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포스터

<카트> 포스터 ⓒ 명필름

매년 연말이면 극장마다 신작들이 넘쳐난다.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영화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난 끝에 선한 자가 승리하며,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고됨을 견딜 수 있고, 결국 사랑이 충만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그렇게 두어 시간의 판타지로 우리는 위로받고 희망을 품는다. 설령 극장 밖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가혹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연말의 화려한 극장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어쩌면 외면하고 싶을 우리의 오늘을 보여주며, 큰 영화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숨 쉬고 있는 영화가 있다. 전태일 열사 44주기이자 영화의 바탕이 된 홈에버 부당해고노동자들의 512일간(2007년 6월 30일~2008년 11월 13일)의 파업이 종결된 날인 지난 11월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이다.

영화 속 그녀들의 직장은 국내 최고 대형마트 '더 마트'이다. 비정규직으로 계산원, 청소노동자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더 마트'의 직원이다. 아니 곧 '더 마트'의 '정직원'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선희(염정아 분)는 모범사원이 되기 위해 5년간 벌점 하나 없이 추가수당 없는 추가근무를 하며 고생한 것이며, 20년 넘게 청소 일을 한 순례(김영애 분)는 형편없이 좁고 초라한 휴게실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꼭 정직원이 아니더라도 계약기간 동안은 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혜미(문정희 분)가 탈의실에 쳐들어온 진상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고도, 옥순이 생각의자에 앉아 반성문을 쓰고도, 미진이 계산대에서 마주친 동창에게 자존심이 상해도 계속 일한 것은, 어쨌든 계약기간 동안은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편법과 술수로 그들을 부당해고 했고 그렇게 그녀들은 긴 싸움을 시작했다.

영화 초반, 정규직 관리 직원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애매한 호칭을 따라 서로를 '여사님'이라고 부르던 그녀들은 함께 밤을 지새우고 고단함을 나누는 동안 서로의 이름을 찾으며 비로소 '언니'들의 연대를 이룬다.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였던 노조에 대해 회사와 공권력이 소통 대신 무시, 폭력, 회유로 일관하는 동안 그녀들은 단단해졌다.

자신들을 외면했던 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했고, 경찰과 용역의 폭력에 맞섰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그녀들은 차가운 겨울, 살수차를 향해 카트를 밀며 달려갔고, 결국 노조 지도부 12명의 희생으로 지도부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의 복직이라는 완전하지 않은 승리를 이뤘다.

그렇게 <카트>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카트는 오늘도 여전하다. 작년부터 투쟁해서 올해 초 임금 인상안을 타결한 홈플러스를 비롯하여 다른 유통업체들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다를 바 없다. 회사는 고객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목소리의 높낮이, 머리모양과 화장법까지 통제하고 정당한 휴식시간과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명필름


회사와 고객 앞에 노동자들은 투명인간으로, 을이자 병으로 숨죽이고 있다. 어디 유통업계만의 문제이겠는가. 회사에 속하지 못하고 유목민처럼 떠도는 대기업 통신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혹한에 다시 굴뚝 위에 올랐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임금체불과 신체적, 언어적, 감정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갑에서 을, 그리고 다시 병으로.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우리의 카트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연대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공감하는 것이며,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마트 안에 홀로 서서, 투명인간이 아니니까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그리고 그저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을 뿐이라는 선희의 외침 앞에 귀 기울이고 같이 마음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이 연대이다.

함께 하고 함께 책임지는 것이 이 사회 속에서 함께 묶여 있는 우리가 보여 줄 연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으며, 정부는 무엇을 하였나. '비정규직 해고법'이 되어버린 '비정규직 보호법'을 개선한다며 정부는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기간을 연장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 놓았다. 그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직원을 머슴으로 여기는 경영자들, 스스로 노동자와 구분 짓는 수많은 '근로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겨울은 낮은 곳에 더 가혹하고, 길다. 그 겨울의 한복판에서 영화 <카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무겁게 곱씹어 보아야하겠다. 돌아오는 봄은 조금은 더 따뜻해야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건강세상네트워크 웹진 <헬스와치> 12월호에 실린 글이다.
카트 비정규직 연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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