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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보다 많이 먹을 걸 산 걸로 보니 아저씨의 간식을 사다드린 날인 듯 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보다 많이 먹을 걸 산 걸로 보니 아저씨의 간식을 사다드린 날인 듯 하다.
ⓒ 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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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살가운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군청색 제복을 입고 늘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앉아 인사를 건네던 사람. 그는 바로 경비아저씨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으면 온화해 보이던 아저씨는 영화 <무간도>에 출연한 배우 황추생을 닮았다. 물론 친구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개학 첫 날,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고 아저씨는 씩 웃으면서 '니하오'라고 답했다. 그는 항상 학교 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들어오려고 하면 문을 열어주고 밤이 되면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잠그는 게 그의 중요업무 중 하나였으니까.

하루는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경비아저씨 생각이 나서 간식을 사다 드렸다. 아주 작은 선물이었지만 아저씨는 무척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그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어느 날 아저씨는 창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불렀다. 들어가 보니 내게 연필을 하나 건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종이에 적어 내게 보여줬고 나는 가지고 있던 전자사전으로 간자체의 뜻을 찾아봤다. 

"이거 니 꺼야? 잃어버렸어?"
"아니요. 제 꺼 아닌데요."
"그래? 그냥 가져가. 이 앞에서 발견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너 껀 줄 알았어."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 아저씨에게 연필을 받아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간식을 받은 고마움 때문에 내게 뭔가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아저씨는 한국에서 편지가 오면 창틀을 가리키면서 내게 먼저 알려주기도 하고 나 또한 종종 초소에 들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어가 빨리 늘어서 아저씨 말도 알아듣고 말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학교 선생님이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건 알아들을 수 있는데 아저씨가 하는 말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 알았다. 아저씨는 방언을 심하게 사용하셔서 내가 알아듣지 못 했던 거였다. 한번은 모임이 있어 룸메이트들과 밤늦게 학교로 돌아왔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저 안계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때 아저씨가 내복차림으로 달려 나왔다가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밤늦게 다니면 위험해."

이튿날 아침 아저씨는 내게 걱정 어린 충고를 했고 나는 그 후로 무조건 일찍 기숙사로 돌아왔다. 가족의 곁을 떠나와 있는 내게 아저씨는 큰 어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서 짐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리고 택시를 잡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 황급히 나오셨다. 하지만 그 순간 택시는 출발해버렸고 한 마디 건네지도 못 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했다. 몇 주 뒤 돌아와 인사를 하자 아저씨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내가 아예 귀국하는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인사를 건넸고 이야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한국에 다녀온 뒤로 슬럼프에 빠졌고 룸메이트와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 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다보니 아저씨를 봐도 전처럼 살갑게 다가가지도 않고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점점 우리의 사이는 어색해졌다. 사실 그렇게 만든 건 나의 태도였지만.

얼마 뒤 학교에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던 매점을 없애고 운동장을 갈아엎었다. 더 많은 학생들이 오갈 수 있게 교문도 이전해서 확장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의 근무초소지도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눌 일도 편지가 왔다고 알려줄 일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건넬 일도 없어진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큰 길로 통해 새로 생긴 교문을 통과하다가 우연히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잘 지내시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눈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야했다.

내게 제복을 입은 경비아저씨는 슈퍼맨처럼 듬직한 존재였는데. 타국에서 외롭게 지내던 내게 더 없이 다정했던 아저씨,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태그:#경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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