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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알지 못했다. 무심히 지나치던 '전화방'이 A/S 수리기사의 휴식처라는 것을. 지난 11월 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로 상담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A/S 수리기사의 사망이 산업재해에 해당하는 건지, 노동자성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전화방이요? 그곳에서 사망했다고요? 아니 수리기사가 왜 거기서 죽어요?"

나는 A/S 수리기사가 심정지로 사망한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전화방이라는 사실에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방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지만 사실상 '성 산업'의 일종이라는 정도를 알고 있는지라 의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의아함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변했다.

"A/S 수리 기사들이 별달리 쉴 장소가 없나 봐요. 많이들 전화방에서 잠깐 쉬고, 졸고 그러나 봅니다. 사망했던 그 시기에도 일이 너무 많고 힘든데 쉴 곳이 만만치 않았나 봐요."

슬픔인지 동정심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모를 이 감정. 살고자 열심히 일했던 결과가 전화방에서의 쓸쓸한 죽음이라니. 죽음의 원인도 원인이지만 과연 그곳이 죽음의 장소로 적절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이 이렇게 비루하게 취급되어도 되는지...

그러고 보니 도시의 공간이 자기 용도와 걸맞지 않게 오용되고 있음을 새삼 각성하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고시텔에 고시생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주거지로 절대 적절하지 않은 공간을 이 사회가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음을.

따지고 보면 이런 예는 너무도 오래되고 흔하다. 지하실과 옥탑이 창고가 아닌 거주지가 된 지 오래다. 아니 오히려 이것이 당연하다. 그곳에 거주자의 존엄 따위는 없다. 오직 방세와 빈곤이 있을 뿐이다.

계단 및 작은 창고나 지하 통로 옆 창고 역시 창고가 아니다. 그곳은 미화 또는 건물관리 노동자의 공식 또는 비공식 쉼터다(그나마 쉴 곳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곳에도 일하는 자의 존엄 따위는 없다. 오직 임금과 빈곤이 있을 뿐이다. 화려한 호텔과 판매장 이면에는 너무도 상반되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있다.

한쪽에서는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쉴 틈 없이 올라가고, 넓고 그림 같은 집들이 지어진다. 그곳을 지나거나, 그런 광고를 보면 왠지 설레기까지 한다. 그곳에 발 디딜 자들은 오히려 적어지고, 그곳을 유지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자들의 공간은 기가 막히게 숨겨진 장소로 이동된다.

너무 익숙하거나 무감하여 그저 지나치는 공간에서 사람이 자고, 쉬고, 먹고, 일하고 있다. 인간 존엄의 가치가 인정된다면 허용될 수 없는, 부적절한 공간이 너무도 많다. 공간과 쓰임은 일치해야 하고, 적정해야 한다.

공간은 가능한 독점되지 않고, 필요한 자들에게 지급능력과 관계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쾌적하고 쓰임에 맞는 적정한 공간은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하고, 사회 구성원의 삶을 살찌운다.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게 한다.

하기야 누가 이런 말을 몰라서, 생각을 못해서 실현되지 못하겠는가? A/S 수리기사가 적정하게 일해야 하고 그들에게 휴게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라서 전화방에서 죽어갔겠는가. 자본주의 한국은 이윤과 양극화 그리고 풍요와 박탈로 유지되는 국가가 아니던가.

이런 진창같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3만 불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며, 10대 경제대국을 넘나드는 반열에 오르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곳에 누가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끄라고 하는데,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하는데. 성장의 그늘은 늘 있게 마련이니 나부터 얼른 넘어가고 싶고, 너라도 어서 넘어오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크게 외쳐야만 하겠다. 나부터 얼른 넘어가는 것은 어려울 듯싶어, 습하고 어둡고 감춰진 그곳에.

"거기 누가 있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재광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집행위원입니다.



태그:#희망연대노조, #A/S 기사,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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