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황간 나들목을 빠져나와 영동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노근리 평화공원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 노근리 평화공원 황간 나들목을 빠져나와 영동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노근리 평화공원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눈에 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졸음이 몰려왔다. 덕유산 정상에서 추위에 떨다 내려와 허겁지겁 들이킨 순댓국 한 그릇은 육체도 정신도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와 아이는 오래 전 꿈나라로 몰려갔고, 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눈을 부릅뜨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쉴 만한 곳을 찾던 중, 상행 길에 잠깐 눈에 띄었던 노근리 평화공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다. 거창한 의도도, 예정된 방문도 아니었다. 그저 여행길에 졸음운전을 피하고자 잠시 잠깐 차를 세운 곳이 하필이면 노근리 평화공원이었던 것이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4번국도를 타고 영동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커다란 공원 푯말이 보인다.

일요일 오후, 2시경. 카메라를 챙겨 차에서 내린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고 하지만, 단 한 명의 사람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가롭게 공원을 둘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노근리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부족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후원했지만 영화는 못 봤던 <작은 연못>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 내가 정확하게 이 사건을 알게 된 계기는 2010년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2002년부터 제작을 시작했으나, 제작비가 부족하여 배우와 스태프들이 노개런티로 촬영에 임하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제작된 영화, <작은 연못>. 그 때 첫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이름과 내 이름을 자막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막상 필름 구매 캠페인에는 참여했으나, 개봉관이 없었다. 그러다 대구에 있는 예술영화관에서 몇 회 상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사 제쳐 놓고 달려가서 보고 왔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특히나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갓난아이의 목숨을 끊는 아비의 장면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십여개의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조각공원이다
▲ 노근리 평화공원 내 조각공원 십여개의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조각공원이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처참했던 사건 당시의 상황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남매의 모습과 폭격하는 비행기 그리고 잊혀져가는 기억을 상징하는 액자형의 틀을 두조형의 공간으로 구성한 작품이다(작품설명 인용)
▲ 시선 처참했던 사건 당시의 상황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남매의 모습과 폭격하는 비행기 그리고 잊혀져가는 기억을 상징하는 액자형의 틀을 두조형의 공간으로 구성한 작품이다(작품설명 인용)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그 뒤로 조금씩 잊혀져 갔던 노근리였다. 어느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뇌리에서 사라져 가던 단어 '노근리'가 이렇게 갑자기 내 앞에 뚝 떨어질 줄이야. 원래 기념관 같은 데는 잘 안 들어가는 편이라, 평화 기념관을 제쳐두고 조각공원부터 둘러보았다. 조각공원의 작품들은 평화를 기원하는 작품에서부터, 사건 당시의 상황을 연출한 작품들까지 다양했다. 그 중 가장 여운에 남는 작품은 '시선'과 '모자상'이라는 조형물이다.

그렇게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눈을 사로잡는 글귀가 보였다. '이곳은 '노근리 사건' 현장입니다.' 깜짝 놀랐다. 어떤 정보도 없이 방문한 곳이기에 공원이 위치한 곳이 사건현장 근처일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도로 하나를 넘어 현장으로 가보았다.

노근리 사건으로 밖에 적을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노근리 사건의 정식 명칭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중대한 전쟁범죄이다.
▲ 노근리 민간인 학살 현장 노근리 사건으로 밖에 적을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노근리 사건의 정식 명칭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중대한 전쟁범죄이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간단한 사건 개요와 위치도가 씌여진 안내판
▲ 노근리 사건 안내 간단한 사건 개요와 위치도가 씌여진 안내판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영화 속에서 보던 쌍굴(노근리 개근 철교)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숨죽여 숨어 있던 곳. 갓난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발각될까 두려워 아기의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끊어야 했던 아비가 있던 바로 그곳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알 수 없는 표시들이 잔뜩 그려진 쌍굴 아래에 가만히 서 있자니 솔직히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다행히 대학생들인지 일행 몇이 쌍굴 쪽으로 다가왔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였더라면 그 두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쌍굴 옆쪽에는 노근리 사건 안내표와 설명이 간략히 적혀 있다. 발생 일시, 발생 장소, 피해 인원, 경위. 너무도 간단했다. 확인되지 않은 인원까지 400여명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학살 전쟁범죄인데도 다만 몇 줄의 안내로 끝나 버리는 느낌. 그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왠지 서두른 그런 기분. 잘 벼린 칼로 싹둑 끊어낸 듯한 사건의 현장에는 희생자들의 영혼도 잘려져 나가 여기저기 뿌려진 듯했다.

하나 둘 셋... 40에서 끝난 총탄 흔적 번호

400여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진 사건 현장. 미군의 무차별 기관총 난사와 비행기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지금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 노근리 사건 현장 쌍굴 400여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진 사건 현장. 미군의 무차별 기관총 난사와 비행기 폭격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지금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쌍굴 주변을 더 둘러보다가 알 수 없는 표시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흰색의 동그라미와 세모들은 짐작했듯이 총탄과 포격의 흔적들이었다. 쌍굴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누군가 번호를 매겨 논 흔적들도 보였다. 총탄의 흔적을 세다가 그만둔 것 같은 번호는 40번에서 끝나 있었다. 바깥쪽의 숱한 흔적들에는 차마 번호를 붙일 엄두가 안 났던 걸까?

쌍굴 중 한 굴을 통과하는 개울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개울물은 노근리 평화공원을 가로지르는 지천과 합류한다. 하마터면 파묻힐 뻔한 어두운 역사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다행이지만, 굴 안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 개울물을 타고 흘러가 평화공원에 안식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꽃다발의 주인이 언제 다녀갔는지 알수는 없지만, 시들어버린 꽃다발이라도 있기에 위령탑이 외롭지 않아 보였다.
▲ 위령탑 단상위의 시든 꽃다발 꽃다발의 주인이 언제 다녀갔는지 알수는 없지만, 시들어버린 꽃다발이라도 있기에 위령탑이 외롭지 않아 보였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걸음을 돌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위령탑이다. 간단한 묵념을 하고 고개 들어 바라보니 시들어 버린 꽃다발 하나가 단 위에 놓여 있다. 가끔 바람에 펄럭이는 장식들 때문에 죽은 새 한 마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곳을 찾아 영혼을 위로해 주고 있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아픔을 기억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누군가는 가끔 찾아와 주는구나.

위령탑 아래의 피난 장면은 그림인지 사진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등짐을 진 할아버지부터, 엄마 등에 업힌 아이까지, 모두 다 순박한 시골의 우리 이웃들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의 혼령들이여, 부디 영면하시고, 이 땅에 평화를 지켜주소서.

1박 2일의 짧은 여정 중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 또한 그곳이 기억 속 <작은 연못>의 바로 그 현장이었다는 것에서 노근리 평화공원은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으리라.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더라도, 날이 좋은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며, 평화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인다.'6·25 전쟁때 북한으로 끌려가신 분들의 신고를 받습니다.' 전쟁 고아였던 아버지가 문득 생각나서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전쟁이란, 인류가 피해야 할 가장 큰 재앙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렇게 편히 숨쉴 수 있는 평화란 얼마나 값진 것인가?

6.25전쟁 납북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현수막.
▲ 주차장에 붙어 있던 현수막 6.25전쟁 납북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현수막.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태그:#노근리 민간인 학살, #노근리 평화공원, #노근리 쌍굴다리, #작은 연못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