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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민간 병원이 건강검진 가격 덤핑으로 대학생 고객을 유치한 뒤, 질 낮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진료의 질 저하와 의료시장질서 저해를 불러올 수 있어 의료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 서비스 가격 덤핑 문제가 대학가에도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싼 것이 비지떡? 염가 '대학생 건강검진'


ⓒ 고파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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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의 '소비자포럼' 게시판에 47대 안암총학생회 복지 사업으로 진행된 '종합 건강검진권 공동구매' 불만 후기 글이 올라왔다. 제휴업체인 A병원이 진료를 소홀히 한 채, 별도의 비용이 드는 추가 검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A 병원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 서울시립대 등 20여 개의 대학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와 제휴를 맺고 '대학생 건강검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0여 개의 검사 항목이 있는 40만 원 상당의 건강 검진 상품을 제휴 대학의 재학생에게 4만 원 이하의 가격에 판매하는 '염가 정책'이 홍보의 주된 전략이다. 지난 10월에는 3만 5천 원의 공동 구매 가격을 조건으로 고려대 안암총학생회와 제휴했으며, 해당 건강 검진 상품은 200여 명의 학생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불만 후기 글 작성자 A씨는 "해당 병원의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판매 사원처럼 혈액 검사를 비롯한 검진항목 추가에 열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이씨는 "내시경 검사 시간도 5분 내외로 짧고, 같이 검사 받은 친구는 내시경 후 위염 증상을 토로하기도 했다"며 의료 사고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달 검사를 받았다는 B씨는 "평소에 정상으로 나오던 골밀도 검사가 A병원이 진행하는 건강검진에서 비정상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며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A 병원이 제공하는 건강검진의 신뢰도가 떨어져, 건강 진단에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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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남짓한 재학생이 남긴 해당 글의 댓글도 이와 비슷했다. '내시경 검사가 너무 빨리 끝난다', '내시경 검사 후 위염증상이 생겼다' 등 이씨가 제기한 내시경 검사 문제에 동의하는 의견이 있었으며, '(검진 목록에) 간수치, 간염, 혈당검사가 빠져있어 보건소에서 재검사를 받아야했다'며 검진이 건강상태를 파악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존재했다.

이에 병원 측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해당 건강검진 담당자는 "내시경 검사는 소요 시간이 원래 5분 정도로 짧은 수준이며 의료 사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생 만족도 부분에선 지금까지 제휴 학생회 측에게 따로 불만사항을 전달 받은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내실 부족과 의료법 위반 소지 지적돼

A병원이 진행하는 '대학생 건강검진'에 대한 의료 관계자의 입장은 어떨까.

이양진 고려대 후생복지부 건강센터 간호사는 해당 건강검진 검사 항목을 검토한 후, '내실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시력 측정, 신장 및 체중 측정 등 기본 검사로 검사 항목 개수를 부풀리고 정작 B형간염 항원항체 검사 등 대학 생활에 필수적인 검사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양진 간호사는 "대학생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B형 간염 등의 전염병 예방이 건강검진의 필수 항목이다"라며 "해당 건강검진은 이를 비롯해 당뇨, 성인병 검사 등의 검사 항목이 누락돼 피검사자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협회장 조한익) 관계자도 해당 검진에 간기능 검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20대의 경우 통계적으로 간염 등 간 부분에 건강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검진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질 낮은 의료 서비스가 수반되는 가격 덤핑이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의료법 제 27조 3항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 부담금 면제 ▲금품 제공 ▲교통편의 제공 등을 '환자 유인 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해당 행위가 의료시장질서를 저해할 요지가 크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A병원의 가격 덤핑 정책도 이 같은 '환자 유인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한 내용과 달리 정가에 상당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 의료시장질서를 해하는 요인이 커 의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건강관리에 소홀한 정부와 대학

대학생이 건강검진 가격 덤핑의 피해에 노출된 이유엔 대학생 건강관리를 책임지지 않는 정부와 대학 당국 양 측의 소홀함이 존재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25조 2항은 국가로부터 건강검진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혜자를 ▲직장가입자 ▲세대주인 지역가입자 ▲40세 이상인 지역가입자 및 40세 이상인 피부양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대의 미취업자인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사실상 정부로부터 건강검진 지원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은 신입생 및 재학생을 대상으로 주변 보건소를 지정하거나 대학 자체 시설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대학의 정상 운영을 위한 결핵, 간염 등의 전염병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다.

연세대 건강센터 관계자는 "학교 내 의료 기관은 한정된 예산으로 운영돼 학생들이 원하는 정밀한 검사를 해주기에 무리가 있다"며 "기본적인 검사는 가능하지만, 보다 정밀한 검사를 원한다면 사비를 들여 민간 병원에 방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가격덤핑, #대학생 건강검진, #의료법 27조, #비양심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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