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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가슴에 품고 음악을 들었다.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노래 가사를 받아쓰고, 가슴 졸이며 녹음을 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담아 두었다. 요즘은 클릭과 스킵을 하면서 음악을 빠르게 구하고 듣는다. 많은 사람이 음악은 다 쓰면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쉽게 소비한다. 한때는 소녀였고 지금도 소녀라고 믿고 싶은 우리는 <올드걸의 음악다방>에서 음악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마음 깊숙한 곳에 소장했던 노래를 꺼내 듣고, 누군가는 새로 알게 된 노래를 즐겼으면 좋겠다. - 기자말

올드걸의 음악다방
 올드걸의 음악다방
ⓒ 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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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정시 접수가 19일부터 시작된다. 2월 말이 돼야 끝나는 전문대학 미등록 충원까지 입시는 계속된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해도, 아니면 성적에 맞춰 진학하려고 마음을 정했다고 해도 지금은 아이들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다. 입학하는 학교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더 힘들다. 우리 집에도 고3이 있다. 친척과 지인들이 찹쌀떡과 엿을 보내며 응원을 보내온다. 더불어 질책어린 시선도 따라온다.

"너는 집에서 뭐하느라 애를 이렇게밖에 키우지 못했냐?"

집에서 뭐하느라... 그러게... 나는 집에서 무엇을 했기에 SKY 대학은 꿈도 못 꾸는 아이로 키웠을까? 13년 전 아이를 잘 키우겠다며 사직서를 호기롭게 제출하던 내 모습, 퇴직하고 1년도 안 돼 부엌 바닥에 앉아 울던 모습, 지오디가 부르는 '길'이라는 노래를 넋 나간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퇴직을 말리는 팀장님과 동료들, 친구들에게 나는 "I will be back(돌아 올게)"이라고 했다. 일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아이들이 크면 다시 복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터미네이터처럼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사회 생활하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역량도 키우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도 실컷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짜잔'하며 복귀하리라 생각했다.

웬걸, 6살과 3살짜리 아이와 하루 종일 지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병치레가 잦았던 아이들을 돌보고, 세끼 식사와 간식 먹이기, 놀아주고 씻기는 일과 약간의 집안 살림을 했을 뿐인데 저녁이면 파김치가 됐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영어 공부하고 책 읽겠다는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나는 아이들을 재우다가 먼저 잠들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들은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화장실 문 앞에 두 아이를 앉혀 놓고 볼일을 볼 정도였다.

부엌바닥에 앉아 훌쩍이는 일이 잦아지면서 퇴직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지오디의 '길'을 들었다. 노랫말이 가슴에 팍 박혔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그래. 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고 있어. 일을 포기한 건 잘못한 건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

"일과 육아를 다 잘하겠다는 내 꿈이 과연 이뤄질까."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 하는 내가 맞는 건지."

내 얘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어느 날 노랫말에 맞춰 혼잣말을 하다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거야?' 아침마다 울먹이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하면서 내가 늘 나에게 되묻던 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 늘 의심하고 고민할 거라는 사실을... 사는 게 그런 거라고. 지금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남들은 나를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못난이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당시 최첨단 학문인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에서 일하던 내가 평범한 아줌마가 될 줄 몰랐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인들도 있다. 나도 사회에서 똑 부러지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를 둔 엄마들은 더 부럽다. 부러울 뿐이지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고3짜리 우리 아들, 아들의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수험생들은 지금 얼마나 불안할까? 수시 합격한 친구들이 부럽고, 눈길도 주지 않았던 대학의 합격도 장담할 수 없다면 자괴감도 들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대학 입시가 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앞으로 수많은 길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태그:#올드걸의음악다방, #지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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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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