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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는 두 개의 '문건'이 등장한다. 하나는 '정윤회 동향 보고서'(아래 정윤회 문건)이고, 다른 하나는 '박지만-서향희 부부 동향 보고서(아래 박지만 문건)이다. 정윤회 문건은 지난 11월 28일 공개했지만, A4 100여 쪽 분량의 박지만 문건은 베일에 싸여 있다.

특히 청와대의 박지만 문건 처리를 두고 논란과 의혹이 깊어지고 있다. 박지만 EG 회장이 박지만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그 이후 '보고'와 '조치' 등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관천 경정 청와대 퇴진을 계기로 유포된 '박지만 문건'

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관천 경정이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지나치자 기자들이 당황해서 뛰쳐나오고 있다.
▲ 포토라인 지나친 박 경정, 기자들 당황 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관천 경정이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지나치자 기자들이 당황해서 뛰쳐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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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던 박관천 경정은 지난 1월 6일 정윤회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 그림자 권력으로 불려온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만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청와대 내부 상황 등을 체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세계일보>는 지난 11월 28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정윤회 문건을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 문건 내용을 구두로 보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의혹을 샀다. 김 실장이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눈치를 보고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은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서울지방경찰청·경찰청 지능범죄수사팀 근무,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일명 '암행감찰반')과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등을 통해 수사와 정보분석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두 번이나 대통령상과 훈장 등을 받았다는 점에서 박 경정의 원대 복귀는 석연치 않았다. 그를 보호한 '윗선' 조응천 비서관마저 지난 4월 갑자기 사퇴했다.

문건 유출 사건의 출발은 이렇게 수상한 퇴진에 있었다. 특히 박 경정은 청와대를 나오면서 다량의 청와대 내부문건을 반출했다. 반출한 청와대 내부문건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보관했다. 서울 남산 예장동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부지에 위치한 정보1분실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 4계 외근 사무실을 가리키는 용어다.

박 경정은 애초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1일)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조사에서 "청와대에서 출력한 문건을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겼다"라며 기존 주장을 뒤집었다.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커졌다. 정윤회 문건에 이어 '박지만 문건'이 사건 중심에 등장한 것이다. 

박지만 문건의 전달 경로로 등장한 '김기춘-정호성-남재준'

박 경정이 지난 2월 가지고 나온 청와대 내부문건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세계일보> 등 일부 언론사와 한화그룹 등 일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검찰은 현재까지 벌인 수사를 통해 그 경로를 '박관천→한 경위→최 경위→언론사·대기업'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경정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정보1분실에 근무하는 한아무개 경위 등에게 '직접' 유포했는지에서는 이견이 있을 뿐 이 경로는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는 지난 5월께 박 경정이 반출한 청와대 내부문건들 가운데 박지만 문건을 입수했다. 박지만 문건은 A4 100여 쪽의 분량으로 박지만 회장 주변 인사들의 비위 의혹과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의 동향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 5월 12일 박 회장을 만나 이 문건을 건넸다. "문서 유출 등 청와대 보안시스템에 경고음을 울려야 할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이 <세계일보>의 사후설명이다(12일자).

박지만 회장은 그로부터 1주일 뒤 다시 <세계일보> 취재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박 회장은 건네받은 박지만 문건 처리와 관련해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줬고, 이를 김기춘 실장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자신의 육사 선배인 남재준 국정원장에게도 문건 유출 사건을 알렸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박 회장은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받아 국가정보원 인력이 들어가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라며 청와대 특별보안점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박지만 문건의 유출 경위만 조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문건 유출 경위뿐만 아니라 '문건 작성 경위'와 '내용 진위' 등을 조사했는지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문건'이 동시에 등장하는 이유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정윤회씨(10일)와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EG회장(15일).
▲ 검찰 출석하는 정윤회-박지만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정윤회씨(10일)와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EG회장(15일).
ⓒ 유성호/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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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검찰에서 조사받기 전까지만 해도 박지만 문건의 전달 경로로 김기춘, 정호성, 남재준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5일 검찰조사에서 "<세계일보> 기자로부터 A4 용지 100여 장 분량의 청와대 내부문건(박지만 문건)을 건네받아 이를 민정수석실에 고스란히 전달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청와대 내부문건이 유출되고 있으니 진상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도 했다.

박지만 문건의 전달 경로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새롭게 거론된 것이다. 박지만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된 시기인 지난 5월-6월께 민정수석실라인은 홍경식(민정수석)-우병우(민정비서관)이었다. 박 회장이 애초 전달 경로로 거론한 김기춘, 정호성, 남재준 등은 쏙 빠진 것이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남재준 원장과 정호성 비서관에게 연락한 적은 없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부와 청와대 전·현직 핵심인사들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 회장이 박지만 문건의 전달 경로를 검찰조사에서 바꾼 것은 누나인 박 대통령의 부담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김기춘-정호성 경로'든 '민정수석실 경로든' 박지만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된 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허술한 보안-검증 시스템'이라는 지적에서 비켜갈 수 없다.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문건들이 유출된 것이 '사실'인데도 청와대의 사후처리는 아주 허술했던 것이다. 청와대에서 취한 조치로는 조응천 비서관 사퇴, 박관천 경정 등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들의 원대복귀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박 회장으로부터 문건을 건네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민경욱 대변인은 17일 "신문마다 논조와 지적이 다 다르다"라며 "확인해 보겠지만 일일이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건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다"라며 "검찰에서 발표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입을 닫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건에 '정윤회 문건'과 '박지만 문건'이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정윤회파와 박지만파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인사들을 두고 갈등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청와대는 정색하고 부인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정윤회파와 박지만파가 치열하게 권력암투를 벌였을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태그:#박지만,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 #김기춘, #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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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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