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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일꾼들만 몇 명 들락거렸다. 철망으로 된 육중한 문은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신분을 확인하고 사람을 골라 들여보내고 있었다.
 현장의 일꾼들만 몇 명 들락거렸다. 철망으로 된 육중한 문은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신분을 확인하고 사람을 골라 들여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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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북 청도에 볼일이 있어 갔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길가가 수상하다.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컨테이너 박스 임시처소가 있고, 현수막이 걸려 있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는 용감한 할매들이 사는 각북면 삼평리인 줄 몰랐다. 차를 멈추고 지나가는 할머니 한 분에게 물었다.

"여기가 삼평리입니까?"
"근데여, 와 그러십니꺼?"
"아, 여기가 송전탑 반대하는 그 삼평리라고요?"
"야, 그런데여!? 난 거게 안 갑니더."

돌아오는 대답이 몹시 퉁명스러웠다.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어째 할머니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순간 머리로 무엇인가 훽 지나가는 걸 체감했다. <삼평리에 평화를>(한티재)을 읽은 적이 있다. 송전탑이 마을 주민들을 두 조각으로 나눠 놨다고. 할머니의 반응에서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물었던 할머니는 '송전탑 찬성파'였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여기가 송전탑 반대하는 삼평리입니까?"라는 말을 한 것 자체가 심기를 건드린 거였다. 오, 이런. 할머니에게 머리를 굽혀 인사를 하곤 내 길을 갔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삼평리를 다시 지나게 되어 차를 한 곁에 세우고 찬찬히 둘러 볼 수 있었다.

고리 원전에서 밀양, 청도를 지나는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은 벌써 거의 완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삼평리는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우뚝 솟은 산들 가운데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고리 원전에서 밀양, 청도를 지나는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은 벌써 거의 완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삼평리는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우뚝 솟은 산들 가운데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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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에서 밀양, 청도를 지나는 삼평리의 345kV 송전탑은 벌써 거의 완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삼평리는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우뚝 솟은 산들 가운데 살포시 자리하고 있다. 그 양쪽 산과 산을 이어 송전탑이 내달아간다. 그러니까 양쪽 산 아래 주민들의 전답이며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있는데 그 위를 송전탑이 가로질러 통과하는 것이다.

밀양에 이어 청도에서도 송전탑은 이미 세워졌다. 송전탑 전국대책회의가 "오랜 세월 온 힘을 다해 싸워 왔으나 공권력의 강력한 비호 아래 올 12월 말에 시험 송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이미 송전선도 얹혀 있었다. 안전모를 쓴 한 사람에게 물으니 지금은 주변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산 밑 송전탑 아래에서 굴삭기가 열심히 움직이는 걸 봐 송전탑 부근의 정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책에서 보았던 할매들은 보이지 않고 어지러이 현수막들만 센 바람을 맞아 씩씩~ 소리를 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가 내건 현수막이 제일 눈에 띈다. 내용은 "국가가, 한전이, 경찰이 할매들이 살아 온 시간과 미래를 강탈했다"는 것. 이미 '강탈했다'고 쓰고 있는 현실이 몹시 가슴 아팠다. 과거형이다. 과거형이 되기 전에 무언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이미 과거형이 되었으니.

컨테이너박스로 된 임시 거처인 듯한데, 할매들이 불침번을 서가며 반대운동을 하는 반대운동본부로 추정된다.
 컨테이너박스로 된 임시 거처인 듯한데, 할매들이 불침번을 서가며 반대운동을 하는 반대운동본부로 추정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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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지, 호랑이인지, 말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림이 나를 사로잡지 않았다면 아마 난 이곳을 그냥 스쳐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로 된 임시 거처인 듯한데, 할매들이 불침번을 서가며 반대운동을 하는 반대운동본부로 추정됐다.

정말, <삼평리에 평화를>에서 보았던 할매들을 보고 싶었는데 한 명도 없었다. 현장의 일꾼들만 몇 명 들락거렸다. 철망으로 된 육중한 문은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신분을 확인하고 사람을 골라 들여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송전탑 반대운동을 하는 그 용감한 할매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지나는 행인에게 물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요?" 항상 그곳에 있었는데 그날은 없다는 정도의 정보가 고작이었다. 집에 와 <오마이뉴스>에서 청도할머니들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15일(내가 삼평리를 방문한 날)부터 2박3일 동안 전국을 순례하며,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장, 홍천군 골프장 반대 주민 농성장, 과천 코오롱 농성장, 평택 쌍용차 굴뚝 농성장, 안산 합동분향소 등을 찾았다. 17일 전라남도 나주 한전 본사를 끝으로 전국 순례를 마무리한다.(관련 기사 : 최악 한파 뚫고... 23명 할매·할배들의 연대 순례)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가 내 건 현수막이 제일 눈에 띤다. 내용은 “국가가, 한전이, 경찰이 할매들이 살아 온 시간과 미래를 강탈했다”는 것.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가 내 건 현수막이 제일 눈에 띤다. 내용은 “국가가, 한전이, 경찰이 할매들이 살아 온 시간과 미래를 강탈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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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억조(75) 할머니가 "자식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우에 사노, 이런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억조(이어댁) 할머니는 <삼평리에 평화를>에서도 주옥같은 어록을 남긴 할머니다.

"빨갱이라 카거나 말거나 내 발등에 불 꺼야 된다. 그죠? 내 발등에 불 꺼야지. 아들딸이 머라 캐도, 인자는 안 된다. 이때까증 싸운 게 얼만데, 싸운 게 원통하니 나뚜라. 내 발등에 불 끌란다. 돈 요구하는 거 아니다. 왜 한전이 내 재산을 갖다가 다 직이뿌고 이래가지고 뭐로 묵고 살라카노."(<삼평리에 평화를> 71쪽)

코오롱타워 앞에서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거 아이가"라는 말을 했다는 한옥순(67) 할머니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책을 통해 만났던 용기 있는 삼평리 할매들, 이어댁 이억조 할매, 소골댁 김선자 할매, 성곡댁 김춘화 할매, 부산댁 이차연 할매...

그러나 내가 삼평리에 간 15일에는 그들은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장에 있었다. 비록 용감한 할매들이 삼평리에 없어 못 만나긴 했지만 그들의 채취가 서린 현장을 둘러보고 느낀 게 많다. 그 중 철조망 대문 옆에 놓인 글귀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저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싸울 것이다."

송전탑을 못 세우게 싸우는 중 청도경찰서장의 몹쓸 돈봉투 사건까지 일어났던 곳이다. 원전 마피아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이미 청도의 송전탑을 세웠다. 이제는 세운 송전탑을 뽑겠다는 싸움이 되었다. 못 세우게 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세운 송전탑을 뽑는 투쟁이니 얼마나 어려울까. 할매들이 자리를 비운 새 삼평리 송전탑 현장에는 칼바람만 을씨년스럽다.

철조망 대문 옆에 놓인 글귀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저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싸울 것이다.”
 철조망 대문 옆에 놓인 글귀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저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싸울 것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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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평리, #송전탑, #삼평리에 평화를, #청도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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