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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벽화 그리기 시작 전 단체사진
▲ 강릉 서부시장 세월호 벽화 그리기 작업을 위해 모인 청년들 본격적인 벽화 그리기 시작 전 단체사진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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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토요일, 강원도 강릉 서부시장 입구 경로당 앞에 14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지난 8월부터 강릉의 청년들이 함께 시작한 '잊지말자 세월호' 프로젝트의 네 번째 활동인 벽화그리기를 위해서다.

청년들은 8월 16일 도보행진으로 '잊지말자 세월호'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강릉 명주동 프리마켓 행사에서 진행된 '세월호 희망나무'와 세 번째 프로젝트 '청년산행(11월 진행)'을 마쳤다. 어느덧 네 번째. 마지막으로 세월호의 기억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남기자는 생각에 오래된 골목 어귀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그렇게 네 번째 프로젝트, '세월호 벽화 그리기'가 진행됐다.

기억하기 싫다는 사람들... 순조롭지 않았던 설득

밝은 색상과 도안으로 슬픔보다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 과일가게 옆에 그린 세월호 벽화 밝은 색상과 도안으로 슬픔보다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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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를 그리는 장소가 된 강릉 서부시장은 1977년에 만들어진 상설시장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곳곳에 낡은 시간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지는 않으나 시장 중심에 작은 시립도서관을 끼고 있는 조용한 동네다. 여기 곳곳에 세월호의 기억을 그린다면 꾸준히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 총 네 군데의 장소를 확보했다.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았다.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분이 있었다. 셔터나 대문에 그림을 남기는 일을 꺼리는 분도 있었다. 힘겹게 동의를 얻어낸 경로당 옆 좁은 셔터는 벽화 도안을 세 번이나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벽화를 그리기로 한 날 세월호를 상징하는 배를 그리는 것을 반대해 애써 그린 배 그림을 지워야 했다.

노란색 세월호 배를 지우기 전 곁에서 작업하던 청년들과 함께
 노란색 세월호 배를 지우기 전 곁에서 작업하던 청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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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하단에 그렸던 세월호 배를 지워야 했다.
 오른쪽 하단에 그렸던 세월호 배를 지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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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살리자는 말은 정치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새 '정치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져야만 하는 현실 속에 바탕색으로 배를 지우며 곁에 있는 청년들과 사진을 찍었다. 노란색 배는 끝내 바다의 파란색 바탕 속에 묻혔다.

서부시장 안쪽에 위치한 문화도서관 맞은편 대문은 경포 자전거가게 주인 아저씨의 요청으로 그리게 됐다. 아저씨는 자전거 가게 맞은편 화장실 문에 우리가 작업하는 것을 보셨다. 이후 우리에게 프로젝트 취지를 들은 후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오셨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도서관 입구 맞은편에 작업을 하고 싶었다. 여기에 작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인이 누군지 몰라 포기하고 있었다.

'잊지말자 0416' 작은 화장실 문에도 세월호의 기억을 그렸다.
 '잊지말자 0416' 작은 화장실 문에도 세월호의 기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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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억을 통한 희망'
 '오직 기억을 통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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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강릉 서부시장에 오세요

'잊지말자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은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이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스스로 연락해 온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는 잊혀 가고 있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참여했다. 자발적 참여를 통해 세월호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를 기록하는 추운 날씨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하나하나 정성껏 작업했다.

강릉 서부시장 문화도서관 맞은편 대문에 그린 종이배
 강릉 서부시장 문화도서관 맞은편 대문에 그린 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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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언론도 더 이상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날의 일은 어떻게든 다시 지나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강릉의 청년들은 이 이야기를 다시 해야 했다. 지긋지긋하게 들었고, 얘기했으니 이제는 그만하자는 사람들에게 또 말해야 했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사고 이후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부조리와 실망을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14명의 청년들이 손으로 그린, '오직 기억을 통한 희망'을 얘기하는 네 점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 그림들이 일상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한 번쯤 머물러 지난 4월의 일을 기억하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강릉 서부시장의 골목들을 걷다보면 언제든 이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다.


태그:#강릉 청년 세월호 벽화, #강릉 서부시장, #세월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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