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일본 축구가 '패닉'에 빠졌다.

일본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하비에르 아기레(멕시코) 감독이 스페인 프로축구에서 활동하던 시절 대규모 승부조작 의혹에 휘말린 것이 드러나 일본 축구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최근 스페인 검찰은 지난 2011년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최종전 레반테와 레알 사라고사의 경기에서 승부조작 혐의를 파악했다며 당시 양 팀 감독과 선수들, 관계자 등 42명을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아기레 감독의 이름도 포함됐다.

내년 1월 9일부터 호주에서 열리는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기레 감독의 승부조작 정황이 구체화되자 일본축구협회가 초비상이 걸렸다.

2부 리그 강등 피하려고... 승부조작의 내막

 하비에르 아기레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하비에르 아기레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 EPA/연합뉴스


사건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2011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아기레 감독이 이끌던 레알 사라고사는 부진을 거듭하며 2부 리그로 강등될 위기에 처했다. 레알 사라고사가 1부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종전 상대인 레반테를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레알 사라고사는 이미 1부 리그 잔류가 확정된 레반테에 2-1 승리를 거두며 극적으로 강등을 피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레알 사라고사가 레반테 경영진과 선수들에게 검은 돈을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2부 리그로 강등되면 당장 TV 중계권, 광고수입 등이 떨어져 구단 재정이 막대한 타격을 입고 핵심 선수들도 이적을 요구하게 된다. 때문에 스페인뿐만 아니라 대다수 유럽프로축구 구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하부 리그 강등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레알 사라고사 경영진은 아기레 감독과 선수 9명에게 96만5000유로(약 13억 원)를 송금했다. 이들 9명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레반테의 홈구장에서 상대 팀 선수들을 만나 돈을 주며 고의로 져줄 것을 요구했고, 레반테 선수들은 이 제의에 응했다.

검찰은 이미 아기레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의 계좌 기록을 확보해 승부조작 협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만약 법정에서 혐의가 인정된다면 이들은 1∼6년까지 자격을 정지당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페인은 지난 2011년 스포츠 승부조작 관련 법률을 제정해 강력한 비리 척결 의지를 나타냈고, 이번 사건을 승부조작 형법으로 처벌하는 첫 사례로 만들어 스포츠계에 경종을 울린다는 계획이다.

아기레 감독은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후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아기레 감독은 지난 6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승부조작을 벌인 적이 없고 (검찰 수사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나도 언론 보도가 나온 후 의혹을 알게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레알 사라고사에서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안데르 에레라도 "나는 결코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내가 증언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기소 명단에 이름을 올린 모든 인물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아기레 영입에 공들인 일본 '당혹' 

아기레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16강으로 이끌었고 스페인 프로축구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사라고사, 에스파뇰 등 명문 구단을 지휘하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일본축구협회는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 남미 축구에 정통한 아기레 감독이, 화려한 기술과 정확한 조직력을 추구하는 일본 축구와 잘 어울릴 것으로 기대하고 수년간 공을 들인 끝에 지난 6월 영입했다.

2014 아시안컵 우승으로 아시아 정상을 탈환한 뒤 2018 러시아 월드컵 4강을 바라본다던 일본 축구는 '아기레호'가 본격적으로 출범도 하기 전에 사령탑이 승부조작에 휘말려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르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빠졌다.

일본축구협회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공영 NHK에 따르면 일본축구협회는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아기레 감독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며 혐의가 입증된 것도 아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만큼 사태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볼 것"이라며 "아기레 감독 측과 협의해 자체적으로 사태 정보를 파악하고 아시안컵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싸늘한 축구팬들... "당장 해임해야" 절반 넘어

그러나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일본 최대 스포츠신문 <닛칸스포츠>가 16일 성인 11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아기레 감독의 결백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37%에 달했고,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40%로 가장 많았다. 반면 "아기레 감독을 믿는다"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또한 사태를 지켜보되 아기레 감독이 당장 내년 1월로 다가온 아시안컵을 지휘하는 것은 "매우 문제"라고 응답한 비율은 64%로 나온 반면 "괜찮다"는 의견은 13%에 불과했다. "당장 해임해야 한다"는 의견은 52%에 달했다.

일부 축구팬들은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소란 떠는 것 같다"고 아기레 감독을 지지했지만 대다수 팬들은 "일본축구협회가 확실한 검증도 없이 너무 성급하게 감독을 선임한 것 같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본축구협회 무라이 미쓰루 부회장은 "아직 어떤 결정을 내릴 확실한 정보가 없지만 기소까지 가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축구대표팀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며 사태가 심각해지면 협회도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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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축구 하비에르 아기레 승부조작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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