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차범근 선수~ 공 몰고 들어갑니다. 차범근 선수 슛~ 골인!"

곤궁했던 시절, 우리에겐 비호처럼 공을 몰고 달리는 차범근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다. 코흘리개 꼬마는 축구 규칙도 모르면서 이장집 마당에 모여 "차범근!"을 연호했다. 차범근 선수가 골이라도 넣은 다음 날이면 학교 앞 이발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아저씨 차범근 머리요"를 외쳤다.

1970년대 미얀마에도 우리의 차범근같은 축구 영웅이 있다. 바로 마웅 윈몽 선수다. 마웅(Maung)은 청년 앞에 붙이는 접두사니 지금은 연장자, 어른에게 붙이는 우(U)를 붙여 우 윈몽으로 불러야겠다. 그는 당시 한국의 스트라이커 이회택 선수에 버금가는 미얀마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1960~1970년대 미얀마 축구의 영웅이다.

"아시아 축구의 최강국은 미얀마다."

식당 같은 곳에 앉아 오전부터 하루종일 거의 이런모습이었다. 주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 축구를 즐기는 미얀마 사람들 식당 같은 곳에 앉아 오전부터 하루종일 거의 이런모습이었다. 주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 전병호

관련사진보기


적어도 40여 년 전 이 명제는 참이었다. 지금이야 일본이나 이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우리나라 등을 아시아 축구의 맹주라고 부르지만, 시간을 1970년대로 되돌리면 미얀마 축구(당시 버마)는 한국 축구의 천적이었다. 결승전이나 결승전 코앞에서 우리나라는 툭하면 미얀마에게 깨져 열성 축구팬들을 화나게 했다. 특히 1972년과 1973년 박스컵 축구대회 준결승에서 2년 연속 미얀마에 '0-1'로 패했던 기억은 올드 팬들에겐 사라진 동대문운동장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 당시 미얀마 축구는 1966년과 1970년 연속으로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을 정도로 전성기를 보냈다. 지금이야 아시아 축구 변방쯤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의 핏속에는 여전히 축구 강국의 자존심이 흐르고 있다. 실제로 미얀마에 가보니 그들의 축구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본 그들의 축구 사랑만큼은 여전히 아시아 최강국이었다.

세팍타크로 강국 미얀마의 비밀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남자 더블 결승전이 떠오른다. 코트 위에서 각 팀 2명의 선수가 춤을 추듯 작은 공을 차는 것이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했다. 우리나라를 열심히 응원 했지만 아쉽게도 우승은 다른 팀의 몫이었다. 그 팀이 바로 미얀마였다. 아시안게임에서 미얀마가 따낸 금메달은 총 2개였는데, 모두 세팍타크로에서 땄다.

지난 9월 26일 오후 경기도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17회 2014인천아시안경기대회 세팍타크로 남자단체 한국-인도네시아 경기가 진행 되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오후 경기도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17회 2014인천아시안경기대회 세팍타크로 남자단체 한국-인도네시아 경기가 진행 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미얀마가 유독 세팍타크로 강국이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세팍타크로는 말레이시아어 '발로 차다'라는 뜻의 세팍(sepak)과 '공'이라는 뜻의 태국어 타크로(takraw)의 합성어로 '발로 공을 차다'라는 뜻이다. 바로 이 말에 비결이 숨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발로 차는 데는 모두 선수다. 미얀마에는 '발로 공을 차는' 친론(Chinlone)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세팍타크로를 잘하고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친론이라는 전통 놀이 덕분이다.

친론은 미얀마의 전통 놀이로 대나무나 등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나무 공을 차는 놀이다. 엄밀히 말하면 '친론'이라는 공을 차는 놀이다. 친론은 미얀마 어디를 가든 '길거리농구' 하듯 '길거리 친론'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여럿이 모여 친론을 차는 모습이 마치 도서관 앞에서 복학한 예비역들이 종이컵 차는 놀이와 비슷하다. 승부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라 공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한 팀, 조직력, 협동심을 보여주며, 묘기에 가까운 발 기술로 예술성도 높은 마술같은 놀이다.

미얀마 전통 스포츠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내 눈에는 스포츠라기보다 공을 갖고 기예를 보여주는 전통춤처럼 보였다. 누구라도 보고 있으면 금방 매료된다. 미국의 그렉 해밀턴이라는 감독은 이런 마술같은 공놀이에 매료돼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영화 <신비한 공, 친론>(Mystic Ball , 2006년, 그렉 해밀턴 감독)을 찾아보길 권한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둥근 공 유전자'가 있다

대나무나 등나무를 엮어 만든 공,시장에 가면 이렇게 쌓아 놓고 팔고 있다.
▲ 친론(Chinlone) 대나무나 등나무를 엮어 만든 공,시장에 가면 이렇게 쌓아 놓고 팔고 있다.
ⓒ 전병호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미얀마 사람들에게 공차기는 낯설지 않다. 어려서부터 해온 공차기 습관 때문인지, 몸속 '둥근 공 유전자' 때문인지 미얀마 사람들은 축구를 무척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축구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밤 문화가 거의 없는 미얀마 사람들은 식당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거나 벽에 걸린 TV를 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식당이나 펍(Pub)같이 생겼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밥과 차, 음료수를 파는 집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앉아서 미얀마 전통차인 러펫예를 마시거나 노닥거리며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 TV 화면에는 종일 축구 경기가 펼쳐진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그, 어떤 곳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방영 되고 있다.

친론과 함께 핏속에 흐르는 미얀마 사람의 '둥근 공 유전자'는 언젠가 다시 미얀마 축구를 아시아 최강국으로 만들 게 분명하다. 친론은 미얀마 사람의 핏속에 둥근 공 유전자를 갖게 한 그들의 자랑이자, 자존심인 것이다.

오는 2015년 1월 9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대회가 호주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선장 슈틸리케 감독의 지휘 하에 55년 만에 우승을 노린다.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벌써부터 손꼽아 기다려진다. 이번 아시아컵 대회 결승전에서는 지난 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남자 더블 결승전에서 만났던 미얀마 축구대표팀과 다시 한 번 대결해 보길 기대해본다.

아직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번 응원해보자.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둥근 축구공은 평화와 우정의 공이다. 두 나라가 미래를 위해 더욱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힘차게 응원해보자.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땅예친! 미얀마~ 짝짝짝~짝짝!"

[잠깐 생각] 희망을 만드는 둥근공
"축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보편성을 가진 운동이다. 축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하다.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을 벗어 날 수 있는 희망이 되고, 갑작스런 재난으로 삶의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는 재활의 끈이 될 수도 있다.

전쟁으로 얼룩진 곳에는 평화를, 분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곳에는 통일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다. 어떤 이는 축구를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축구가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흡입력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다. 그리고 축구장에서만큼은 축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축구는 희망의 불빛이고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에너지이다." - <축빠와 냄비팬의 희망어시스트>(전병호,한영현 공저)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표기 했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땅예친 미얀마, #전병호, #친론, #세팍타크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