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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민주주의에 속해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선 첫째, 동질성(Homogenitἄt)이고, 둘째, (필요한 경우에는) 이질인 것의 배제 또는 섬멸이다. ····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하는가는 그것이 이방인이나 평등하지 않은 자, 즉 동질성을 위협하는 자를 배제하거나 격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 칼 슈미트(Carl Schmitt).

과거 독일 나치 독재체제가 성립하는 과정에 이론적 자원을 제공했던 법학자 칼 슈미트의 주장이다. 좌와 우를 막론하고 모든 근본주의자들에겐, 모든 전체주의자들에겐 하나의 욕망이 있다. 어떤 하나의 논리 이외의 이질성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동일성의 욕망이다. '다름'은 곧 '틀림'이 되고 처단과 불관용의 대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완벽한 동일성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차이도 없는, 어떤 이견도 없는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일성의 욕망을 품은 이들은 '공동의 적'을 만든다. 적으로 규정된 대상에 대한 공통의 적대는 사실은 이질적인 것들이 마치 동일한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동일시'를 가능케 한다.

하나의 동질적인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은 때로는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고 동일성을 해치는 존재로 규정된 내부의 적, 즉 이질적인 존재들은 타협과 관용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와 섬멸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공세와 테러는 '애국'으로 치장된다. 역사에서 이런 논리의 끝에는 어김없이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의 형성이라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2014년의 끝을 향해 달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바로 그 길목에 서 있다. 

거리로 나온 우익, 칭송되는 백색테러

 <2014인권콘서트>가 열리는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정문 앞에서 어버이연합회원들이 콘서트 개최를 반대하며 집회를 벌이던 중 시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2014인권콘서트>가 열리는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정문 앞에서 어버이연합회원들이 콘서트 개최를 반대하며 집회를 벌이던 중 시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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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이 나라의 '종북사회' 만들기가 다원적 민주사회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극우테러 집단인 서북청년단이 자랑스럽게 부활되고, 수백 명이 참가한 토크 콘서트에 고3 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집어 던져도 '열사', '투사'로 불린다. 한 극우 언론은 테러를 자행한 고3학생에게 법률지원과 재정적 후원까지 약속했다. 온건한 측에서는 '방법은 잘못됐지만 생각은 장하다'며 칭송하는 형국이다.

경찰도 잘못된 메시지를 던졌다. 백색테러 하루 뒤, 테러의 대상이 된 신은미씨에 대한 출국정지조치가 내려지고 황선씨의 가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종북' 혐의다. 경찰 역시 테러라는 방식은 문제가 있지만 우익테러의 대상이 될 만한 문제는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배제와 섬멸을 향한 테러가 단지 북한과 관련된 활동을 펼치는 이들에게만 자행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벌어진 서울시 인권헌장 토론이 보수단체의 방해로 무산되고, 결국 헌장 선포조차 좌절된 것은 내부의 적을 만들어 이질성을 배제·섬멸하려는 논리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분석한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발견된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찬성하는 이들이며 따라서 종북세력이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면 군대 내 성행위가 확산되어 군기가 사라져 북한이 좋아하기 때문에 (동성애 합법화론자들은) 종북세력이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면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가르쳐 자녀들이 에이즈에 걸리고, 이는 결국 남한에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동성애 합법화론자들은) 종북세력이다.

동성애 논란은 사회를 분열시켜 남한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 목적이므로 동성애 찬성론자들은 종북세력이다.

지금의 상황이 공포스러운 진짜 이유는, 이런 백색테러나 비논리적 광기를 자제시킬 사회적 통제기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하루 뒤인 11일 열린 인권콘서트 장에도 10여 명의 우익단체 회원이 난입해 행사를 방해했고, 행사장 앞에는 백색테러를 칭송하는 연설이 가득했다. 종북세력에 대한 배제와 섬멸 논리 확산을 주도한 것이 다름 아닌 국가기관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엄정하고 이성적인 중립적 통제력을 기대하는 것도 허무한 일이다.

종북 척결을 외치는 선두주자 중 한 명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새누리당 내에서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다 제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종북을 반대하면 민주주의를 좀 훼손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반민주적인 폭력과 테러 같은 위험한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위험한 생각이 지금 보수진영 내에서 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하태경 의원조차 느끼고 있듯이 우리나라 거대 여당 내에서까지 이런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며, 정서적으로는 이미 공감하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라는 이야기도 된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나치 독재의 등장을 암시했던 칼 슈미트의 주장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의 적(종북세력)에 대한 배제와 섬멸을 통해 거대한 동일성을 형성하려는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종북사회, 극우 세력만 만들었나?

시민 가로막는 어버이연합 <2014인권콘서트>가 열리는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정문 앞에서 어버이연합회원들이 콘서트 개최를 반대하며 집회를 벌이던 중 지나가던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 시민 가로막는 어버이연합 <2014인권콘서트>가 열리는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정문 앞에서 어버이연합회원들이 콘서트 개최를 반대하며 집회를 벌이던 중 지나가던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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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다. 그들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 재발방지를 기대하는 것이 허무한 일이라면, 그들의 자제력을, 국가기관의 중립적 통제력을 강제해 낼 힘이 과연 우리에게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배제와 섬멸의 논리가 단지 극우·보수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북프레임이 단지 극우·보수 세력의 담론에 머물지 않고 '국민적 프레임'으로 확장된 것은 이 담론이 진보블록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그들이 백색테러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지만, 종북척결 논리에 대한 진보 일각의 공조는 백색테러를 불러온 배제와 섬멸의 논리를 합리화·정당화하는데 크게 일조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노골화된 종북 척결의 광기에 편승한 언론이나 일부 지식인들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대규모 공안사건의 고비마다 넘실댔던 종북사냥의 광기 앞에 자제력과 합리적 이성을 요구했던 이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광기에 편승하거나 거리두기에 바빴다. 이런 저런 이해관계로 인해, 이런 저런 호불호로 인해 종북사회 전면화에 제대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회가 내부의 적(enemy)으로 규정된 이들을 반대자(adversary)로 구별하고, 대립진영을 파괴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을 용인해야할 대상으로 고려하도록 만드는데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관망했다. 그 결과 인명살상을 예고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무한한 자긍심과 떳떳함을 내면화하고, 아무런 통제 없이 비공식적 폭력이 떳떳하게 칭송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방이후 이 나라의 반공독재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백색테러가 다시 재현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이성회복이나 성찰, 스스로의 혁신, 국가권력의 중립성과 엄정함을 요구만 할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역시 이 끔찍하고 유치한 종북사회의 형성에, 칼 슈미트식 이분법적 민주주의의 부활에 기여한 바가 없는지, 의도하지 않게 그들의 합리화에, 정당화에 기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반인권적인 인권운동가들에게 또 다른 인권도 있음을, 억압적인 자유주의자들에게 또 다른 자유도 있음을, 폭력적인 평화주의자들에게 다른 평화도 가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배제와 섬멸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의 어울림이 더 좋은 사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배제의 논리와 백색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성찰과 연대를 통해 우리부터 종북사회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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