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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연구기관과 대학가에서 다시금 각광을 받는 경제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지속성(Sustainability)'이다. 즉 한 나라의 거시 경제 모델이나 경기 상황이 과연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요즘 세계 경제계를 달구는 화두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침체를 막 벗어나고 있는 미국 경제가 '고용 창출을 동반하는 지속적인 성장'을 과연 할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둘째, 가파르게 낙하하고 있는 유가가 내년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최근의 유가 급락은 어떤 에너지 전문가도 예기치 못한 사태이다. 유가 급락은 개선되고 있는 미국의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셋째, 지난 17일에 있었던 미 연방준비위원회(아래 연준)의 옐런 의장이 기자회견이다. 연준의 이자율 변동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용 창출을 동반한 경제 성장'은 지난 3분기의 자료가 공개되면서 확인됐다. 물론 지속성은 별개 문제이다.

과연 이 소식이 얼마만큼 신빙성이 있는가? 이 소식이 내포하고 있는 취약점은 무엇인가? 이 같은 미국 경기 호황과 고용 시장의 개선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경제 요요(yoyo)'의 일시적인 현상인가? 유가하락은 미국 고용시장에 독이 될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국제경제학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이뤄졌다. 아래는 박영철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활력 도는 미국경제... 고개 드는 '낙관론'

- 최근 미 연준에서 미국 경제의 장밋빛 전망을 확인하는 보고서가 나왔군요. 지난 17일 옐런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2015년 봄까지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으니 이자율을 올릴 생각이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맞습니다. 지난주에 나온 연준의 <베이지 북>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월과 11월 두 달간, 미국 경제 성장이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합니다. 미국경제는 1%대의 낮은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을 동시에 겪으며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란 비아냥까지 들었습니다. 그랬던 미국 경제가 드디어 지난 6개월(2~3분기) 중국의 성장률 보다 높은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77개월의 긴 진통 끝에 일단 발동이 걸린 신규 고용
 77개월의 긴 진통 끝에 일단 발동이 걸린 신규 고용
ⓒ The Heritage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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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노동청이 "11월 한 달 동안 무려 32만1000명의 비농업 신규 고용이 발생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지난 3년 중 가장 높은 월 신규 고용 수치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4년간 미국의 총 신규 고용자 수는 유럽, 일본 그리고 다른 모든 선진국들의 신규 고용자 수를 다 합친 수치보다 크다"고 했답니다. 미국 고용 시장에 봄이 온 것인가요?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펴고자 합니다. 우선 이 같은 신규 고용자 수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직전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 장장 77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까지 가장 회복 기간이 긴 경우는 2000년 침체 후, 약 47개월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보통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경기 순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그 순환 원리의 작동이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예상외로 늦게 나타난 것입니다. 다행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디플레이션 침체 현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고무적입니다. 따라서 77개월의 긴 진통 끝에 일단 발동이 걸린 신규 고용 창출이 지속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 낙관론의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 이유는 이 높은 신규 고용 수치의 질과 내용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건전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실업자 수는 9100만 명으로 별 변화가 없지만, 공식 실업률은 떨어졌습니다. 이는 지난 2013년 11월에 비해 무려 170만 명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연준이 내년 초, 이자율을 올릴 것이라는 성급한 진단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번 노동청의 '11월 고용 조사'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지표가 바로 '자의적 사직률(Quits rates)'입니다. 이 사직률이 두 달 연속 2.2%로 높아졌습니다. 더 높은 임금과 자기 적성에 맞는 회사를 찾아서 과감히 현 직장을 버리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미국 노동 시장은 이런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해고될 걱정에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이제 직장인들이 고용시장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옐런 의장은 이 사직률 지표가 채용 지표(HiringIndicator)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민감한 지표라고 지적했습니다."

증가 중인 자의적 사직률(Quits rates)
 증가 중인 자의적 사직률(Quits rates)
ⓒ Federal Reserve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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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시장의 개선을 뒷받침하는 다른 이유도 있나요?
"우선 장기 실업자 수도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11월의 소매업 매출이 0.7% 상승하여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유가 급락으로 유류서비스업종(gas service station)의 매출은 0.8%나 감소했으나 자동차 매출이 1.7%나 증가했습니다. 소비가 GDP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경제 중심추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하는 미국 경제 구조를 감안할 때, 소매업 매출의 증가는 중산층 소비자의 지갑이 조금씩 열린다는 신호여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마지막 이유로, 평균 시간당 임금이 지난 11월에 9센트 상승한 사실입니다. 12개월 전에 비하면 2.1% 상승한 셈입니다. 임금의 연 상승률이 3%선에 가까우면 연준이 이자율을 높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임금체계는 특별한데 시간당 임금을 받는 고용자 수가 매우 큽니다. 전체 고용자수의 59%나 됩니다. 따라서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은 이들의 소비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조심스러운 낙관론, 조급해서는 안 되는 이유

- 지금까지의 대화를 종합하면, 미국의 여러 경제 지표가 지난 11월 고용시장의 가파른 개선을 알리는 경기 순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건가요? 일부에서는 너무 조급한 낙관론을 견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타난 현상은 경기 변동의 한 국면입니다. 이 국면의 지속성 여부는 정부의 정책 전환과 구조조정을 동반해야 합니다. 따라서 완만한 신규 고용 증가와 임금상승이 실제로 소비자의 두툼해진 지갑을 열도록 하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는, 정부의 공식 실업률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실업률은 아직 10%를 넘습니다. 둘은, 파트 타임 고용자수가 아직도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하나의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은 과연 신규 고용증가가 실질 임금 상승의 압박으로 작용할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실업률 하락이 가지는 경제적 의미에 대한 해석이 모호합니다. 미국은 크게 두 개의 실업률을 조사합니다. 위에 인용한 5.6% 실업률은 미국 정부의 공식 실업률(U3)입니다. 이 실업률은 직장을 계속 찾고 있는 실업자만을 포함합니다. 다른 하나(U6)는 직장 찾기를 포기한 실업자들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실업률입니다.

U6 실업률은 아직도 매우 높습니다. 2014년 11월, 11.4%입니다. U3 실업률 5.6%의 거의 두 배입니다. U6 실업률은 2000년에 6.9%, 2006년에 7.9%이다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무려 17.1%까지 2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2013년 12월에 13.1%로 내려왔다가 지난 11월에 11.4%까지 하락한 것입니다. 노동 경제학자들은 이 U6 실업률이 적어도 8~9%선으로 낮아져야 노동시장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전반적인 임금상승으로 이여 진다고 주장합니다."

- 한국에서도 지난 10월 '고용 동향'에 미국의 U6와 비슷한 개념인 '체감 실업률'이란 지표를 도입했군요. 한국의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의 괴리도 미국 마냥 큰 차이가 있나요?
"한국 정부는 '체감'이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공식 물가 지수와 체감 물가 지수가 있듯이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처음 발표한 내용을 보면 체감 실업률이 공식 실업률의 3배인 10.1%라 합니다. 미국과 상황이 비슷합니다."

- 미국 고용 시장의 회복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트타임 고용자 문제입니다. 2014년 10월 현재 파트타임 고용자 수는 2710만 명입니다. 총 고용자 대비 파트타임 고용 비중이 크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에 16.9%였다가 2014년 10월에 18.9%까지 상승했습니다. 심지어 2025년경에는 파트타임 고용자의 비중이 40%선까지 오를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유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와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기술진보의 대부분이 노동 절약형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노동수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 구조 변화입니다.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은 고학력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킬 구조적인 아킬레스건입니다. 옐런 의장이 "지속가능한 예산 안에서 이들 파트타임 고용자를 위한 '번영 공유' 대책과 소득양극화 심화를 방지할 중장기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구매력의 차이가 크지 않다
▲ 미국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구매력의 차이가 크지 않다
ⓒ PEW Research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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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고용 시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매우 고무적인 얘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고용시장의 개선이 노동자의 실질 임금 상승으로 연결 되느냐?'라고 봅니다. 지난 20여 년 미국의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거의 상승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고용시장의 회복이 임금 상승을 동반할 것으로 보시나요?
"훌륭한 질문입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20~30년의 기록을 보면 미국의 노동자 임금은 전혀 상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본 경제 원리인 노동 생산성과 노동 임금의 상관관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0년과 2007년 동안 미국의 생산성은 16.0% 증가한 데 반해 노동자 임금은 지표에 따라 0.9%에서 -0.6% 증가하였습니다. 노동자들이 미국 경제 성장에 공헌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지난 25년간 미국 GDP는 83% 상승했는데 임금은 거의 변동이 없고 기업의 이윤은 같은 기간 두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퓨 리서치센터 (Pew Research Center)'에 의하면 미국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미국 성인의 59%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대답했는데, 2011년에는 이 수치가 51%로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중산층이 총 GDP에서 차지하는 몫이 60%에서 45%로 크게 하락했습니다."

유가 하락 등 돌발변수 많아... 실질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야

경제정책 연구소 자료, 노동 생산성과 노동 임금의 상관관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실질 평균 시간당 임금과 생산성 갭 경제정책 연구소 자료, 노동 생산성과 노동 임금의 상관관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 Economic Policy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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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번에도 지속적이고 괄목할 만한 임금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솔직히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는 구조적으로 지속적인 임금상승이 어렵다는 게 증명됐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의 '번영 공영' 의지와 성장 과실의 보다 평등한 분배가 절실합니다."

- 돌발 변수인 유가의 급락이 미국 경기 호황과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을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문제는 '이 돌발적인 유가 하락이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얼마까지 내려갈 것인가'입니다. 현재로는 이 두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너무 큽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항은 크게 세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최근 5년간 급성장 하고 있는 미국의 셰일 오일과 가스 생산이, 차후 채산성의 악화로 급제동을 당할 것인가? 둘은, 석유 수출에 크게 의존해온 러시아와 이란·베네수엘라 등의 경제가 어떻게 이 위기를 대응할 것인가? 혹시나 이들 국가가 야기하는 지정학적 정치 소요나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다시 위기에 빠질 것인가? 세 번째 이슈는 오일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한국이나 일본 등의 경제가 재도약의 발판을 맞이할 것인가?

유가 급락의 가장 심각한 직격탄을 맞는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1998년 같은 디폴트가 재연될 위기마저 우려됩니다. 2015년에는 큰 경제 침체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최근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루블화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대폭 풀어야 했습니다. 한 때 5000억 달러가 넘던 외환보유고가 4160억 달러로 감소했습니다. 현재 10% 선인 인플레이션의 추가급증을 우려한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 16일 새벽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연 17%로 6.5%p 인상한 것은 절박한 상황을 엿보게 합니다."

- 유가 급락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봅니다. 옐런 의장도 "유가 급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다"라고 했는데요. 지금 현재로서는 '관망(Wait and see)'의 자세밖에 별 다른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옐런 의장은 '우리의 금리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며 '앞으로 연준의 두 번(2015년 1월과 3월) 회의에서는 금리 인상이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미국의 고용시장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태그:#미국 경제, #연준, #옐런 의장, #고용, #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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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이코노미스트, 통계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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