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는 저서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에서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경제위기에 봉착한 국가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제간 연대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한국의 제주 강정에도, 한진 중공업 투쟁에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유도 그 연대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있어서 일 것이다. 

국제 연대가 너무 멀리 느껴진다고? 지난 8일 사망 34주기를 맞았던 '비틀즈'의 존 레논은 어떠한가. "'War Is Over! (If You Want It)"(당신이 원한다면 전쟁은 끝난다) 이란 구호를 내걸고 12개 도시에서 반전 캠페인을 벌였던 존 레논은 아마도 역사상 뮤지션이 보여준 연대의 최전선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소중한 연대의 기억은 차고 넘친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파티51>은 서울이라는 도시, 그 한복판인 홍대에서 일어난 투쟁과 뮤지션들의 연대의 기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 연대의 기록에 앞서 먼저 소환되어야 할 이름이 바로 '두리반'이다.

홍대 속의 또다른 홍대, 두리반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권리금이 1억인데... 이사비용 300만원에 떠나라니
삶의 터전 강탈당한 소설가 유채림... 용산참사는 진행형"
"한겨울 철거, 농성 17일째인 소설가를 만나다
12월 24일 용역들의 철거, 그리고 한 소설가의 농성"
"우린 '두리반'과 GS건설의 정당한 재협상을 원한다"
[두리반 리포트] '51+'를 준비하며... 철거 용역들과 GS건설에 보내는 경고

2009년과 2010년 사이 '두리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오마이뉴스> 기사 중 일부다. 홍대, 칼국수가게, 철거, 농성, 용역, GS건설, 그리고 투쟁. '두리반'을 둘러싼 상황들은 당시 '홍대 안의 용산참사'로 인식되며 많은 이들의 우려와 근심을 자아냈다. 2009년 1월의 용산참사의 기억이 생생한 때였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가리키는 두리반은 소설가 유채림의 아내인 안종녀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4년 가까이 운영되던 두리반. 그러나 2009년 연말, 급작스럽게 철거용역들이 들이닥치게 된다. 공항철도 건설로 인해 주변 땅값이 뛰어 오르자 건물주가 시행사 측에 건물을 팔아버렸고, 시행사는 권리금 1억은 고사하고 이사비용 300만원에 건물에서 나갈 것을 종용했다.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2010년 2월, 이 황량함이 감돌던 두리반에 뮤지션들이 삼삼오오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어지는 연대의 서막이었다. 이들은 토요일 오후 '자립음악회'라는 이름으로 50회에 걸쳐 두리반 건물 내에서 공연을 펼쳤다. '뉴타운컬쳐파티51+'를 비롯해 수많은 인디 밴드들과 뮤지션들이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공연으로 자립과 연대를 노래했다. <파티51>은 그 중 적극적으로 참여한 몇몇 음악가들과 유채림, 안종녀 부부에게 카메라를 근접시킨다.

뮤지션과 철거민의 연대기, 특별해서 더 소중하다 

 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영화 <파티51>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공감은 연대의 가장 큰 무기다. '두리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트위터로 전파된 두리반 소식은 용산을 겪었던 이들에겐 또 하나의 충격이자 근심이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 중인 뮤지션 한받은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홍대 앞에서 밀려나는 음악가의 처지와 철거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그의 말은 단순명쾌하지만 이 영화의 선언과도 같다.

한 달에 15만원을 벌기 원했던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도, 소외된 자들을 슬픔과 자조로 그리는 회기동 단편선도, 과격한 펑크로 한국사회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밤섬해적단도, 홍대 앞 앰프 파괴자로 불리는 젊은 기획자 박다함도 그렇게 주류와는 거리가 멀지만 두리반과 동고동락하며 스스로 성장한 '두리반' 뮤지션 들이다.

사회파 다큐이자 음악다큐이기도 한 <파티51>은 두리반과 이들 뮤지션들이 주고받은 애정과 성장, 연대의 발자취다. 하루에 세 탕(의 각기 다른 공연)을 뛰며 고단한 음악행보를 이어가는 한받의 하루를 따라가는 시퀀스는 이들이 절대 치기어린 자기 세계에 빠진 '예술가병' 환자들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들의 음악 자체가 다큐의 주제와 내용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도 흥미롭다. 자본주의의 횡포와 싸우는 두리반 투쟁, 그 중심에서 울려 퍼지는 '사악한 음악폭력배'라는 닉네임의 밤섬해적단이 대표적이다. '386 SUCKS'. '나는 씨X 존X 젊다', '땡전 뉴스', '박카스 한 병'과 같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이들의 음악은 지금 이 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청년 저항의 최전선의 어떤 활기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명제는 "홍대가 어떤 자유로운 해방구라면, 두리반은 역설적으로 그런 홍대로부터의 해방구였다"라는 '두리반'이라는 공간을 만나 현실적인 고민과 실천으로 승화된다.

우리가 즐겁게 연대할 수 있는 그날까지

 영화 <파티51>의 공식포스터

영화 <파티51>의 공식포스터 ⓒ 인디스토리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적 사건도 있었고, 점점 사회가 퇴행하는 느낌인데요. 영화에서 음악가들이 보여줬듯이 우리 사회가 즐겁게 연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각자 관심이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즐겁게 연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용택 감독의 말마따나, <파티51>은 즐거운 연대에 대해 논한다. 우리 사회가, 우리 민중이 결코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경험. 두리반의 수년을 좇아가는 이 다큐는 그 경험을 스크린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그 과정엔 절전과 철거 용역들과 싸우며 점거를 이어간 유채림, 안종녀 부부의 눈물 어린 투쟁기가 녹아 있다.

시간 순으로 뮤지션들과 두 부부의 시간을 따라잡는 정용택 감독은 이 연대가 좀 더 확장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명동 마리 철거 투쟁을 카메라에 담은 것도, 마포구청과의 합의를 통해 부활한 두리반의 (촬영 당시의) 현재를 담은 것도 그러한 의도에 부합한다. 무엇보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고 일본에 진출하는 뮤지션들의 성장을 담은 후일담은 두리반의 부활과 함께 그들의 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에 더욱 값지고 감동적이다.

연대의 의미가 더욱 절실해지는 만큼 그 실천은 희박해져가는 시대다. 그럴 때 일수록 승리의 경험, 그 기억의 공유가 필요하다. 공간의 의미를 사유하고, 그 의미를 음악을 통해 전파하려는 노력들로 가득한 <파티51>은 지금,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의미한 다큐다.

한편으론  상가 권리금 문제가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된 2014년 막바지에라도 도착해서, 다행이다. 해를 넘기기 전에, 이제는 홍대 서교호텔 뒤로 자리를 옮긴 새 두리반에 가 봐야겠다. 칼국수는 두 말할 필요 없고, 보쌈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파티51 두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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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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