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포스터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상당수 영화팬들에게 2014년은 사극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역린> <군도> <명량> <해적>을 거쳐 <상의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사극이 쏟아져 나온 한국도 그러했지만 할리우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올 한 해 할리우드 영화는 <노아>로 시작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로 막을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리들리 스콧이라는 내로라 하는 연출자들이 사극의 흥행세를 이끌었으며 <폼페이> <300: 제국의 부활>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 <허큘리스> 등도 연이어 개봉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2014년, 서구 문명의 두 원류가 스크린으로 부활하다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시대극은 크게 기독교와 그리스·로마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와 그리스·로마를 현대 서구문명의 두 원류라 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실제로 <노아>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기독교 경전 가운데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고, <폼페이>와 <300: 제국의 부활>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와 <허큘리스>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시대극이 거듭 제작되는 현상을 소재의 고갈로 해석하는 주장도 있지만 서구 문명의 두 원류가 집중적으로 영화화되었다는 점은 단순히 소재의 고갈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지점이다.

냉전종식 이후 처음으로 독보적인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정치·경제적으로도 험로를 걷고 있는 미국의 오늘이 할리우드로 하여금 서구 문명의 극복과 승리의 드라마를 연이어 생산하게 했다는 추정은 지나친 것일까. 번영했던 제국의 도시에 닥친 재앙과 그 가운데 피어난 사랑을 그린 <폼페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들이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이겨내는 <300: 제국의 부활>, 신화적 영웅을 스크린에 되살린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와 <허큘리스>, 타락한 문명의 끝에서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그린 <노아>, 유대민족이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까지. 이 같은 영화들의 연이은 제작 이면에는 미국이 직면한 위기와 극복에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각일 수 있다.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주인공 모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주인공 모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리들리 스콧의 신작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감각적인 영상과 웅장한 서사로 이름 높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이다.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부터 <글래디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수준급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로빈 후드> <프로메테우스> <카운셀러> 등 이후 발표한 작품은 평단과 관객의 평이 크게 엇갈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형적인 문법을 고민 없이 답습하면서도 중심을 잃고 치우치거나 초점을 잡지 못하고 헤맨다든가 하는 부정적 인상이 강한 작품이었는데 새로운 작가적 면모를 보였다기보다는 그저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신작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에서 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을 모세로 발탁했다는 점부터 출애굽기의 대서사를 그대로 영화화했다는 점까지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대규모 전쟁신과 10가지 재앙, 거대한 홍해 장면이 최첨단 시각효과로 연출되었으며 모든 장면을 3D 카메라로 찍어내고 사후에 CG 작업을 곁들여 볼거리가 상당하다는 점도 주목됐다.

규모와 기술이 대단한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차별점은 서사다. 출애굽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나관중의 <삼국지>를 제외한다면 고금을 통틀어 짝을 찾기 힘든 대서사이다. 우리는 이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에 대한 자유의 승리를 읽을 수 있으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전능함을 확인하고 나아가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서사는 특정 종교의 경전을 바탕으로 하며, 이에 반하는 역사적 논쟁점 역시 적지 않기에 무작정 사실로 믿어서는 곤란한 지점도 있다. 혹자는 이 서사의 이면에서 하나의 민족만을 비호하는 신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폭력성과 오만함에 경악할 수 있으며 신앙과 믿음이 어느 지점에서 광신과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품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출애굽기가 지닌 거대한 서사의 파괴력은 이 영화를 다른 작품과 근본적으로 차별화하는 지점이다.

출애굽기는 이미 세실 드밀의 1956년 작 <십계>와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를 통해 영화화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구약의 출애굽기를 서사의 근간으로 삼아 이집트 왕가에서 자라난 모세의 고뇌로부터 그가 신을 받아들이고 유대민족을 탈출시키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엑소더스>와 공통점이 있다. 특히 <십계>는 당대를 대표하는 명배우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린너를 모세와 람세스로 캐스팅했고,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대작이었다는 점에서 <엑소더스>와 연관이 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는 신과 모세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십계>가 기적을 통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는 신과 그의 뜻을 따르는 충직한 모세를 그렸다면 <엑소더스>에선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신을 형상화하고 이를 따르는 모세의 인간적 고뇌를 표현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너무나 충실한 재현이었던 나머지 종교영화를 표방했음에도 판타지물에 가까웠던 <십계>와 구분되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모세의 고뇌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극 전반이 출애굽기의 재현과 신의 이야기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에이리언>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람세스의 어머니 투야 역을 맡았다.

<에이리언>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람세스의 어머니 투야 역을 맡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서사의 웅장함과 드라마의 빈약함

하지만 이는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모세의 고뇌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인물의 드라마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십계>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인물이었던 람세스, 네프레티리, 십보라, 조슈아 등이 철저하게 조연에 머문다. 이는 결과적으로 모세의 캐릭터와 서사를 제외한 모든 것의 소멸로 다가왔다. 서사의 웅장함과 드라마의 빈약함이 공존하기에 관객은 출애굽기를 두 시간 반에 걸쳐 '빨리' 보게 될 뿐이며 드라마를 통해 극에 몰입할 수 없기에 지루함을 느낀다.

규모있는 액션과 첨단 시각효과의 향연만으로는 빈약한 드라마를 메울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모세의 고뇌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서사에 다가서는 다리가 될 수 있었던 드라마가 철저하게 파괴된 채 서사 자체에 집중하기에 어느 순간 관객이 서사로부터 떨어져나와도 다시 끌어올 힘이 부족하다. 이는 장대한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옮길 때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이기도 한데 제한적인 시간에 큰 이야기를 담으면서 드라마를 덜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우삼 감독이 <삼국지> 가운데 '적벽대전'만 따로 떼어 두 편으로 영화화했고, 볼프강 페터젠의 <트로이> 역시 <일리아스>의 후반부만 떼 그려냈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은 서사와 드라마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아예 <출애굽기>의 전편을 다룬  <엑소더스>가 빈약한 드라마를 가진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사막 가운데서 지쳐 쓰러진 모세가 말 두 마리와 무기를 얻고 다시 십보라와 만나 혼인하고 신을 만나 유대민족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받기까지의 이야기가 마치 캐릭터가 시나리오에 따라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드라마의 부재 때문이다. 드라마의 부재 속에서 모세와 람세스의 갈등은 좀처럼 몰입하기 어렵고 클라이막스서 이뤄지는 결투는 실소까지 자아낸다.

리들리 스콧이 찍어낸 출애굽기 빨리 보기?

더욱이 <십계>와 같이 종교적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탁월한 지도자에 의한 해방이 아닌,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신에 의한 구원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는 부정적인 의미로 종교적이다. 영화는 이집트의 기록이 아닌 '승자' 이스라엘의 기록을 상징성과 과장의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기록된 그대로 묘사하였고, 이는 절대자가 선택받은 민족을 그렇지 못한 이들로부터 구해내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신이 하나의 민족을 택해 그들을 보호하고 다른 이들에겐 대항할 수 없는 권능으로 핍박을 가하는 모습은 다른 인간을 억압하던 이집트의 압제보다도 부조리하고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신의 대사를 통해 이를 비판적으로 비추기도 했지만 모세의 고뇌 이상으로 영화적 고민을 확장하지 못해 부분적인 문제 제기에서 그치고 말았다. 오히려 영화는 유대 민족의 기적적 탈출과 십계의 새김을 통해 끝나며, 출애굽기 그대로의 영상화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비종교인들에게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지는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신자들에게 구약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나아가 기독교에서의 신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그저 기독교 경전의 영상화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은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영화팬으로서 아쉽게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http://blog.naver.com/goldstarsky)에 게재하였습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리들리 스콧 크리스찬 베일 조엘 에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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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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