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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5분(현지시각),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 시티 중심가의 연방 정부 청사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 주차장에 트럭을 주차하고, 그 안에 실려 있던 사제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현장의 참혹한 장면은 당시 폭발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청사 내부에 폭 9m, 깊이 2m의 구덩이가 파였고, 연방정부 청사의 유리창이 모두 박살남과 동시에 건물 3분의 1이 붕괴됐다. 심지어 멀리 3km밖에 있는 지진계에서 리히터 규모 3.0의 충격파가 감지되기까지 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폭발 사고로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청사 내부에는 탁아소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 희생자도 19명이나 되었다.

마침 현장에 있었던 아마추어 사진 작가 찰스 포터 4세가 구조대원이 한 어린이 희생자를 품에 안고 나오는 장면을 찍어 언론에 제보했다. 쏟아지는 기사들로 이 사진을 본 미국인들은, 일제히 경악과 함께 분노에 휩싸여 사건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차츰 주목하기 시작했다(이 사진은 나중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체포된 범인과 테러사건의 진상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당시의 참혹한 현장.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당시의 참혹한 현장.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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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곧바로 체포됐고, 사건의 진상 또한 신속히 규명됐다. 주 경찰이 주변을 검문하던 중 번호판도 없이 차량을 운전하던 티모시 맥베이(당시 26세)라는 한 청년을 검문했는데, 그 안에서 총과 칼이 발견됐다.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위해 그를 심문하던 중, 자신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임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자백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기나 폭발물 제조에 관심이 컸던 티모시 맥베이는 걸프전에도 참전했던 폭발물 전문가였다. 그는 2200kg이 넘는 엄청난 양의 질산 암모늄 비료와 니트로메탄 등을 폭탄 제조에 사용했고, 참사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범인은 또 사건 발생 4년 전인 1991년 12월 군에서 제대하고, 미국 내의 보수 극우파 준군사조직인 '민병대'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그는 범행 동기로 사건 발생 2년 전인 1993년 4월 19일에 발생했던 '웨이코 다윗파 사건'의 복수를 위해 그때와 동일한 날짜에 맞춰 범행을 감행했다고 진술했다. 흔히 테러 사건이라면 아랍계나 아프리카계 범인을 떠올렸던 당시, 백인인 그가 범인이었다는 사실은 미국 주류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 내 보수 극우파인 '민병대'와 '웨이코 다윗파 사건'

체포 당시의 폭탄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
 체포 당시의 폭탄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
ⓒ wikime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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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극우파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힘없는 민중'이라 자처하면서, 과거의 우파가 홍보 활동과 법 제정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보다 더 과격한 방법으로 무력투쟁을 해야 한다며 비밀리에 무장 단체들을 조직하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기독교애국방위연맹(CPDL) 같은 조직이 출현했고, 이는 또다시 준군사조직인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계속 그 숫자를 늘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핵심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즉 공산주의자들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틈틈이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했다. 또한 '민병대' 대원들은 200여 년 전, 영국에 대항해 미국 독립을 위해 무기를 들었던 당시의 민병대와 자신들을 동일시하며 '오늘날의 민병대가 싸울 대상은 연방 정부와, 이를 장악하고 있는 진보–좌파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베트남전쟁이 낳은 '람보 신화'를 교묘히 결합해 평범한 미국 젊은이들을 이들의 유혹에 빠져들게 했다. 한편으로는 연방 정부와 기성 체제에 대한 불만과 복수심을 부추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들 군사 조직에 소속된 채 같은 유니폼을 입고, 공동체 의식을 나눔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의를 느낄 수 있다고 세뇌했다. 때문에 무미 건조하고 초라한 일상에 지쳐 있던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구호는 신선한 충격이자 그럴듯한 유혹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마치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되는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다 1993년 4월 19일 오전 6시 미국 텍사스주 웨이코의 카멜산에서 이른바 '웨이코 다윗파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을 재림예수라 자처하는 데이비드 코레시란 인물이 '다윗파'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바로 무장 투쟁을 주장하는 극우 보수파 중 하나였다. 그들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자신들을 조사하려는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맞서 총을 쏘고 불을 지르며 격렬히 저항했는데, 이 화재로 86명이 사망했다. 티모시 맥베이는 바로 이 사건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사건을 벌였던 것이다.

멕베이는 자신의 폭탄 테러가 미국 내 민병대 조직의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민병대는 봉기하지 않았고, 극우 보수 세력의 도구로 이용된 그에게는 결국 2001년 6월 11일 65년 만에 부활한 공개 처형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사고 직후 신속히 대처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2만 5000여 명에 달했던 미국 내 민병대 조직들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힘없는 두 여성을 향한 '폭발물 투척', 이를 영웅시하는 보수단체들

지난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한 고교생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품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지난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한 고교생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품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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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앞에서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북한민주화위원회, 탈북난민인권연합 등의 보수단체들은 '제2의 이승복 A군(보수단체들은 실명을 언급했으나, 아래 익명으로 표기)을 즉각 석방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관련 집회를 열었다. 테러 사건의 범인인 A군을 즉각 석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6일 '국민을 대신해 종북콘서트 저지한 A군 즉각 석방하라'는 성명서를 다시 한 번 발표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당시 집회 영상과 성명서에는 이런 주장들이 들어있다.

"우리는 묻고 싶다. 신은미의 종북 콘서트에서 '로켓캔디'를 던진 A군이 과연 무엇을 잘못 했는가?"
"국민의 마음을 애국 시민이 대신했고, 또 애국시민이 못한 일을 A군이 대신했을 뿐이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들은 우리가 먼저 앞장서지 못한 것에 대해 A군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 기성세대들은 A군의 행동에 대해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았음을 본다.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젊은 의지가 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A군이 한 행동은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존중한 일이었다."

그들은 A군을 '의로운 학생'이라고 칭하며, 테러를 미화하고 그를 영웅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껏해야 힘 없는 두 여성을 향해 사제 폭발물을 투척한 A군의 행동이 과연 영웅적 행위인가? A군은 독한 고량주를 마시고 나서야 겨우 범행에 나설 정도로 용기도, 확신도 없는 소심한 한 학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를 미화한다는 것은 A군의 테러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극우 세력들이 젊은이들을 세뇌하고 선동한 결과 티모시 맥베이라는 한 평범한 청년을 살인 괴물로 만든 사례는 이번 'A군 사건'에 대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모방 범죄로 또 다른 테러의 가능성, 지금 싹 잘라야

A군이 수업을 받던 교실. 2학기에는 반 학생들이 실습에 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상이 치워져있다.
 A군이 수업을 받던 교실. 2학기에는 반 학생들이 실습에 나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상이 치워져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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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터진 장소가 성당이었다는 점, 그리고 자칫하면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 등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A군을 치켜세우는 데만 열중하는 보수 단체들의 주장은 또 다른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우선, 티모시 맥베이와 A군의 행위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평소 폭발물 제조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목적을 알리기 위해 폭발물 테러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되어 범행 일체를 낱낱이 자백한 티모시 맥베이와 A군의 태도에는 사회적으로 '주목받고자 하는 욕구'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범행 전에는 일체 다른 범죄와 연관성이 없었던 평범한 청년들이었다는 점 역시 닮은꼴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A군은 고등학생이고, 티모시 맥베이는 군 복무를 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A군이 지금 고등학생이 아니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군에서 폭발물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경험을 한 후 범행을 저질렀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A군의 행위를 영웅시하는 보수 우익의 시각이 점점 확산된다면, 이와 같은 모방 범죄가 이어져 제2, 제3의 A군이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선 큰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언제 또 다시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는 참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때문에 모방 범죄의 가능성을 지금 단계에서 아예 그 싹을 잘라야 한다.

A군의 테러를 응원하는 보수 우익 진영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한국판 오클라호마 참사'가 벌어지길 원하는가? 만약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폭발물 테러를 미화하고, 영웅시하는 작태는 지금 당장 중단돼야 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더 이상 A군과 같은 젊은이를 이용하지 말라. 그게 A군과 대한민국을 위해 진짜 취해야 할 태도다.


태그:#익산 폭탄테러 사건,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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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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