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1일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극장을 채운 관객들에게 한국독립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는 고 이성규 감독과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진모영 감독

지난해 12월 11일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극장을 채운 관객들에게 한국독립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는 고 이성규 감독과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진모영 감독 ⓒ 성하훈


"한국의 관객들이 반드시 외국의 예술영화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예술영화도 사랑해서 그런 영화들이 계속 순환할 수 있는 그 힘과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한국의 예술독립영화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그 힘으로 한국독립영화에 르네상스를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12월 11일. 생을 마감하기 이틀 앞둔 날 이성규 감독은 자신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듯 간곡히 부탁했다. 평소 상업영화에 비해 관객의 관심이 덜한 독립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성규 감독은 2007년 한국독립프로듀서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낸 독립PD로 2011년 인도에서 10년 동안 촬영하고 2년 간 편집해 완성한 <오래된 인력거>를 개봉했다. <오래된 인력거>는 지난 2010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에 아시아권 최초로 장편부문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던 작품이었으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영화가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상영되기를 염원했던 감독의 바람은 세상과 이별하기 직전 지인들의 도움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틀 뒤인 12월 13일 이성규 감독은 많은 이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났다. "독립영화를 사랑해 달라"는 말은 마지막 유언이 됐다.

독립영화에 가득 찬 관객은 이성규 감독의 간절함 이뤄진 것

 지난해 12월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 이 감독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외수 작가와 진모영 감독.

지난해 12월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 이 감독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외수 작가와 진모영 감독. ⓒ 성하훈


당시 이성규 감독 옆에서 마이크를 받치고 있던 사람은 최근 <인터스텔라>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이었다. 진 감독은 이성규 감독의 유작이 된 <시바, 인생을 던져> 프로듀서였다. 생전에 이 감독은 진 감독을 "제갈량 같은 독한 프로듀서"로 지칭하기도 했다.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고 할 만큼 유일하게 이 감독을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진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규 감독의 1주기를 앞두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흥행하면서 그의 동료들은 다시 이 감독을 떠올리고 있다. 이 감독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채 이루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기에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성공은 그래서 더욱 각별한 의미"라고 했다.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의 독립영화가 상영되길 바랐던 이 감독의 간절함이 1년 만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진모영 감독은 CGV 측에 독립예술전용관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하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상영 횟수 축소를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흥행가도를 달리는 작품에 대해 대부분의 극장들이 상영관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데, 감독이 직접 상영을 줄여달라고 한 것은 이례적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 ⓒ 진모영


진 감독은 영화를 개봉하면서 "욕망으로 치자면 '최대 최고 최다 최단 최장' 등 '최'자가 들어간 단어를 모두 해 보고 싶고, 그런 것들을 '독립예술영화'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들에게 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진모영 감독은 15일 "어제(14일)는 일일관객수와 좌석점유율 등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스스로의 모든 기록을 깬 의미 있는 날 이었다"면서, 아트하우스 상영관 축소 요청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4일 오동진 평론가와 시네마톡을 CGV 압구정에서 했습니다. 도중에 엘리베이터에 붙은 상영시간표를 보니 우리 영화가 예전의 <인터스텔라> 같은 시간표를 배정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우리 영화가 다양성영화관의 다양성을 해치는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물론 제가 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상당히 그리고 대부분을 빼자고, 아트하우스의 탄생목적을 살리자고 요청한 겁니다. 처음의 출발처럼 많은 독립영화, 다큐영화들이 전진하는 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좋은 의미로 길을 내는 역할을 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기쁘고 영광이겠습니다."

CGV "진 감독 뜻 받아들여 아트하우스 상영 축소"

이와 관련 CGV 측은 "감독의 뜻을 받아들여 18일부터 아트하우스의 상영은 축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CGV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아트하우스는 기존처럼 다른 독립영화들을 함께 상영하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주로 일반상영관을 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주 후반부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상영관이 대폭 늘어난 것은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 등이 스크린을 더 배정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 곳곳의 아트하우스관을 초반부터 교차상영도 아니고 싹쓸이해서 배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감독의 요청으로 미리 조정된 것이다. 덕분에 대작 다큐멘터리 등장에 상영 횟수가 축소돼 마음 졸이던 다른 독립영화들은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12월 18일 개최되는 이성규 감독 추모 '한사람으로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 포스터

12월 18일 개최되는 이성규 감독 추모 '한사람으로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 포스터 ⓒ 춘천다큐영화제


지난해 한국독립예술영화의 르네상스를 원했던 한 감독의 간절한 외침이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년이 지나 의미 있는 결실로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독립, 다큐영화가 전진할 수 있도록 길을 내고자 상영 횟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한 감독의 마음은 이성규 감독의 뜻을 잘 잇겠다는 다짐으로 비친다. 그런 마음가짐이 감동적인 흥행 다큐를 만들어 낸 바탕이었겠지만, 좋은 선례를 만든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오는 18일 CGV 춘천에서 열리는 '한 사람으로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에서 특별한 상영을 갖는다. 고향인 춘천에서 생을 마감한 고 이성규 감독의 1주기를 맞아 독립다큐감독들과 강원문화재단 등이 힘을 합쳐 준비한 추모 영화제다. 이창재 감독의 <목숨>, 임유철 감독의 <누구에게나 찬란한>도 함께 상영된다.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이성규 감독을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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