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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sy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동일한(sym) 감정(pathos)이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감정이입(e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em) 이해하는 것이다. 모두가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공감이 있을 때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고 사회가 따뜻해진다. 나라 전체 행복의 크기가 커질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서구 국가들이 공감에 주목한 배경이리라. 그들에게 공감은 단순한 태도나 감정이 아니다. '능력'의 범주에 속한다. 교육을 통해 공감력을 기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공감 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나 '소시오패스(sociopath)'를 포괄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목격해도 별다른 감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는 쾌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이들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때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은 사회적 제재나 도덕적인 행동 양식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사이코패스는 감정적 공감이 없으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사회적 두려움-동료의식 없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자'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환경 요인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호우는 자신의 저서 <공감의 힘>에서  대부분의 사이코패스의 가족사가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육체적인 학대와 정서적인 훼손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호우 교수에 따르면 어느 나라든지 전체 인구의 2%가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 명 정도로 본다면 우리나라에는 1백만 명 정도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있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수다. 그들이 멋대로 날뛰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서구가 공감을 '능력'으로 보고 교육에 힘쓰게 된 또 다른 배경이 이와 관련되지 않을까.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이 12일 KBS와 인터뷰를 했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이 12일 KBS와 인터뷰를 했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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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으로 일으킨 사회적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나는 조 전 부사장이 심리학 교과서류에 등장하는 엄격한 의미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우 교수 식의 포괄적인 셈법에 따라 산출된 1백만 명에는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땅콩 회항' 사건의 전후시말기가 그 생생한 증거물이다.

호우 교수에 따르면 반사회성 인격장애자에게는 사회적 두려움이나 동료의식이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식의 결핍은 부주의함과 폭력성, 착취 등의 행동 양식으로 이어진다. 내 눈에는 언론이 연일 전하는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딱 그렇다.

'땅콩 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이 12일 KBS와 인터뷰를 했다. 여기에서 사무장은 사건 당일 기내 서비스 책임자로서 조 전 부사장에게 용서를 구했는데도, 조 전 부사장이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 전 부사장이 서비스 지침서 케이스의 모서리로 자신의 손등을 수차례 찔러 상처까지 났다고 폭로했다.

조 전 부사장의 폭력적인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사무장과 여승무원에게 무릎을 꿇게 한 뒤 모욕을 줬으며, 그들에게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사무장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 모욕감과 인간적인 치욕, 겪어보지 않은 분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조 전 부사장은 올해 40살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판별하지 못할 나이가 아니다. 가령 격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는 '중2병' 걸린 10대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우리나라 '대표' 항공사의 부사장이다. 공인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 전 부사장은 '반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감행했다. 호우 교수가 말한 '사회적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현아는 왜 당황했을까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을 폭행했냐, 거짓진술을 강요당했다는 사무장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을 폭행했냐, 거짓진술을 강요당했다는 사무장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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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가 2012년에 쓴 <플루토크라트>는 그 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화제작이다. 부유한 엘리트 계급을 뜻하는 플루토크라트(Plutocrats)를 통해 불평등한 현대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 6장에는 UC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폴 피프가 이끄는 연구팀이 재산 수준이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연구팀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사거리에서 값싼 구형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와 고가의 신형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 결과 후자가 두 배나 더 많이 다른 차량과 보행자들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또 다른 실험 결과도 흥미로웠다. 소득이 더 높은 사람들일수록 가상의 입사 지원자들이 낮은 연봉을 수락하도록 만들기 위해 속임수를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자들에게 더 많은 보너스를 안겨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를 부자라고 상상하는 것 역시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피실험자들에게 아주 부자, 또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라고 상상하게 했다. 그러고는 근처 실험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사탕을 항아리에서 꺼내 가도록 했다. 그 결과 부자라고 상상했던 사람들이 사탕을 더 많이 집어갔다고 한다. 프릴랜드는 이토록 자기 중심적이고 욕심 많은 '부자 엘리트'들의 모습을 애덤 스미스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비참함에 무관심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에 유감과 분노를 느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더욱 극심하고, 죽음의 슬픔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 중; <플루토크라트> 348쪽에서 재인용)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이 폭행과 거짓진술 강요를 당했다는 인터뷰를 했는데 이를 인정하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는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행위를 한 적 없느냐는 질문에도 "모른다"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의 논점에 따르자면 지금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조 전 부사장이 실제로 사무장을 폭행하지 않고, 또한 그에게 극심한 모욕을 안겨 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당황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그가 그토록 당황한 것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 '사실'이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슈퍼 갑'인 조 전 부사장에게 '당황'의 경험은 무척 낯설었으리라. 회사 경영자라는 그 자신의 권력과 부친이 회장으로 있는 그룹 전체의 비호만으로도 모종의 '사실'이 충분히 숨겨질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사실'이 드러났다면 당황하기보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는 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그 자리에 선 것이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사건 직후 비난 여론이 퍼지기 시작하자 상식 밖의 해명문을 내놓았다. 사과 표명 또한 갈수록 악화하는 여론에 떠밀리듯 나왔다. 조 전 부사장이 진실의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 또 다른 '조현아'들

성경에는 "남이 네게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에게 하라"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타인을 위한 배려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말이다. 물론 남을 배려하는 일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최소한 다음처럼은 해야 하지 않을까.

'너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

호우의 <공감의 힘>에 나오는, 고대 유대교 율법의 하나라고 한다.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고통스럽다. 타인에게 상처와 모욕을 안기지 않는 일은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봉건 시대가 아니다. 설령 이 시대가 봉건 시대라고 하더라도 '하인'이 '상전' 앞에서 무릎이 꿇린 채 모욕을 당하는 일은 참기 힘든 법이다. 사무장과 조 전 부사장은 상전과 하인 사이가 아니다. 정식 계약 관계로 맺어진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을 하인보다 못한 존재처럼 대했다.

어디 조 전 부사장뿐일까. 우리 주변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해 막무가내의 '슈퍼 갑질'을 저지르는 또 다른 '조현아'가 얼마나 많은가. 팔순을 바라보는 전직 국회의장이 골프장의 여성 경기보조원 성추행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수많은 여대생 제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대학교 교수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도 있다.

이들 '큰 조현아'가 다가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을 종 부리듯 해 결국 한 경비원을 분신 자살하게 만든 '작은 조현아'들은 어떤가. 우리 주변에는 식당이나 마트에서 '왕' 대접을 요구하는 진상 손님들이 정말 많다.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처럼 "고객은 왕"이라는 그릇된 신화에 푹 빠진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부장 아래에서 '미생'처럼 살아가는 과장은 때로는 대리 위에 군림하며 진상질을 한다. 선임병이 만들어준 구타의 추억은 대개 그대로 후임병에게 전해진다.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갑을 문화(?)의 본질을 근원에서부터 차분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크고 작은 '조현아'가 날뛰는 세상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에 이르는 100만 명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4%나 8%로 늘어나지 말란 법이 없겠기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공감, #감정이입, #<공감의 힘>, #<플루토크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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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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