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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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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에 대해 "편향되고 왜곡됐다"라고 15일 비판했습니다.

기자는 최근 3년간, 취재를 위해 신씨의 북한 유람기를 세 번 들었습니다. 뒤풀이 자리까지 쫓아가 강연에서 미처 듣지 못한 궁금증을 캐묻기도 했습니다. 책과 신씨를 만난 시간을 따지면 10시간은 될 듯합니다. (관련 기사 : "가기 싫었던 북한,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신씨가 쓴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1호 독자이기도 합니다. 출간 돼 첫 배달된 책을 신씨에게 건네받았습니다.

강연을 듣고 책을 정독했지만 "편향되고 왜곡됐다"고 우려할 만한 대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신씨는 매번 북한 여행에 대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슬픈 여행"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슬픈 여행"... 이게 죄입니까?

"아름답다"는 것은 북한에서 만난 주민과 자연 풍광을 말합니다. 북 주민들이 순진하고, 순박하며 따뜻하고, 겸손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민족애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여행이 슬픈 것은 북한 동포들이 아주 어렵게 살고 있어서입니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책 표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책 표지.
ⓒ 네잎클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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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강연과 책 내용은 '아름답고' '슬픈' 두 키워드를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흥이 넘쳐 보이는 북 주민, 만나는 사람마다 손부터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민족 정서, 국산품 애용운동으로 중국산이 점차 사라지는 상점 풍경, 수해 없이 농사가 잘된 가을 들녘,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백두산 천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칠보산... 신씨의 눈에 비친 아름답고 다행스러운 정경입니다.

반면 발길 닿는 곳마다 이어진 황량한 민둥산, 에너지가 없어 아직까지 소달구지, 목탄차를 끄는 시골 모습, 총이 더 커 보이는 왜소한 북 군인들, 옥수수와 감자가 주식이 된 식량난, 수술도중 전기가 나가 수술을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의과대학 등은 그가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풍경입니다.

신씨와 그의 남편 정태일씨는 북 주민들에게 남쪽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골집마다 차 한대씩은 갖고 있는 남한의 농촌 살림, 비교적 잘 정착해 사는 탈북자(새터민들) 이야기 등 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북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습니다. 평양 봉수교회에 가서는 목사를 만나 "이 교회 보여주기 위한 가짜 아니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집니다.

신씨가 북한유람기를 통해 남한 주민들에게 전하는 결론은 매양 같습니다. 통일을 위해 먼저 이산가족 자유롭게 만나게 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북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쪽이 북쪽보다는 자유롭고 생활이 넉넉하니 남쪽이 먼저 변하면 북도 그에 맞게 바뀌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밝힙니다.

또 남북이 경제협력을 할 때가 됐다고도 강조합니다. 중국은 도로를 깔고, 러시아는 철도를 놓는 등 북한을 껴안기 위해 난리인데 왜 남쪽에서는 손 놓고 있느냐며 답답해합니다.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휴대폰 회사와 건설 회사들이 남쪽에 즐비한데, 왜 북의 휴대폰 사업과 105층 빌딩 공사를 이집트 회사에 맡겨야 하느냐고 속상해 합니다.

이게 신씨와 그의 남편이 남북을 오가며 전한 남북 유람기입니다. 박 대통령의 지적처럼 편향되고 왜곡됐나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

미처 기자가 알지 못하는 편향된 얘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경찰 조사를 받고, 테러를 당하고, 종북이라고 뭇매를 가할 일일까요? 그의 말처럼 우리 동포들과 서로 도우며 친하게 지내자는 게 종북이라면 우리 모두 종북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발자 신분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경찰 출석한 신은미 "짝사랑에 배신당한 느낌"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발자 신분으로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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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강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격려 글"을 묻는 질문을 받고 "김일성대학을  나온 새터민이 지금 모 언론사에서 일하는데, (그 분이 내 글을 읽고) '이 글도 분명 북한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그런 밝고 따뜻한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감사하다'고 말한 적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씨의 글을 비난하는 새터민도 있고, 격려하는 새터민도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폭력이고 반인권입니다.

신씨는 북한유람기에 대해 "마음의 눈으로 쓴 글"이라며 "사랑으로 바라보니 그 어떤 것도 굴절되거나 삐뚤어짐 없고, 어그러짐도 없이 제 모습대로 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마음의 눈'으로 신씨의 책을 읽고 얘기를 들었다면 적어도 "왜곡됐다"고 단정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통일이 대박'이라는 그런 마음의 눈으로 신씨의 얘기를 들으면 "굴절되거나 어그러짐 없이 제 모습대로 보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태그:#신은미 , #박근혜, #종북, #북한유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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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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