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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믿지 못할 관대함을 보이는 중이다. 테러를 테러로 쉬이 규정하지 못하는 나라, 술 마신 범죄자들에게 관대하듯 폭발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급기야 200여 명이 운집한 공간에서 터트리고만 고등학생에게도 여유를 보이자는 일부 국민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이 기이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신은미 콘서트서 '로켓캔디' 투척한 고교생 구속"
"'신은미 토크 콘서트' 고3학생, '로켓 캔디' 터트리기 직전에 한 말이..."
"신은미 토크 콘서트, 고3 학생의 인화물질 투척으로 중단... 놀란 관객들..."

'로켓캔디'부터 '인화물질 투척', 그리고 '황산테러' 혹은 '백색테러'까지. 언론에 입맛에 맞게, 규정도 갖가지다. A군은 지난 10일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평양에 다녀온 그녀들의 통일이야기' 강연장에 폭발성 인화물질을 넣은 냄비에 불을 붙여 강단을 향해 던졌다.

이를 정리하듯, 12일 경찰은 A군에게 폭발성물건파열치상,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목적 건조물침입죄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13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심각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분위기다. 경찰들과 기자들이 내외부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던 성당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이다. 당시 동영상만 보더라도, 부상자가 이 정도 수준인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사건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후, 우리가 명확히 봐야 할 것은 이 테러의 이면이다. 어이없이 예견된 '백색테러' 말이다. 

'신은미 종북' 논란 불지핀 건 <조선일보>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A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품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관객 2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진행하는 토크 콘서트에서 A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품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관객 2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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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방북기를 연재해 온 신은미씨와 토크콘서트에 주목한 것이 <조선일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지난 11월 21일 <서울 한복판 '從北 토크쇼'>로 명명한 <조선일보>의 '오버'스러운 보도 이후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이 콘서트에 대한 '종북몰이'에 참전했다. <TV조선>과 <채널A> 등 여타 종편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스탠스는 간단하다. "신은미씨는 정말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일까요?"라는 <TV조선> 앵커의 멘트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 테러 사건 이후까지도 끊임없이 '종북' 운운하는 종편들과 "백색테러가 신은미-황선 '북 세습찬양'의 면죄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프레임을 덧씌우는 일부 보수매체의 접근법에 답이 있을 수 없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그런 시대다. 지난해 저서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고, 통일부의 홍보 동영상에도 출연했던 신씨를 일거에 종북인사로 몰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인사는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는 말 한마디조차 꼬투리를 잡힌다. 이를 종편과 보수 언론은 집요하게 분석하고 해부한다.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가 열린 9일 오후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사전 기자회견을 갖고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가 열린 9일 오후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대구동성아트홀에서 사전 기자회견을 갖고 콘서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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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의 과녁은 현재까지 통합진보당 당원직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출신이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황선씨를 목표로 했을 공산이 크다. 신은미씨의 칼럼이나 서적은,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한 재미동포 아줌마의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반면 황선씨와 결합한 토크 콘서트는 '과거 학생운동 당시 평양을 방문한 바 있는 주사파와의 결합'으로 엮어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보당을 뿌리 채까지 뽑아내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지 또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찍어내려던 진보정당, 심지어 진보당 관련 인사가 북한 관련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는 꼴을 곱게 봐줄리 없는 정권과 보수 언론의 합작품이 바로 '종북 콘서트'의 탄생인 것이다.

또한 국가보안법이 엄연한 한국에서 북한을 언급하는 이들은 이렇게 언제든지 종북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들 보수언론의 십자포화에 결국 '일베'하는 고3 학생이 일을 낸 것이 이번 테러 사건이라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테러 범죄자에게 하루 만에 1300만 원 모아 주는 풍경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통일 토크콘서트를 앞두고 테러 예고 글이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 <네오아니메>의 메인 페이지.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통일 토크콘서트를 앞두고 테러 예고 글이 올라온 온라인 커뮤니티 <네오아니메>의 메인 페이지.
ⓒ 네오아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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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밝혀진 A군의 행적에서 간과해선 안 될 키워드가 '일베'와 '증오범죄'다. A군은 테러 직전까지도 한 사이트에 폭발물의 재료와 제조 과정, 그리고 콘서트 현장의 사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봉길센세의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쓴 이 '일베 준회원'은 "지상낙원"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폭발물을 던졌다고 한다.

이것이 비단 이 고3 학생 한 명을 단죄한다고 끝날 일인가. 지금도 <일간베스트>(아래 일베) 게시판에는 "열사를 돕자"는 명목으로 모금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법률 지원에 나서겠다는 의견도 확인할 수 있다. <채널A>와 인터뷰를 가진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만에 1300만원이 들어오다 보니까, 저도 상당히 놀랐고, 일단 변호사비는 (A군 측에) 보냈습니다."

무덤에서 윤봉길 의사가 달려 나올 일이 이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로 극우 내지 우파의 정치적 목적 달성의 위해 암살, 파괴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백색테러를 버젓이 옹호하는 세력을 거센 비난에 직면시키지 못하는 세태. 그 테러의 원산지라 불러도 무방할 일베에는 오늘도 희희낙락하는 글들이 횡행하는 중이다.

'행게이(행동하는 게시판 이용자)'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에 진출하기를 염원했던 저들이 소원을 이룬 것이 바로 '폭식투쟁'이었다.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들을 광화문 광장에서 욕보였던 그들과 맥을 공유하는 A군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 수법과 결과가 사제폭발물이란 엄청난 결과물로 나타났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로 번지는 것 아니냐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내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제명시켜야 한다"는 하태경 의원의 발언이다. 진영 논리에 입각해 테러까지도 옹호하려는 어리석은 이들을 우리는 오늘도 확인할 수 있다.

<TV조선>을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명백한 테러를 "인화물질 투척"이라며 죄질을 낮추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종북'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 나라사랑어머니연합 등 6개 보수단체는 어이없게도 A군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낼 뻔했던 테러까지도 자기 이익에 맞게 왜곡하고 옹호하려는 몸부림들에 몸서리쳐질 지경이다. 한국사회가 진정 이정도로 후퇴한 것인가.

지금은 용서보다 단호한 처벌 필요

지난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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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선씨가 구속된 A군에 대해 "용서"를 운운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아니다. 테러는 테러다. 피해자들에 앞서 그가 용서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단호하고 엄중한 처벌이야말로 향후 재발할지 모르는 테러 범죄를 조기에 차단하는 길이다. 또 그래야만 싹이 트고 있는 증오범죄를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이번 테러사건이야말로 곪아 온 부위가 터진 격일 수 있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환부를 목격하는 중이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일베' 등을 옹호했던 진영이 A군을 감싸는 모습에서, 여전히 신은미씨와 황선씨를 사상범으로 몰아가는 종편의 광기에서,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국가보안법을 등에 업은 종북몰이에서 보인다. 그 결과가 이번 테러다.

그들이야말로 고3 A군을 확신범으로 둔갑시킨 장본인들이다. 테러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재발방지책 마련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들에게 가능한 범위 내의 제재들이 더 요구된다. A군에게 향한 1300만 원이 또 다른 테러의 자금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더 이상 10대에 의해 자행되는 끔찍한 증오범죄를 목도하고 싶지 않다.


태그:#신은미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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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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