었으며,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나는 궁금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복해보이지? 아, 나도 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고 싶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회원가입 신청서를 작성했다.

왜 나는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민우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보이는 표지판. 매번 사무실에 갈 때 마다 마주치는 광경이다.
 민우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보이는 표지판. 매번 사무실에 갈 때 마다 마주치는 광경이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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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도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나는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고, 이것도 내가 민우회에 가입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남성인 내가 어떻게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관심의 계기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년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아이였다. 체구는 작고, 목소리는 가늘었으며, 말투는 나긋나긋했다. 스포츠나 격렬한 다툼을 싫어했고 순정만화를 즐겨 읽었다.

이런 나는 또래 집단의 눈에 쉽게 띄는 아이였고, 손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나는 질문으로 보냈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 말이다. 나는 왜 또래 동성 친구들처럼 말하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을까. 폭력에 노출될 때마다 나는 질문을 던졌고, 그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청할 때, 그 질문은 외부에서 던져지기도 했다. "너는 왜 그래?"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교정의 요구를 동반하고는 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거잖아"라…. 이런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는, 사실상의 자기학대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변화한 것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면서였다. 왜 나는 '여성스러운' 아이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왜 내가 어떤 삶을 산다는 이유로 손쉽게 괴롭힘과 모욕의 대상이 되어야할까. '여성스럽다'는 것이 흠결이라면, 과연 '여성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왜 성별은 이분화 되어있고, 거기에는 규범이 존재하는가. 여성·남성이 자연스러운 규분이고, 거기에 따르는 삶의 양식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애초에 규범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제기했던 이런 식의 질문을 공유하는 책들은 여성학 책들이 유일했다. 때문에 자연히 나는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단체에 있는 이유...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 만들기 시민실천 캠페인 진행 모습.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 만들기 시민실천 캠페인 진행 모습.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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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단지 과거의 경험에 그쳤다면, 내가 지속적으로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민우회에 가입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힘들었던 과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가령 얼마 전 면접을 보며 나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말씀하시는 거나, 앉아 계신 자세나 여성스러우신데, 우리 일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잘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나는 생각했다. 왜 저 사람들은 나의 행동이나 말투만 보고,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예단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문제가 '여성성'이라면, 이 사람들은 여성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일까. 만일 어떤 여성이 지금 내 자리에 앉아있다면 같은 질문을 받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여성이 같은 질문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내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나의 일은 아니지만 숭고하다고 판단되는 가치에 투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현재 내가 봉착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단체에서 활동한다.

이 운동은 철저히 나를 위한 운동인 셈이다. 가령 성폭력은 성별 권력관계와 여성에 대한 특정한 시각(성적 대상, 수동적 대상)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성폭력에 저항하는 것은, 단지 '여성성'만을 이유로 폭력에 노출된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에서 기인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면접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감추고 다른 사람마냥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여성단체 활동은, 나의 삶을 차별적인 규범에 맞춰 교정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단체에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남성'은 나에 국한될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가사노동자로 구분하는 성별 체계는 여성에게 저임금, 경력단절, 취업기회의 제한이라는 문제를 안긴다. 하지만 남성 역시 과노동과 원치 않는 노동을 중단하지 못하는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체계에서 비혼 남성이나 기혼 상태에서 잠시 일을 중단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남성 혹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려는 남성의 삶은 차별과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비대칭적이고 차별적인 젠더 체계는 '여성'으로서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 또한 제한한다. 선택지가 줄어드는 셈이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작성하며, 나는 개인적인 사연을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자칫 이 글이 여성단체에서 활동한 나의 '특이한' 경우로 읽히고, 결과적으로 여성단체에 가입하고자하는 남성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결국 모든 운동은 '자기 문제'에서 시작할 때 가능하며, 지속성과 만족감도 높다는 것이었다. 서두에서 나는 왜 민우회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몇 년의 시간동안 나는 그 비밀을 알았다. 비밀이란 자기 해방을 위해, 스스로로 살아가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우회 안에서 나 또한 그러했다.

이 활동은 보편적이지 않다. 여성단체가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순 없다. 사실 이는 어떤 단체든 마찬가지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이 활동은 많은 이들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성별'의 제한은 없다.

젠더 문제는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 제도에 각 개인들이 얽히고설킨 문제다. 때문에 '남성'이라고 이 문제의 당사자가 아닐 순 없다. 맞지도 않는 규범에 스스로를 맞춰 나가는 것은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고된 일이다. 이를 거부하고 해방을 선언하는 것, 그리고 행복을 찾는 것은 나를 제외한 다른 남성들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맞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게 좋은 일'이다. 나를 나로서 살게 하고, 나를 의심하지 않고, 나를 해방시키는 좋은 일이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행복 앞에서 혹시 주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행복의 가능성을 한번 시험해보지 않으시겠냐고 조언해드리고 싶다.


태그:#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주의, #남성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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