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는 "4 더하기 6은 얼마인가요?"라고 문제를 낸다. 그들은 "얼마 더하기 얼마가 10인가요?"라고 묻는다. 우리는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 그들은 답이 가지가지다. 어린 초등학생들인데도 아직 배우지 않은 음수가 포함된 다양한 답이 나온다고 한다.

얼마 전, 한 선배 교사에게 들은 얘기다.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동료 몇과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 국가들의 교육 시스템을 놓고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어찌보면 사소해 보이는 사례다. 하지만 근본에 놓인 '철학'까지 사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창의성이 미래 역량의 핵심이라고들 말한다. 하나로 정해진 답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결과 중심의 교육과, 여러 가지 답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그들의 과정 중심의 교육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하겠는가. 간단한 덧셈식 하나를 통해서도 그 나라 교육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임신·육아 시장은 그런 부모들을 겨냥해 나온 각종 상품과 프로그램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블루오션'이 된 지 오래다. 최대 고객층은 '엄마'들이다.
 임신·육아 시장은 그런 부모들을 겨냥해 나온 각종 상품과 프로그램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블루오션'이 된 지 오래다. 최대 고객층은 '엄마'들이다.
ⓒ freeimages

관련사진보기


학교교육뿐이겠는가. 가정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임신과 육아의 전 과정에서 어떤 '정답'을 찾는 데 골몰한다. 임신·육아 시장은 그런 부모들을 겨냥해 나온 각종 상품과 프로그램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블루오션'이 된 지 오래다. 최대 고객층은 '엄마'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정답'을 강요하며 소비로 유혹하는 그곳에 단단해 얽매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한국의 유아용품 시장은 최소 1조7천억 원에서 최대 27조 원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최고를 선물하는 부모들 덕분에 'VIB(Very Important Baby)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199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식스 포켓(Six Pocket)'이란 말도 있다. 1명의 자녀를 위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지갑이 열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좋은 부모의 척도가 '소비'라는 인식이 은연 중에 퍼지게 된 배경들이겠다.

<엄마의 탄생>에는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도발적인 부제가 달려 있다. 모성이나 엄마 노릇, 양육 문제가 개인을 다그쳐서 '완벽한 엄마'로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엄마 노릇'이라는 것은 지난 세대의 유물에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결합되어 진화한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모성이나 양육에서 완벽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모유수유와 분유수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론을 통해 이 주장을 살펴보자.

모성을 모든 정상적인 여성이 갖는 생물학적 본능으로 파악하고 과학 지식에 입각하여 모유수유를 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가장 좋은, 엄마라면 누구든 기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기게 하는 것이 여성에게 억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생물학적 재생산 기능에 여성을 묶어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에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상만을 강요하며, 엄마 노릇 외에 다양한 정체성과 자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31쪽)

저자들은 <만들어진 모성>의 저자 바댕테르의 말을 빌려 모성이나 엄마 노릇에 관한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꼬집는다. 바댕테르에 따르면 여성은 어머니가 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상적'일 수 있다. 모든 여성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돌보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산후우울 담론에 관한 저자들의 분석 역시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산후우울에 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언어'가 여성들을 한쪽으로 몰아부친다고 주장한다. 산후우울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자살'이나 '영아 살해' 등의 언어가 우울한 여성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석할 때 동원하는 틀에 박힌 언어로 변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공격적인 충동을 느꼈다는 얘기를 할 때 여성들이 대개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까닭도 이와 관련된다고 분석한다.

산후우울증은 부당하게 고립되고 사회적으로 잊힌 여성이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막다른 몸짓을 일컫는 말이 될 수 있다. 여성들 스스로 그렇게 혹독하여 낙인찍어야 할 만큼 커다란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아이를 사랑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려 한다. 욕망과 감정을 직시할 수 없을 만큼 조여오는 완벽한 모성이라는 환상이 가혹한 것이다. (55쪽)

'만능 엄마교', 계속 '돌진'할 것인가

<엄마의 탄생> 책표지
 <엄마의 탄생> 책표지
ⓒ 오월의봄

관련사진보기

성과나 결과에만 눈길을 주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각은 조기교육과 경쟁을 유아기까지 드리우게 했다. 엄마면 뭐든 다 해야 한다는 뜻의 '만능 엄마교'라는 말이 나온 배경일 것이다. 저자들이 '모성의 덫', '모성 이데올로기'로 부르는 엄마의 책임과 역할이 갈수록 커진 것도 이와 관련된다. 모성 이데올로기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에는 '어머니 찬양'과 '어머니 비난'이라는 모순적인 담론이 동시에 유통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담론들은 이상적 어머니를 예찬함으로써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의 많은 엄마들을 나쁜 어머니로 낙인찍고 비난한다. '일을 손에서 놓겠다는 결심'을 세우지 못한 여성에게 '엄마 손이 덜 간 애들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고 속삭이고, 아픈 아이 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에게 "다 엄마 때문이지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돌봄 책임을 전담한 채 가정에서 아등바등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성에게 "좀 더 잘 할 수 없어?"라고 질책하며, 어머니들에게 '거룩'한 사랑과 희생의 화신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241~242쪽)

저자들은 오늘날 엄마들이 영유아기에 더 많은 자극과 기회를 줘야 한다는 강박과 이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부족한 엄마라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비싼 분유와 유모차, 성장앨범 구매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제각기 특별해져야 했고, 이는 뇌교육이나 영어유치원, 놀이학교, 체험학습같이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교육의 목적이 오로지 '판매'에 있었다는 것, 사교육은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뿐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후회스러웠다고 했다. 엄마의 역할은 잘게잘게 쪼개져 시장의, 이른바 전문가들의 손에 넘어갔다. (214쪽)

'아기가 늦되다'는 한마디로 시작되어 취학 전 8년여 동안 4천만~5천만 원대의 사교육비를 쓴 어느 엄마의 고백이다. 이 엄마는 지금 불안을 한껏 부추기며 환상을 향해 부추기게 한 시장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다. "엄마들은 내 새끼만 잘 키우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많아요.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만 느껴도 달라질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뼈 아픈 성찰을 하면서 말이다.

엄마 등급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하급은 자신은 공부하지 않으면서 애만 공부시킨다. 중급 엄마는 애를 공부 시키면서 자신도 공부한다. 대다수의 보통 엄마들이다. 1등급에 해당하는 상급 엄마는 애는 공부 안 시키고 자신만 공부한다. 자기 일에 충실한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는 말일 테다.

공부만 그런 게 아니겠다. 삶의 요령이란 결국 스스로 부딪혀 가면서 터득할 수밖에 없는 것. 제아무리 잘난 엄마라도 아이를 '이상적으로' 키울 수 없는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회적인 압박과 그 배후의 구조다.

그것에 굴복한 채 무의미한 '돌진'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소비 지향적인 '모범 엄마'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모색할 것인지 차분하게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육아에는 실전만 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아무리 후회하더라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엄마의 탄생>(김보성․김향수․안미선 지음 / 오월의봄 / 2014. 11. 28. / 286쪽 / 1,3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엄마의 탄생 -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안미선.김보성.김향수 지음, 오월의봄(2014)


태그:#<엄마의 탄생>, #모성 이데올로기, #모성의 덫, #조기교육, #산후우울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