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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채널A>가 최 경위의 유서 내용 중에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단독으로 보도하고 있다.
▲ "조선일보에 배신감" 14일 오후 <채널A>가 최 경위의 유서 내용 중에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단독으로 보도하고 있다.
ⓒ 채널A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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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고 최아무개 경위의 유서가 14일 오후 전격 공개됐다. 유서에는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향후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조선>, 하루에만 두 번 성명서 발표... '자사 명예'와 '공정 보도' 강조

일요일이었던 이날 <조선일보>는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채널A>에서 보도한 "최 경위가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을 유서에 적어놓았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은 오후 4시 51분 '조선일보사'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입장문을 보도한 조선닷컴의 기사 제목은 '최모 경위 보도 관련 조선일보 입장, "유서 짜깁기한 보도로 조선일보 명예 훼손"'이었다.

<채널A>에서 최 경위 유서에 '조선일보에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자 '자사 명예에 대한 훼손' 운운하는 입장문을 14일 발표한 <조선일보>
▲ 조선일보 최초 입장문 <채널A>에서 최 경위 유서에 '조선일보에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자 '자사 명예에 대한 훼손' 운운하는 입장문을 14일 발표한 <조선일보>
ⓒ 조선닷컴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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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장문에서 <조선>은 "14일 오후부터 일부 언론이 '최 경위가 유서에서 조선일보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선일보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뒤 "하지만 이 기사들은 본지가 파악한 유서의 내용이나 맥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조선>은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하는 것은 고인의 유서를 왜곡해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유서 전체가 공개되기 이전에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거두절미한 채 왜곡 보도해 본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조선>이 발표한 최초 입장문이 놀랍다. 유서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름 확신이 있었던 듯 6개의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입장문에서 "본지가 파악한 유서의 내용"이란 표현과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조선일보>에 대해 언급한 최 아무개 경위의 유서 대목
 <조선일보>에 대해 언급한 최 아무개 경위의 유서 대목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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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그날 오후 6시,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유서에서 최 경위는 '<조선>에서 저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되었습니다'라고 기술했다. 직접적으로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조선>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기사 보기: "청와대 민정라인 제의, 나도 흔들렸을 것... 이해한다")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뒤 <조선일보>가 다시 입장문을 발표해서 자사의 보도가 '공정했다'고 주장했다.
▲ "보도는 공정했다"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뒤 <조선일보>가 다시 입장문을 발표해서 자사의 보도가 '공정했다'고 주장했다.
ⓒ 조선닷컴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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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29분, <조선일보>가 두 번째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앞서와 달리 '조선일보 편집국' 명의로 입장을 발표했다. 약 3시간 30분 전에 발표했던 입장문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명예'란 표현이 사라진 대목이다.

최초 입장문에서는 두 번에 걸쳐 "조선일보 명예"를 운운했던 이 신문은 이제는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어떠한 예단도 없이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보도해 왔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본지가 그동안 보도한 최 경위의 유출 관련 혐의 내용은 검찰로부터 확인된 취재 내용이거나 구속영장에 적시된 내용으로, 이는 타 언론들도 보도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죽음 앞에 '공정했다' 주장하는 <조선>, 과연...

최 경위가 체포된 다음 날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0일자 3면
▲ 최 경위가 유출 최 경위가 체포된 다음 날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0일자 3면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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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은 고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40대 중반의 한 경찰이 "조선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 억울하다"며 죽음으로 항의한 내용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공정하게 보도했다"고 맞섰다. 정말로 그러한가?

<조선>의 지난 10일자 3면 머리기사 제목은 "박경정이 갖고 나온 靑 문건,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이다. 해당기사에서 이 신문은 "검찰은 한 경위로부터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을 몰래 복사한 최 경위가 이를 언론사에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래픽자료를 만들어서 함께 보도했는데 최 경위의 역할을 '최모 경위 유출'이라고 특정했다. 동료인 한 경위의 역할은 '복사'로 기록돼 있다.

이 신문은 정보분실 2명의 경위가 문건을 유출한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인 11일자 사설로 이 두 사람을, 나아가 이들의 조직을 단죄한 것이다. 제목부터 '섹시'했다. "靑 문건 유출로 드러난 정보 경찰의 한심한 실상"이 그것이다. 이 신문은 "드러난", "한심한 실상"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이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처럼 몰아갔다.

최 경위가 체포되자 이를 '정보 경찰' 차원으로 확대해 비판 사설을 게재한 <조선일보> 12월 11일자 사설 중
▲ 조직(회사) 차원으로 확대 비판한 조선일보 최 경위가 체포되자 이를 '정보 경찰' 차원으로 확대해 비판 사설을 게재한 <조선일보> 12월 11일자 사설 중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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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에서 이 신문은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청 본부에 이르기까지 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경찰은 무려 3400명에 이른다"며 "사실상 전국 구석구석에 경찰의 촉수(觸手)가 뻗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검찰은 이번에 정보 경찰의 탈선행위를 엄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와는 별개로 경찰의 정보 조직도 수술(手術)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찰의 정보 담당 인력이 수천 명이나 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을 것이다"고 문제를 두 경찰 조직으로 확대해서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강한 논조로 어필한 것과 달리, 12일 법원은 이 두 사람에 대해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영장을 기각했다. 두 사람은 풀려났다. 이를 보도한 13일자 <조선일보>의 관련 제목은 "검, 경위2명 영장 재청구… 특검까지 각오"였다.

12일 두 정보 경찰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다. 두 사람이 풀려나게 되자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3일자 4면.
▲ "영장은 재청구.. .특검까지 각오" 12일 두 정보 경찰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다. 두 사람이 풀려나게 되자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3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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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은 이들이 풀려난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사실상 배수진을 친 상태다"라며 "특별검사가 임명돼 재수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만큼 빈틈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뜻"이라고 검찰 입장의 해설기사를 게재했다.

풀려난 두 경위의 입장은 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두 경위의 구치소 출소사진을 보도하면서 "최 경위의 안경에 김이 서린 데다 카메라 플래시까지 반사되면서 오른쪽 눈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상대적으로 신중했던 <동아>·<중앙>의 보도

최 경위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청와대에서 회유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2월 13일자 6면
▲ 청와대 회유사실 폭로한 <동아> 최 경위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청와대에서 회유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2월 13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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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언론은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중했다. 두 경위 체포사실을 보도한 10일자 내용을 보면 <동아>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임관혁)는 최모 경위에게는 (중략) 보고서 뭉치를 세계일보 기자에게 건넨 혐의를, 한모 경위에게는 승마협회 동향 문건을 빼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한화S&C 소속)의 진모 차장(45)에게 건넨 혐의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혐의를 두고 있다" 등 체포영장에 명기된 사실 위주의 보도로 해석된다.

이후 <동아>는 두 경위가 석방되자 13일자 지면에서 최 경위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회유하려 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 경위, 청 '유출 인정하면 선처' 언급" 제목의 기사에서 최 경위가 "대통령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찰관이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해줄 수 있다'고 한 경위에게 말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동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도했다. 두 경위가 체포됐을 때, 검찰의 혐의사실에 대해서 언급한 정도다. 11일자 사설 "정보 장사꾼들 사이에 떠돌아다닌 청와대 보고서"를 보면 이 신문의 관심은 두 경위가 아니다. 청와대에서 도대체 문서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따져 묻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신문은 "국가의 중대사와 기밀을 다루는 청와대 보고서가 마치 찌라시(사설 정보지)처럼 여기저기 마구 나돌아다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면서 "청와대의 문서 관리와 기강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정보 경찰에게 책임을 물었던 <조선일보>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이다.

<조선>, 책임을 검찰에 떠넘기는 것도 공정한가

'조선일보가 자신을 유출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한 최 경위 유서 내용과는 별개로 <조선일보>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추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12월 15일자 4면 중
▲ "최 경위, 극단적 선택한 까닭은..." '조선일보가 자신을 유출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한 최 경위 유서 내용과는 별개로 <조선일보>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추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12월 15일자 4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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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15일자 <조선>은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최 경위의 극단적 선택은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 때문"으로 보도했다. 실제 그의 유서에서는 검찰의 강압수사 등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이 드러나 있었다. 오히려 이 신문에서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때문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리해 본다.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14일 <조선일보>는 유서 공개를 앞뒤로 두 차례 입장을 발표했다. 유서가 공개되기 전에 발표된 최초 입장문에는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했다면서 "자사의 명예훼손 운운"하는 내용 위주였다.

잠시 후, 최 경위 유서가 공개됐다. 이 신문에 대한 원망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신문은 잠시 후 다시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자사의 명예"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보도는 "공정한 보도"였고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누가 보더라도 이들에 대해 확신을 갖고 보도했다. 10일에는 "최 경위가 유출했다"고 한 경위가 진술했다고 단정했고, 이에 11일에는 사설을 통해서 정보 경찰 전체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이 풀려나는 날조차 검찰 입장에서 "영장 재청구"할 것이라며 두 경위를 몰아세웠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이제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이다"라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고 적어놓았다. 그 회사를 직접 대상으로 사설을 통해 비판한 언론은 <조선일보>였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하루에 두 차례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보도는 공정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 경위는 죽어서도 마음이 편치 못할 듯싶다.


태그:#조선일보, #최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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