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중세시대 정도로 보이는 풍경의 어느 마을. 외딴 시골에 위치한, 작지만 아늑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불과 몇 가구에 지나지 않지만,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삶을 보내고 있다.

밤에는 촛불로 방을, 횃불로 집 앞을 밝힌다. 다 함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한 이들은,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결정한다. 언뜻 보면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동체로 보인다.

이 마을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알지만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마을 바깥에는 '금지된 숲'이 있는데, 이 곳에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 마을을 벗어나려면 이 숲을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데, 괴물을 물리칠 방법이 없기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괴물'이 출몰하는 숲 속의 외딴 마을

 영화 <빌리지>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주위를 둘러싼 숲과 그 안에 사는 '괴물'이 두려워 '마을'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

영화 <빌리지>의 한 장면. 등장인물들은 주위를 둘러싼 숲과 그 안에 사는 '괴물'이 두려워 '마을'에 갇힌 채로 살아간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정체불명의 괴물이 어찌나 두려운지, 마을의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존재를 입 밖에 꺼내는 일조차 주저한다. 한편 괴물과 마을주민 사이에는 '휴전' 협약이 맺어진 상태라는 것이 마을 원로들의 설명이다. 사람이 괴물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누구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약속이다.

마을의 어른들은 이런 이유로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숲에 들어가지 말 것"을 강조하고, 괴물과 이어져 온 관계를 '역사 수업'처럼 가르친다. 그들이 노하지 않게 하려면 짐승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점도 함께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결국 큰 문제가 발생한다. 마을 청년 중 루시우스 헌트(호아킨 피닉스)가 다른 청년인 노아 퍼시(아드리엔 브로디)의 약을 구하러 숲 너머 마을로 가려고 한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허락없이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 루시우스는 원로이자 마을지도자인 에드워드 워커(윌리엄 허트)에게 크게 질책을 받는다. 또한 그 이후부터 집집마다 현관문에 붉은 피가 칠해지고, 가죽이 벗겨진 여우의 시체가 마을 곳곳에서 발견된다. 붉은 색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던 마을주민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평화롭던 마을은 점차 공포에 휩싸이고, 괴물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만 간다. 과연 이들은 안전하게 서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사실 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 <빌리지>의 한 장면. 눈 먼 소녀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루시우스(호아킨 피닉스)를 구하고자 약을 구하러 마을 밖으로 나간다.

영화 <빌리지>의 한 장면. 눈 먼 소녀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루시우스(호아킨 피닉스)를 구하고자 약을 구하러 마을 밖으로 나간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마을의 순박한 소녀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자신이 사랑하던 루시우스가 다쳐서 염증이 생기자 마을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멀지 않은 인근 마을에는 그에게 필요한 약품이 있으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눈이 먼 아이비는 숲을 지나면서 넘어지고, 진흙탕에 구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결국 기괴한 숨소리를 내는 '괴물'을 마주치는데, 아이비는 반대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서 도망친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벽에 부딪히고, 집념으로 벽을 넘는 일에 성공한다. 드디어, 마침내 괴물의 손에서 벗어나 마을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담에서 뛰어내린 순간, 아이비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기괴한 소음을 듣게 된다. 기계문명이 없는 시대에 살던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라고 묻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그 소리는 바로,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그렇다. 괴물은 사실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비가,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중세시대로만 알았던 세상의 시간은 사실 21세기였다. 모든 것이, 마을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게끔 눈을 가리려는 연극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목격했다던 붉은 피부의 괴물은 사실 '탈을 쓰고 연기를 한' 마을의 원로들이었다.

'이 안에서는 모두 안전할거야'라는 생각으로 마을의 평화,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그들은 괴물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바깥 세상을 내다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마을 원로들의 말에 따라 모두가 울타리 안에서만 '순종적으로' 살도록 꾸며낸 얘기였다. <식스센스> 이후 또 한 번의 반전을 가져다 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빌리지>를 통해 보여준 것은,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시스템이 거꾸로 사람들을 옭아맨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괴물탈 쓰던 마을 사람들, 한국 보수와 닮았다

영화 <빌리지>의 마을이야기를 허무맹랑하지 않은, 일종의 현실 풍자로 느끼게 된 것은 최근의 '종북' 논란 때문이다. 신은미씨가 자신의 북한 여행기를 바탕으로 황선씨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시작하자,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은 일제히 '종북콘서트'라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버이연합 등의 단체가 반대집회를 열더니, 급기야 극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학생이 인화물질을 투척하는 '테러사건'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사실 신씨의 북한여행기는 '북한을 다녀와보니,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더라'는 수준이지 맹목적인 찬양에 가까운 수준은 아니다. "지금 북한을 지상낙원이라 했느냐"며 폭발물 테러가 벌어진 상황은, 북한과 관련된 사안을 대하는 보수진영의 태도를 고스란히 압축한 듯 하다.

절대 울타리 밖을 쳐다봐서는 안 된다던 <빌리지>속 기성세대처럼, 한국의 보수진영은 북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다른 잣대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북한이 비판받을 대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괴물로 포장하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존재'로 악마화하는 태도는 다소 의아하다. 단지 북한여행기를 토크콘서트로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종북세력'으로 몰린 사람들은, 숲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로 현관문에 붉은 칠을 당해야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의 처지와 흡사하게 보이지 않나.

분단 이후 수십 년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 '반공 정신'이 널리 퍼졌지만, 그 이면에는 반대세력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른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독재시절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수사가 진행된 간첩사건들 중 다수가 최근 무죄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계정의 트위터 글을 리트윗하거나 북한 여행기를 발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애국 세력'을 자칭하는 이들에게 '빨갱이 사냥'을 당하는 풍경을 여전히 가까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괴물의 탈을 쓰고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던 영화 속 장면이, 오늘날 한국의 보수세력과 닮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미리 준비한 인화물질을 '종북몰이'를 당하는 사람에게 던지고, 그런 사건을 벌인 현행범을 '열사'로 부르며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하는 '자칭 보수세력'이 한국에 계속 존재하는 이상은 말이다. 현재의 한국이 '마녀사냥'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인물에 법에 의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빌리지 나이트 샤말란 종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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