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하 10도보다도 더 떨어진 오늘 정말 많이 추웠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와락 끌어안고는 차가운 볼을 두 손으로 비벼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제 품에서 '아 좋다. 엄마 냄새'라고 중얼거리며 좋아합니다.

엄마냄새. 제가 기억하는 엄마냄새는 밖에서 일하시던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실때 '휙~' 하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나는 냄새입니다. 그 냄새와 함께 엄마 손에 가득한 겨울 먹거리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추운 바람 뒤에는 뭔가 좋은 것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어려서 엄마만 보고 큰 저와는 달리, 자의든 타의든 어릴 적 많은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낸 아이들에게는 엄마냄새만큼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냄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집 선생님 냄새입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세상 누구보다, 어쩌면 엄마보다도 더 많이 저희들을 알고 이해해주셔서인지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에 대한 기억과 냄새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관련기사 : 어린이집 선생님의 손편지, 울컥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길을 지나가다가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쓰시던 화장품이나 향수냄새가 나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킁킁거리며 "우리 선생님 냄새 난다"라며 선생님의 냄새와 지나간 추억을 떠올립니다.

아이는 그렇게 7년 인생 중 4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며 가끔씩 "OOO 어린이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인것 같아요. 선생님이랑 친구들 다시 만날 수는 없겠죠?"라며 아쉬워 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따끈하고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육아휴직으로 가끔씩 연락하는 회사동료이자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어린이집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다. 그 선생님은 예쁜 외모와 통통 튀는 재치와 발랄함으로 아이들을 늘 재밌게 해주었던 분입니다. 선생님의 아버지가 슈퍼를 하고 있어 아이들이 "선생님은 과자 매일 먹을 수 있겠다"라고 부러워한 선생님입니다.

엄마들이 몰래 몰래 준비하는 결혼식 축하

몰래 몰래 주말에 모여 연습하는 아이들입니다.
▲ 결혼식 축가 연습 몰래 몰래 주말에 모여 연습하는 아이들입니다.
ⓒ 김춘미

관련사진보기


아이가 좋아하는 그 어린이집은 감사를 전하는 마음을 일절 받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가끔 아이들을 보러오신 할머니가 빵이나 간식거리들을 사서 선생님들 드시라고 사오시더라도 절대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손이 미안하지 않도록 할머니 할아버지의 두 손을 잡으시고 "죄송해요. 할머님, 저희가 받을 수가 없어서요. 마음만 받을게요. 정말죄송해요" 하셨습니다.

이번 선생님 결혼식도 우연히 한 엄마가 알게 되어 알려진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축가라도 불러드리고는 싶지만 분명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 몰래 결혼식 축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을 포함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자연스레 몇 주에 걸쳐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몰래 몰래 준비하는 결혼식 축가 연습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표정이 더욱 재미있어 보입니다. 율동하는 제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아이도 정말 좋아합니다.

3살 때 처음 엄마와 아빠를 따라 어린이집으로 출근하던 아이들인데 정말 많이 컸습니다. 당시 아이들은 거의 다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걷지도 못해 어린이집에서는 유모차를 새로 구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벌써 어린이집 최고 형님 7살 반이되었고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큰 아이들, '어린이집만 5년, 5학년 졸업'을 앞둔 아이들의 스페셜 무대는 아마 어린이집 역대 불문 최초 축가 공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 냄새를 그리워하는 아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축가 준비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주 결혼식에 가서 선생님을 축하해 드리겠다며 벌써부터 들떠 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몰래 준비한 축가에 놀라고, 또 멀리 이사간 우리 아이를 보고 또 한번 놀라실 겁니다. 놀랄 일이 정말 많은 결혼식, 선생님께 좋은 선물이 될 거라 믿습니다.

올 들어 가장 추운날 들려온 어린이집 선생님 결혼식과 축가 준비 소식에 저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다음주 토요일, 저희 가족은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해야 하지만 그날이 너무도 기다려집니다. 하지만, 다음주 결혼식때까지는 모두 비밀입니다. 축가도 또 저의 가족의 결혼식 참석도 말입니다. 그때까지 모두 쉿! 입니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의 기억속에 엄마냄새만큼이나 강하게 남아있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냄새,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 선생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몰래 몰래 준비하지만 큰 축하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태그:#결혼식 축가, #어린이집 선생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