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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은빛으로 변해 있다. 눈이 내리면 풍경은 아름답지만, 할 일이 많아진다. 우선 눈이 얼어붙기 전에 대문 밖 언덕의 눈을 치워야 하는데….

으윽~ 이거, 날씨가 너무 추워! 그래도 나가서 눈을 치워야지. 45도 각도로 가파른 대문 언덕은 눈이 얼어붙으면 자동차가 올라 올 수 없다. 목도리를 두르고, 털모자를 쓰고, 털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두꺼운 겨울옷으로 중무장 완료!

 임진강 설경
 임진강 설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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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서 뒹굴어도 춥지 않겠네요. 호호."
"그래도 밖에는 추워요. 이거, 몸뚱이가 곰처럼 둔한데."

나는 곰처럼 뒤뚱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먼저 대문으로 가는 통로를 쓸고, 다음에는 언덕의 눈을 치웠다. 다행히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아 좀 수월하게 눈을 치울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니 곧 열이 난다. 몸은 움직이는 난로라니까. 움직여야 발열이 되어서 춥지 않다.

눈을 쓸다가 나는 눈 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고라니를 비롯해서 들고양이, 너구리, 족제비들을 자주 보게 된다. 더러는 멧돼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흔하게 만나는 야생동물은 역시 고라니다. 고라니 발자국을 바라보니 문득 며칠 전에 자동차에 치인 고라니가 생각이 났다.

 가파른 대문언덕은 눈을 빨리 치워야 한다
 가파른 대문언덕은 눈을 빨리 치워야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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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동물 발자국
 야생동물 발자국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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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매일 집에서만 하루 세 끼를 해먹으니 지겨웠던지 아내가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우리 집 근처에는 식당이 없다. 왕징면사무소 근처나, 진상리 아니면 전곡까지 가야 한다. 꿩만두를 먹어볼까 하고 우정리 황해냉면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는다. 겨울이라 손님이 없어서 문을 닫았을까?

왕징면사무소 앞에 있었던 홍합짬뽕집도 문을 닫아버렸다. 얼큰한 홍합짬뽕은 이 추운 겨울에 아주 제격인데… 유동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이곳은 겨울철에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식당이 많다. 삼화교 건너편에 있는 웰빙 식당으로 가보니 그곳도 문을 닫아버렸는지 썰렁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임진교를 건너 진상리 할머니 순두부집으로 가기로 했다. 할머니 순두부집으로 가니 사람이 꽤 많다. 우리는 돼지불고기 찌개를 시켰다. 싱싱한 상추에 돼지고기를 볶아서 먹는 맛이 제법 괜찮았다.

할머니 순두부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임진교를 건너 미산면사무소 입구 삼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 올라와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이크!" 나는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약 100미터 쯤 떨어진 전방이어서 나는 다행히 고라니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흰색 승용차 뒤쪽 본 네트에 그만 고라니가 치여 공중으로 붕~  튀어 올랐다가 도로에 나뒹굴어지는 게 아닌가! "아이고, 맙소사!" 정작 고라니를 친 승용차는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저 고라니를 어쩌지요!"
"글쎄, 큰일 났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승용차 치인 고라니는 다행히 바퀴에 깔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잠시 쓰러져 있던 고라니가 벌떡 일어나 놀란 듯 황급히 도로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아닌가!

"휴우~ 천만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요."

고라니는 차에 치이는 순간 잠시 기절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밖으로 뛰쳐나간 고라니는 힘이 부친 듯 멀리 가지 못하고 곧 주저앉아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를 슬슬 몰고 고라니를 따라갔더니 고라니는 놀라며 다시 죽을 힘을 다하여 뛰어갔다. 그러나 그 속도가 별로 신통치가 않다. 아마 어딘가 크게 상처가 난 모양이다. 고라니는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를 반복하며 들판으로 뛰어 달아났다. 그 모습이 너무나 힘겹고 애처롭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 땅의 주인 격이기도 한 고라니는 서식지를 잃고 저렇게 상처받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인간에게 사살당하고, 로드 킬(Road- Kill, 길 위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음)로 수없이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속도로에서만 연간 2000여 건의 로드 킬로 인해 야생동물의 90퍼센트가 즉사를 한다고 한다. 또 지리산 일대에서만도 연간 3000여 마리가 로드 킬을 당한다고 한다(EBS  2014년 7월 25일 방송 '하나뿐인 지구' 참조). 로드 킬을 당한 야생동물 중에서 고라니가 88.6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고라니들의 수난시대다.

로드 킬은 인간에게도 큰 피해를 끼친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야생동물을 피해 차를 돌리다가 전복되거나, 앞서 가는 차가 로드 킬을 당해 급정거를 하게 되면 충돌하는 등 대형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크다.

자동차의 천국인 미국의 경우는 한 해 로드 킬이 30만 건이 발생되는데, 이로 인해 연간 200명이 사망하고, 자동차 수리비용만도 28억 달러가 들어간다고 한다.  달리 보면 자동차 천국이 아니라 자동차로 인해 지옥으로 변한 꼴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로드 킬을 예방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에서는 도로 반경 1㎞ 내에 동물이 접근하면 신호가 들어와서 운전자가 알 수 있게 하는 '사전 안내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엔 시민들의 SNS 제보를 통해 로드 킬 지도를 만들어 표시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현재 국내의 경우 가장 적극적인 대책은 도로변에 울타리를 설치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로는 국토 전체에 거의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 이를 합하면 무려 10만km가 넘어 세계에서도 면적 대비 가장 조밀한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울타리를 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현재는 로드 킬 예방을 위한 특별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그 위험과 책임이 운전자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운전자가 조심을 하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EBS <하나뿐인 지구팀>도 자동차 '속도'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전자들은 제한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리고 있다.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인 지방도로에서 운전자들은 보통 시속 80km로 주행을 하고 있으며, 시속 80km인 국도에서는 100km내지 120km로 과속 하고 있다고 한다.

 임진강변에서 만난 고라니. 너무 귀엽다(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변에서 만난 고라니. 너무 귀엽다(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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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지구>팀은 로드 킬을 줄일 수 있는 속도를 모의실험을 통해 알아보았는데, 시속 80km일 때는 대처시간도 없이 곧바로 인형을 받아버리고, 60km일 때도 제동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시속 50km로 운행을 하자 비로소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로드 킬을 어느 정도 예방 할 수 있었다. 시속 50km의 속도에서는 15m만 안전거리를 확보하면 로드 킬의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로드 킬의 완전한 해답은 없지만, 지방도로나 국도에서 10km만 속도를 줄여도 로드 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 고라니를 친 운전자도 아마 시속 80km 이상으로 주행을 한 것 같았다. 그는 고라니를 치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순식간에 빠른 속력으로 휙 지나가 버렸다. 바로 그 뒤에 승용차가 한 대가 따라오다가 주춤하며 지나갔다. 앞차가 고라니를 정면으로 받았더라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이곳 휴전선 인근에 위치한 연천은 고라니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임진강변 습지, 밭두렁이나 논두렁, 야산, 도로에서도 고라니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만나는 고라니는 너무 순하고 귀엽다.

 논에서 만난 고라니(연천군 왕징면 유촌리)
 논에서 만난 고라니(연천군 왕징면 유촌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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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흔한 고라니는 전 세계에서 중국 일부 지역과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종으로 생물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야생동물이다. 중국에서는 고라니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동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고라니가 멸종될 확률이 높은 종으로 간주하여 '취약' 종으로 고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하여 고라니를 수렵 동물로 지정하여 사냥까지 허용되고 있다. 고라니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도 야생동물도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도록 노력을 해야하는데 현실은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도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신고제를 도입하여 우선 '야생동물 보호 경고' 안내 표지판이라도 곳곳에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운전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지날 경우에는 반드시 제한속도를 준수하여 로드 킬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이 추운 날 자동차에 치인 고라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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