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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역사적인 화해를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한국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쿠바 정부가 간첩 혐의로 수감해온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과 쿠바는 상대방의 수감자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석방하며 지난 1961년 단절된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오랜 앙숙이었던 양국이 냉전 유물을 전격 청산하면서 국제사회 판도에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쿠바 양국은 지난 1년간 막후 협상 끝에 2009년 간첩 혐의를 받고 쿠바에 수감됐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하기로 합의한 것이 관계 정상화의 단초 역할을 했다.

미국 국무부의 대외원조기관 국제개발처(USAID) 직원으로 일하던 그로스는 2009년 현지 유대인 단체에 인터넷 장비를 설치하려다 체포됐다. 쿠바 정부는 그가 반정부 활동을 펼치려고 했다는 혐의로 2011년 재판을 통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해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미국도 그로스의 석방에 맞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쿠바 정부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간첩 활동을 펼치다가 체포된 쿠바 정보요원 3명을 석방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미국의 쿠바 봉쇄적책은 실패" 인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국교정상화 선언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국교정상화 선언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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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은 쿠바와의 새로운 관계를 열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개시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고 고위급 인사 방문을 통해 국교정상화 실무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미국인 방문 확대, 송금한도 상향, 교역과 금융거래 원활화, 인도적 지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검토 등 그동안 쿠바를 옭아매고 있던 각종 제재도 풀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50년 넘게 쿠바를 압박한 봉쇄정책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봉쇄정책이) 쿠바의 민주화와 번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오히려 미국이 중남미를 비롯한 쿠바의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교를 단절했던 1961년처럼 쿠바는 여전히 카스트로 일가와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며 "똑같은 정책을 고집하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없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이제 쿠바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장(new chapter)을 열고 미국인과 쿠바인의 협력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한 국가를 실패로 몰아가는 것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환영한다"며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와 양국 고위급 협의를 거쳐 국교정상화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그는 "양국 간에는 아직도 인권, 대외정책 등 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이견이 존재한다"면서도 "하지만 양국이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편견 없는 세련된 태도로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세기 넘은 악연, 어떻게 풀었나

반세기가 넘은 악연을 끊은 것은 양국 지도자의 '타이밍'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둘 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스타일이고, 이미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선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 역시 여론의 반대에 큰 부담을 갖지 않고 국교정상화 합의를 결단했다.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독재를 유지하던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쿠바 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 기업의 국유화를 단행하자, 미국은 1961년 1월 쿠바와의 국교를 단절했다.

이듬해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를 단행하고 러시아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 시도 등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미국은 수십만 명의 쿠바 난민을 받아들이며 카스트로 정권을 압박했고, 쿠바와 동맹을 맺은 중남미 공산 국가들과도 외교 마찰을 일으켰다.

1977년 양국이 서로의 수도에 대사관 아래 단계인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며 관계가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1996년 쿠바 미그기가 미국 민간 항공기를 격추해 미국인 3명이 사망했고, 미국은 보트를 타고 망명하다가 난파 사고를 당한 쿠바 소년의 송환을 거부하면서 다시 냉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새롭게 정권을 잡은 오바마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의 권력을 물려받은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서로 관계 개선 의지를 나타내며,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추모식에서는 서로 만나 악수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양국은 서로의 수감자 석방 협상에 돌입했고, 결국 극적인 타결을 이루면서 53년 만의 국교정상화에 이르렀다. 이로써 쿠바와 함께 중남미의 반미 노선을 주도하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지가 또 다른 관심사로 떠올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내고 "유엔은 양국의 우호 관계 증진을 위한 모든 지원을 할 수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양국 국교정상화를 향한 결정적인 진전을 이뤄낸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태그:#미국, #쿠바, #버락 오바마, #라울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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