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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북암 도솔천의 세계에 지어저 있는 듯한 두륜산 정상 아래의 북미륵암 암자
▲ 두륜산 북암 도솔천의 세계에 지어저 있는 듯한 두륜산 정상 아래의 북미륵암 암자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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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내내 몇 차례밖에 내리지 않던 남도의 눈이었다. 올해는 12월의 초입부터 눈을 뿌리고 있다. 덕분에 일찍부터 눈 구경을 할 수 있게 됐다. 눈 덮인 흰백의 설원 위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다 보면 마음 속까지 하얗게 정화된다. 그래서 눈 덮인 두륜산 북암 산행은 구도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된 백두대간의 정맥이 길게 뻗어 가장 마지막으로 치솟아 이룬 산이 해남 두륜산이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세 가지 재앙이 미치지 않는 '삼재불입지처'라 하여 자신의 의발을 이곳 두륜산 대흥사에 모시라고 했다. 명산 두륜산은 천년고찰 대흥사를 안고 있다.

두륜산에 안긴 천년고찰 대흥사

천년고찰 대흥사 전경 북암에서 내려다 보면 대흥사는 마치 속세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산넘어로는 서해의 바다까지도 보인다.
▲ 천년고찰 대흥사 전경 북암에서 내려다 보면 대흥사는 마치 속세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산넘어로는 서해의 바다까지도 보인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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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암 일대 전경 멀리 산등성이에 북암 동탑이 서있다. 대둔팔경중에 하나로 꼽힌다.
▲ 북암 일대 전경 멀리 산등성이에 북암 동탑이 서있다. 대둔팔경중에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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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에는 도를 닦는 고승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암자도 많다. 두륜산에는 20개가 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북암이다. 정확히는 마애여래좌상이 있어 북미륵암이다. 북암 산행은 눈 오는 날 산사의 고적함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두륜산은 북쪽에서 들어오는 입구를 빼고는 대흥사를 둥그렇게 안고 있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이곳 두륜산에 성을 쌓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두륜산에 성을 쌓지는 않았지만 만약 성을 쌓았다면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지형 덕분에 대흥사는 전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할 만큼 명찰을 유지해 왔다.

높은 산에 있는 암자일수록 속세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인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세계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앞선다. 북암은 대흥사의 창건 역사가 시작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암자다. 이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게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과 두 개의 탑이다.

천동과 천녀가 조성한 미륵불 전설

북암 용화전의 마애여래좌상 자연채광이 비추어 들도록 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 북암 용화전의 마애여래좌상 자연채광이 비추어 들도록 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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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여래불상은 하늘에서 천동과 천녀가 내려와 조각했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천동과 천녀가 북암의 미륵불과 남암의 미륵불을 조성했다 한다. 미륵불과 함께 북암의 동편과 서편에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나란히 바라보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암벽에 거대한 미륵불이 조성됐다. 이곳 북암도 암벽에 조각된 미륵불은 용화전이라는 전각에 모셔져 있다. 본래는 자연에 노출된 것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을 세운 것이다. 북미륵암은 최대한 자연채광을 살리기 위해 미륵불이 있는 곳에 유리지붕을 씌워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남쪽으로부터 뻗어 나온 햇볕이 용화전의 문으로 새어 들어와 법당의 마루를 비춘다. 법당 마루에는 문의 크기만큼 햇볕이 그려지고 그 가운데에는 법당을 내다보는 이의 그림자가 아로 새겨진다. 법당 앞에 앉아있는 미륵불이 "너는 무슨 세상의 근심거리를 안고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는 것 같다.  

북암 용화전 마애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전각이다.
▲ 북암 용화전 마애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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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은 남미륵과 한 쌍으로 하나는 북쪽 암자에 있다하여 북미륵암, 다른 하나는 남쪽에 조성되어 있어 남미륵암이라 한다. 두 암자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대둔사에서 발간한 <대둔사지>에 따르면, 근세에 염담유일(蓮潭有一), 벽담행인(碧潭幸仁), 아암혜장(兒庵惠藏)같은 고승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단다.

미륵불에 관한 전설은 천상계와 인간계가 이어진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죄를 짓고 천동과 천녀가 쫓겨났는데 이들이 다시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하는 일이었다.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만일암 천년수 나무에다 해를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천동은 남쪽 바위에 서 있는 불상을 조각하고 천녀는 북쪽 바위에 앉아 있는 불상을 조각한다. 그런데 천녀는 앉아있는 좌상의 불상을 양각으로 조각했기 때문에 서있는 모습을 음각으로 조성한 천동보다 먼저 조각할 수 있었다.

불상 조각을 다 마친 천녀는 먼저 하늘에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만일암 천년수에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 버렸다. 해가 지자 금세 어둠이 찾아왔고 천동은 더 이상 불상을 조각할 수 없게 된다. 천동은 결국 하늘에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모두 제석천이 하강하여 남과 북에 각각 조성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음각과 양각으로 다르게 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 중 한 유형에 속하는 이야기다. 전설은 항상 지나온 시간을 신비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풍수로 조성한 삼층석탑

북암 동탑 부처의 오른손 같은 자연석 바위위에 서있는 동탑
▲ 북암 동탑 부처의 오른손 같은 자연석 바위위에 서있는 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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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륵암 동편의 약간 위쪽에는 삼층석탑이 서있다. 아침 해가 뜨면 이 석탑 위를 해가 지나간다. 또한 동편의 삼층석탑에서 내려다보이는 미륵불 옆에 똑같은 형태의 석탑이 있다. 

이 두 탑은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쌍탑이다. 이 쌍탑의 아름다운 조화가 대둔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흥미로운 것은 동탑의 받침 역할을 하고 있는 바위가 오른손 손바닥 형태로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각된 바위는 부처님 손이라고 해 부처님 손바닥 위에 석탑이 조성되어 있는 형태다.

동탑에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대흥사 본 절이 보이고 더 멀리는 서해의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속세를 벗어나 마치 선경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북암 서탑 일원 용화전 옆에는 서탑이 동탑과 한쌍을 이루며 서있다.
▲ 북암 서탑 일원 용화전 옆에는 서탑이 동탑과 한쌍을 이루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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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암 일대 전경 용화전 넘어로 파도같은 산들이 선계에 와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 북암 일대 전경 용화전 넘어로 파도같은 산들이 선계에 와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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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북미륵암 일대가 마치 바다의 게와 같은 형상이라 한다. 그래서 석불을 조성하면 무너지게 되므로 게의 오른발에 해당되는 서쪽과 게의 왼발에 해당되는 동쪽에 삼층석탑을 세워 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뒤 마애여래좌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다. 땅의 기운을 눌러 좋은 형국 속에 안식처를 만들고자 했던 선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북암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중간에 천년수와 만일암터가 나온다. 천년을 살았다는 이 천년수는 느티나무의 일종이다. 북미륵과 남미륵을 조성할 때 해가 지지 않기 위해 해를 잡아맸다는 그 나무다.

거의 산 정상에 천년을 산 나무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 세월을 다 견디고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이 허무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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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지역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연구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