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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프라임 '삶과 죽음의 그래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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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스스로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 시키는 '자살', 거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지만, 불황이 깊어지면서 두드러진 이유로 등장하는 것이 '경제적 이유'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은행에서 빌린 대출 이자 기일에 쫓겨, 사금융에 기대게 되고,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화에 견디다 못해, 개인의 물적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갈 때' 종종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고자 한다.

EBS <다큐 프라임> 2부작 '삶과 죽음의 그래프'는 우리가 알고 있던 자살에 대한 선입관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일본의 시기별 각종 자살률 지표와 자살 대책 등을 제시하며 한 국가의 정책이 개인의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굳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예로 들지 않아도, 2부작 다큐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해진다.

'이코노사이드(econocide)'란 경제와 자살이란 단어를 합친 말로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것을 의미한다. 1928년 대공황기, 고급 호텔 투숙객에서 프론트는 '머무실 겁니까, 뛰어내리실 겁니까?'라고 질문하곤 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몰락한 금융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코노사이드'란 단어가 탄생되었다.

가장 낮은 자살률 자랑하던 그리스의 긴축 정책

1부, '이코노사이드'를 설명하기 위해 다큐는 경제 위기를 겪는 그리스로 초점을 맞춘다. 2012년 평생 약사로 살던 한 노인이 그리스 헌법이 발효되었던 산카그마 광장 나무 아래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 '평범하게 살아온 삶이 모욕을 당했다. 내 존엄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질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그날 저녁,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유언을 부르짖으며 광장에 모여 시위를 했다.

그리스는 풍부한 자원, 따뜻한 날씨에, 후한 직업 연금제도, 실업 수당, 실업지원제도, 공공 의료까지 든든한 사회 안전망, 거기에 그리스 정교에서의 자살을 금기시하는 전통에 힘입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자살률을 자랑하던 국가였다. 심지어 1인당 3만불의 국민 소득에 세계 30대 부자국에 드는 '살찐 소' 같은 세계 1위 해양대국이자 관광 대국이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좋은 나라가 갖추어야 할 모든 예산을 삭감했다. 긴축 정책을 실시하며 각종 연금과 정부에서 주는 수당을 삭감하거나 없앴다. 그래서 국립 병원은 폐업하고, 사람들은 일을 잃고 아픈 몸도 치료 받을 수 없어, 무료 진료소를 전전하게 됐다. 결국 노인처럼 자신의 삶이 모욕을 당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이 급증하게 된다.

2011~ 2012년의 그리스 자살률을 분석한 학자는 정부가 지출은 1% 감소할 때마다, 자살률은 0.43% 증가한다는 통계적 결과를 내놓는다. 경기 침체가 오면 정치인들은 손쉽게 그 위기를 예산 삭감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그런 예산 삭감은 알코올 중독과 자살, 전염병을 증가시킨다. 즉, 위기를 예산 삭감으로 해결하면 사람들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1인당 5억 부채 채무국 아이슬란드... 복지 예산 늘려

그리고 다큐는 이런 학자들의 결론에 힘을 싣기 위해,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국가로 시선을 돌린다. 바로 아이슬란드다.

2차 대전 이후 경제 기적을 일으켜, 지난 30~40년간 부국으로 살아왔던 아이슬란드 역시 금융 규제를 풀어 외국 투자자를 유치하다 거품이 꺼지면서, 세계 5위의 부자 나라에서 일인당 5억의 부채를 가진 국제 채무국이 되었다.

그런 아이슬란드에게 IMF(국제통화기금)는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재정 지출 삭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복지 예산을 늘렸다. 불과 몇 년 사이에 4배나 늘어난 실업자를 위해 실업 문제에 집중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늘려 실업자 중 과반수가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얻도록 하였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벌였다.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자리를 쉽게 얻지 못하는 실업자들을 위해 실업 수당 수급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빚에 허덕이는 가구와 기업들을 위해 7000여 가구의 부채와 유망 중소기업의 부채를 탕감했다. 건강보험 예산을 늘리고, 집세, 양육비, 실업 수당의 보조를 늘렸다. 고소득층에 세금을 인상하고, 파산한 저소득층의 세금을 내렸다.

그리스와 정반대의 정책을 실시한 아이슬란드가 선택한 결과는 경이롭다. 그런 정부의 정책 이후, 불평등 지수가 감소하며 자살률은 증가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의 정책이 견인차가 되어, 아이슬란드는 2013년 2.8%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경제 위기 이후 6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리엔 자신들에게 살 길을 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그치지 않는 그리스와 대조적인 결과다.

이런 아이슬란의 성취는 IMF 결정마저 변화시켰다. IMF 보고서는 성장에만 집중하는 건 불균형을 증가시키며,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성장마저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한 사회가 평등할수록 장기간에 걸쳐 성장 가능하며, 적당한 재분배는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 상황... 미끄럼틀 사회 

<다큐프라임- 삶과 죽음의 그래프> 한 장면.
 <다큐프라임- 삶과 죽음의 그래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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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미끄럼틀 사회'에서는 일본을 다룬다. 2부의 대상 국가가 일본이 된 것은, 그저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미끄럼틀 사회로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반면교사'로서 일본의 사례를 든 것이다.

장기 불황을 겪는 사회에서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받쳐 주는 것은 '사회 안전망'이다. 고용, 사회 보험, 공적부조로 대표되는 이들 사회 안정망이, 경기 침체 속에서 비정규직, 자영업자, 무직자의 고통을 덜어준다. 고용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은 쉽게, 정규 사회에서, 낙오자로 '미끄럼틀'을 타게 된다.

다중적 채무자 즉 실직하거나 사업이 망하고, 은행 대출마저 갚지 못해, 고금리 대부업체를 이용하다, 다중 채무를 지게 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과, 우리나라는 같은 유형의 '미끄럼틀 사회'다. 대기업 직원도 미래가 걱정되고, 노동 인력 시장은 파리를 날리며, 상가들은 문을 닫고, 노숙인이 늘어나는 일본의 현상은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실정은 '이코노사이드'를 양산한다.

1997~1998년 '금융 위기의 시기' 대형 금융사가 파산하고, 그 여파가 사회 전반에 불어 닥쳤을 때, 일본 사회의 자살률은 34%나 증가했다. 2003년 취직, 고용이 최악인 시기, 역시나 자살률은 급증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자살이 단지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장년층의 자살이 타 연령층보다는 것도 역시나 경제적 이유가 큰 탓이다. 실업률과 자살률 역시 정비례의 상관 관계를 보인다.

후지산 북서쪽 '나무의 바다'라 불리는 천혜의 비경이 남아있는 숲, 하지만 한 해 평균 100여 명의 자살자들이 빈번하게 발견되는 '죽음의 숲'이기도 하다. 이 숲 곳곳에는 '돈 때문에 죽지 마세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빚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인, 전국 신용카드, 빚 피해자 협의회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20년간 불황 그리고 '아베노믹스'가 남긴 흔적이다.

일본은 2007년 늘어나는 자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1차 자살 예방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모색했다. 그 당시에는 정신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자살자 전반에 대한 각종 대책을 마련했다. 2012년 2차 자살 예방 대책이 마련되면서 '자살에 떠밀리지 않는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적 이유의 자살을 구제하는 데 집중했다. 자살 유형을 분석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경제적 궁핍, 사업 부진, 실업, 채무 등은 우울증을 낳았다. 하지만 이런 원인으로 발생한 우울증에, 병원 의사만으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이유를 해결해 정신적 이유로 인한 자살까지 해결하겠다는 거시적인 정책을 수립한 것이다.

실제 시장이 비상 상태를 선포할 정도로 높은 자살률을 보였던 구리하라 시는 시가 앞장 서서 '구리하라 시 희망론'을 만들어 기존 은행보다 더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해 주었다. 또, 직장을 알선해 줘서 자살률을 반이나 줄였다. 이후 전국에서 구리하라 시처럼 경제에 집중한 자살 구제 정책을 펼쳐 일본 사회 전반의 자살률을 낮추었다. 즉, 경제 위기가 와도 국가가 대책만 잘 마련한다면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부 '미끄럼틀 사회'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에서 이탈되는 '미끄럼틀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평 안정망'이다. 법률 상담의 문턱을 낮추고, 저금리 대출이 마련되며, 구직 상담과 대책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며, 생활 보호가 이루어지는, 정부, 법률 기관, 은행, 병원, 사회 단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미끄럼틀 사회 방지책'이다.

이렇게 2차 자살 예방 대책을 통해 경제적 자살에 집중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일본보다 낮은 자살률을 보이던 한국이, 이제 역전되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 자살 충동 1위의 원인이 '돈'인 사회가 되었다.

'삶과 죽음의 그래프'는 경제적 호황과 불황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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