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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그만 둬. 아빠가 힘이 없고, 못나서 못 잡는 거면, 더 못 그만 둬. 힘도 없고 못난 주제에 해보는 데까지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한별이 어떻게 만나니? 미안해서..."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이다. 아들 한별이를 잃은 아버지(정성모 분)는 매일 검찰청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딸(백진희 분)이 "(범인은) 높고 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못 잡는다"며 그만하자고 설득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단지 드라마 속 대사일 뿐인데 왠지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덧 세월호가 침몰한 지 8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특별법이 제정됐다. 오는 1월이면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도 출범한다. 무언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나 아직은 제자리 걸음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세월호 가족에게 2014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를 만났다. 아래는 정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매일이 4월 16일이다"

 세월호 희생자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
 세월호 희생자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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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유가족 총회에서 이석태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장으로 선정했어요. 그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나요?
"그 날 많은 가족이 참석했어요. 한 243 가족 정도 나왔더라고요. 거의 만장일치였는데 딱 한 표만 달랐어요. 그래도 공산당을 면해서 다행이라고도 했어요(웃음). 모질고 아픈 세상을 향해 멈춤 없이 진실을 마주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소신껏 투표했어요."

- 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40여 일이 지났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여론 주목도가 낮아진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일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월호 사건은 생명을 함부로 했다는 것과, 모든 사람을 그 목격자로 만들었다는 것, 또 전 세계인이 함께 지켜봤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잊힐 순 없을 것 같아요. '왜'에 대한 답도 아직 못 받았고요. 지금 움직이지 않아도, 필요할 땐 움직일 거라고 봐요. 그게 국민의 힘이고 우리나라를 이끈 사람들의 힘이죠. 잊은 사람들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아직 많다고 생각해요."

- 지난 8개월 회고하신다면?
"8개월간 치열하게 싸운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피지도 못한 채 목숨을 참혹하게 빼앗긴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못한 바보같은 부모들이라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이제 특별법이라는 도구를 하나 만들었을 뿐이에요. 유가족들에겐 매일이 4월 16일의 연속입니다.

저희는 주검이 된 아이들이라도 안았지만, 아직도 안아보지 못한 아홉 가족이 있어요. 유가족들은 준비 없이 주검이 된 아이들을 봤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을 보내는 일을 해야 했죠. 8개월이 너무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고, 지켜주지 못해서 더 미안해요."

- 언제 가장 보고 싶으세요?
"뭔가 먹을 때 보고 싶어요. 아이가 한창 클 때라 많이 먹었고, 또 먹으며 즐거워했어요. 성호는 먹는 모습이 예뻤거든요. 그걸 못 보니까 제가 먹을 때마다 성호 생각이 나서 너무 힘들어요."

- 성호는 신부가 꿈이었다던데 어떤 아이였나요?
"엄청 착한 아이였어요. 이해심도 많았고, 이타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것을 잘했어요. 그래서 보통 사람처럼 출세하는 것을 꿈꾸지 않고 자기를 봉사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이태석 신부님처럼 외국에 나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사는 신부님이 꿈이였어요. 그래서 더 안타깝죠."

- 수학여행 가기 전, 성호는 어땠나요?
"성호는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수학여행 가는 때가 고난 주간이었는데 성호가 성당의 복사 부단장이라 복사를 서야 하는 책임도 있었고, 성호도 복사를 서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추억이 없어도 괜찮겠어?'라고 물었고, 친구들도 꼭 가야 한다고 해서 가게 됐어요."

- 성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할걸, 하는 마음도 드셨겠어요.
"그랬죠. '네 맘대로 해'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그래도 괜찮겠니?'라고 물었던 게 너무 속상해요."

- 15일 오전에 수업받고 저녁에 출발했으니, 그날 등굣길이 마지막 모습이라 기억에 남으셨겠어요.
"14일 밤에 여행용 가방을 꺼냈는데 자크가 녹슬어서 잘 안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캐리어를 새로 사서 혼자 짐을 쌌어요. 보통 학교 행사가 있으면 엄청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날은 일어나지 않아 제가 깨워서 일어났어요. 일어나서도 무슨 꿈을 꿨는지 잘못하면 지각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어요. 수업이 다 끝나고 배 타러 인천으로 가서 오후 8시 50분쯤 수학여행 안 갈지도 모른다는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는데 잠시 후 가게 됐다며 배 타고 간다고 전화 온 거예요. 그래서 잘 다녀오라고 했죠. 그게 성호와의 마지막 통화였어요."

- 사고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 켜니 오전 9시 4분 정도였어요. 인터넷 뉴스를 보고 ''배 사고 났네'라고 생각했지, 성호가 탄 배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옆에서 '언니 아들 단원고잖아'라고 하길래 수학 여행 갔다고 했더니 그 배가 단원고가 탄 배라는 거예요. 다시 봤더니 정말 그래서... 너무 놀라 TV를 켜고 봤죠."

- 청천벽력같으셨겠어요.
"처음엔 '전원 구조' 얘기가 나와서 그걸 믿었어요. 죽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오전 9시 20분 정도 '화상 환자와 부상 환자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거짓말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다 믿을 수가 없어서 차를 끌고 무작정 학교로 갔어요."

- 당시 학교 상황은 어땠어요?
"학교에 들어서는데 기자들이 엄청 와 있었어요. 기자들이 왜 여기 있는지, 그것부터 묻게 됐어요. 기자들은 사고 현장에 더 많이 가야 하고, 구조가 많이 됐다면 부모들에게 몰릴 이유가 없는데... 너무 많은 기자가 오니까 언론 보도가 새빨간 거짓말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당으로 갔더니 부모들이 까무러치기도 하고, 버스 달라고 소리 지르는 걸 봤어요. 가슴 아팠죠. 또 진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곡된 현실, 답답하기만 했다

간절한 바램 앞에 터진 눈물 세월호 침몰사고 12일째인 27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리본 앞에서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막막한 현장 상황, 답답하기만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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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에 내려가셨을 땐 어떠셨나요?
"체육관이 바다 근처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산속에 있는 체육관에 데려다 주는데 '이게 뭐지? 뭘 감추려고 고립 시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육관에 들어서니 벽보에 구조자 명단이 붙어 있는데, 학교에서 본 구조자 명단에서 하나도 변화가 없는 거예요.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해경이 브리핑한다고 단상에 올라와서 '저희에게 구조됐으니 걱정말라'고 했어요. 그러면 명단을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구조자 명단을 내놓으라고 하니 안심하라는 말만 하고 명단을 안 주더라고요. 팽목항에 보내달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 아저씨 한 분이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뺏어서 '난 생존잔데 내가 죽음을 넘나들며 아이들을 40명 정도 구조하는 동안 해경은 아무 것도 안 했다. 니들이 도대체 뭘 했냐? 이게 대한민국의 해경이다.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니들이 인간이냐?'며 따졌어요. 해경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바로 들통 난 거죠. 애들이 죽었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버스 달라고 더 소리를 질렀죠. 그랬더니 준비해주겠다고 약속하더라고요."

- 그렇게 팽목항에 가신 거군요.
"네. 30분 정도 걸려서 팽목항에 도착했어요. 도착하자마자 한가한 바닷가를 보는데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119 구급차도 두 대뿐이었어요. 구조를 넘치게 해도 모자란데, 안 했어요. 구조를 했다면 조용하지 않았겠죠. 억장이 무너지고 분노에 치를 떨었어요. 그래서 해경에게 배 달라고 했더니 배는 물론 헬기도 준비 안 됐고 약속한 적 없다는 거예요. 계속 싸우다가 부모 일부는 어선을 사러 가고, 일부는 민간 잠수부 구하고, 또 일부는 계속 싸웠어요. 저는 근처 휴게소로 가서 하늘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했죠. 그러면서 방송을 봤는데 총력을 다해 구조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언제 뉴스인가 봤더니 낮에 나온 방송이더라고요.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졌죠."

- 언론에 대한 배신감이 컸을 것 같아요.
"네, 엄청 컸어요.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계속 기도하는데 휴게소에 기자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는 게... 그것도 꼴 보기 싫어서 '니들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어서 기도만 하다 나왔어요."

- 그후 상황에 변화가 있던가요?
"아니요. 가족들 일부는 민간 어선을 사서 타고 갔더라고요. 그제야 해경이 배를 내주겠다고 해서 배가 왔죠. 한 20명 정도 탔는데 잠수부를 보내야 한다고 내리래요. 잠수부는 저희보다 먼저 가야 구조를 하니까 내렸어요. 그렇게 잠수부 8명을 태우고 갔어요. 다시 배를 달라고 하니 8분 정도 지나 배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해경 배로 사고 현장에 갔죠.

갔더니 잠수부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부모들이 먼저 타고 간 어선은 세월호 주변을 돌고 있는 거예요. 저희도 주위만 돌 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해경 고무보트도 왔지만 그것도 주위만 돌았어요. 너무 답답해서 해경에게 왜 구조 안 하냐고 따졌더니 정조 시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나 바다는 잔잔한 호수 같았어요. 정조 시간을 물으니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야 한다길래 기다렸죠.

정조 시간이 다 됐는데도 구조를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해경에게 왜 구조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무보트에 부모 둘과 잠수부 둘을 태워 보냈고, 잠수를 시켰더니 단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오는 거예요. 왜 나왔냐고 물었더니 잠수부 하는 말이 '물살이 너무 세서 못 들어가겠다'고 하더라고요."

- 황당하셨겠어요.
"그랬죠. 다음 날 오후쯤 알았는데 이들이 가져온 산소통은 15분짜리였어요. 들어가서 5분 정도 밖에 잠수할 수 없는 거죠. 감압하고 나오면 15분은 끝나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손끝 벗겨진 아이... "살려고 힘준 것 같다"

- 당시 구조 상황을 보며 유가족 분들이 많이 답답해 하셨는데.
"네, 맞아요. 구조할 장비나 구조 인력들이 구조하겠다며 온다고 했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말로 이들을 돌려보냈어요. 그러나 배가 한참 빠지기 시작한 오전 10시 17분부터 구조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총력을 다해 구조한다고 거짓말만 했죠. 그날 구조하러 들어간 사람은 10여 명 남짓이었어요. 저희가 데려간 민간 잠수사들은 허가를 안 해줘 못 들어갔고요.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됐는데 그러는 동안 언론에선 뭔가 열심히 구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저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만 했어요.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근거를 대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했어요."

- 당시 SNS에서는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사실이에요. 아직 살아 있다는 문자나 사진이 많이 왔어요. 10반의 여자 아이 4명은 오락실에 있다고 영상까지 찍어 보냈는데 실제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거기였어요. 당일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연락이) 왔어요."

- 성호는 언제 나왔나요?
"일 주일 만인 23일에 나왔어요. 처음 보니 너무 말랐더라고요. 엄청난 고통 속에 있어서 말랐던 것 같아요. 옆구리에 멍이 있었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끝에 껍질이 벗겨져 있었어요. 살려고 힘을 줬던 것 같아요."

-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변하셨나요?
"다 바뀌었죠. 세월호 이전엔 이런 사고들이 많이 나도 잠시만 아파할 뿐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했던 게 후회되고, 남들이 아파할 때 끝까지 동참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요.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예요. 그게 쉽지 않아요."

- 한해 끝자락입니다. 유가족에게 2014년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 것 같아요.
"4월 15일로 돌리고 싶죠. 그래서 학교도 못 가게 하고 싶죠. 수학여행만 안 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 지난 11월 세월호 배·보상 특별법 관련, 여야가 정부 지원의 성격을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결정하고, 법안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언급하지 않기로 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구조해야 할 사람을 구조하지 않았고,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는데 아무 것도 안 했잖아요. 뿐만 아니라 구조하러 오는 사람도 막았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근데 이것을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청해진'의 과실로만 넘기려고 하는 속셈이 너무 기막힙니다. 세월호가 서서히 잊히고 있을 때 정부는 책임 회피할 구멍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dlog.daum.net/lightsorikwang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d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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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