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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탐욕이 안전장치들을 마구 풀고 있는 지금, 언제 누가 재난과 참사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와 방향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는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인권선언 운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인 17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해 침몰현장에 세월호 선수의 일부가 보이는 가운데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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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잃으면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다. 안전하지 못한 배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잃어 버린 304명의 승객들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눈 많은 이들은 앞으로도 커다란 우주를 잃은 채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르지 않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보며, 우리는 '안전'이 지켜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사안이 아니라, 정말로 소중한 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안전'은 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그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기업이 늘어난다. 정부는 '안전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부추긴다. 우리는 지금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을 위해 안전을 무시하는 기업들

세월호를 운항한 청해진해운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낡은 배를 수입했다. 그리고 배를 불법 개조했다. 과적도 했고 심지어는 평형수도 덜어냈다. 그들에게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참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 돈을 더 버는 것이 중요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KTX도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다. 비용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경정비 업무를 외주업체에 떠넘겨 버린다. 지하철 회사는 사고의 위험에 대비해 2인승무를 하기는커녕 1인승무를 늘리고, 무인역사를 만든다.

기업들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정부에게 더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안전관리자를 줄여 달라고 하고, 안전관리감독을 적게 받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수직증축을 허용하라고 요구한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안전설비를 하기보다는 외주업체에게 위험을 떠넘겨 죽음을 방치한다. 도대체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안중에 있기는 한 것일까.

사람의 죽음마저도 비용으로 계산하여 이해득실을 따지는 잔혹한 기업들을 규제하려면,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기업은 망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함부로 사람의 생명을 돈과 저울질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는 사람의 생명을 정말로 하찮게 여긴다. 5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최고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7년6개월형이 전부였다. 그나마 이것이 한국의 재난과 참사에서 가장 강력하게 처벌받은 경우다. 등록금을 벌려고 일하던 대학생을 비롯하여 이마트 냉동창고 노동자 네 명이 사망한 사고에서 이마트가 받은 처벌은 벌금 100만 원이 다였다.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에서는 40명이 죽었지만 사업주는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대구지하철참사에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기관사와 관제사만 책임을 뒤집어썼다. 그러니 어느 책임자들이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안전설비를 하겠는가. 사람의 목숨은 이렇게 하찮게 여겨진다.

기업을 위해 안전을 무시하는 정부

2011년 7월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질식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1년 7월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이마트 탄현점 앞에서 질식사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신세계 이마트쪽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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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정부라면 검찰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고 지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화물차 과적단속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오히려 화물노동자들이 과적을 못하게 하자고 낸 법안도 국회에서 흐지부지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된 바 관리감독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에게 여전히 선박 관리감독의 책임이 맡겨져 있다. 정부는 연안여객선 운송사업의 안전성을 담보한다면서 은근슬쩍 면허제도와 운임제도 개편안을 내놓아서 민간선사들이 쉽게 연안여객사업에 진출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안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면서 안전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정책이다. 정부는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이름으로 지난 8월 26일 '안전대진단 및 안전산업 발전방향'을 내놓았다.

안전관리를 민간에 위탁한다는 방향 아래 '민간재난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방재컨설팅 업무를 보험사의 부수업무로 허용하겠다고 한다. 보안장비, 소방기기, 방범기기 등 안전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심지어는 안전산업의 하나로서 '의료민영화'로 비판받고 있는 '원격의료'까지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민간의 안전투자를 유인한다며 안전투자펀드를 2017년까지 5조 원을 조성해서 기업에 대출하거나 직접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산업'을 발전시키는 대책,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안전의 의무를 포기하는 대책이 버젓이 안전대책으로 제출되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과 안전은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다

이것은 정부가, 기업이 안전을 '서비스'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의무적으로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세월호 참사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정부가 오히려 뻔뻔하게 유족들을 나무라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청해진해운은 그 큰 참사를 내고도 한강수상택시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조금씩 흘리고 있다.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지만, 그 기업이 이 사회에 존속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기본 선이 있는 법이다. 만약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노예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모두가 그런 기업은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겠다고 말하는 기업에 대해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야 한다. 사람의 존엄과 생명의 안전은 기업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런 정부는 '필요없다'고 말해야 한다. '비용'을 들먹이며 '세월호 선체의 인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런 정부는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안전을 '서비스'로 간주하면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온다. 노동자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고, 시민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사고가 생겼다는 식이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안전하려면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판교테크노밸리 참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환풍구에 올라간 사람들을 탓했다. 하지만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들이 실수로 안전에 주의하지 못하더라도, 어쩌다가 안전모를 쓰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잘 몰라서 지하철 환풍구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돈이 없어도 민간손해보험을 들지 않아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구조받을 권리를 정부나 기업이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생명의 존엄과 안전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권리이며, 정부나 기업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릴 때 삶의 안정도 가능

10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 환풍구 덮개가 붕괴되면서 그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20여 명이 아래로 추락했다.
 10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 환풍구 덮개가 붕괴되면서 그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20여 명이 아래로 추락했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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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단지 사고와 재난 때문에만 불안정한 것일까? 사회 전체가 '돈'을 중심으로 돌아갈 때 우리의 삶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그것은 재난과 사고 못지않게 시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큰 고통이다. 지금도 하루에 40명이 자살을 한다. 무려 한 해에 2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노동재해로 죽어간다.

부동산 값이 뛰고 투기가 자유화되면 가난한 시민들은 살아갈 집이 없어서 아등바등한다. 기름값과 전기값과 가스비가 오르면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집 안에서도 동상에 걸리는 이들이 늘어만 간다. 의료가 돈벌이의 수단이 되면 병에 걸리는 순간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삶의 불안정성이 우리 사회에는 가득하다.

이렇게 삶의 불안정성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 사회가 낳은 결과물이다. 경쟁과 이윤이 사회의 가치가 되는 순간, 더 많은 이들이 위험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경쟁을 통해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공포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안전은 있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우리 사회의 달음박질을 멈추고, 이제 모두가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환기시켰다. 우리가 '4·16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참사의 고통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해가기 위해서이다.

위험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

우리가 위험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생명의 존엄과 안전은 권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비용으로 계산하고, 정부가 안전의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정부는 '안전'을 이야기하며 오히려 생명의 존엄을 위해서 싸우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싸우는 이들을 '사회불안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위험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관리감독을 한다고 하면서 기업과 정부만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카르텔에 균열을 내고, 시민들이 직접 통제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우선 시민들이 위험을 알아야 한다. 기업들이 제대로 위험을 관리하고 있는지 안전설비를 제대로 하는지, 안전에 투자를 하고 있는지, 정부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는지, 구조인력은 충분한지, 안전점검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서 직접 알 수 있어야 하고,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시민안전위원회'와 같은 구조를 통해서 전문가들과 더불어서 직접 안전점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이 있다면 이 위험에 대해서 널리 알릴 수 있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이 대책을 마련하도록 사회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함께 살아가고자 해야 한다. 이것은 위험사회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바로 이러한 권리를 선언하고 현실의 힘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4·16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의 목록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침해받고 있는 권리를 시민들의 입으로 직접 선언하며, 그 권리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과 힘을 합하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운동이다.

4·16 참사를 보며 가슴 아파한 많은 이들, 정부와 언론의 조직적 방해 속에서 제대로 된 특별법이 되지 않았던 것에 실망했던 이들, 그렇지만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반드시 달라지도록 우리의 삶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이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에 의해 '생명의 존엄과 안전'이라는 우리의 권리가 선언되고 지켜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416인권선언, #세월호,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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