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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탐욕이 안전장치들을 마구 풀고 있는 지금, 언제 누가 재난과 참사의 희생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와 방향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에서는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인권선언 운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문화예술인행동 '세월호, 연장전' 전국문화예술인행동 '세월호, 연장전(延長戰)'이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문화예술인대책모임,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 세월호희생자·실종자·생존자가족대책위 공동주최로 열렸다. '304개의 빈자리'가 설치된 광화문광장에서는 4시간 16분 낭독·음악회 '기억하라, 기록하라', 책일기와 노란배접기, 만화인 동행전 '일어나라! 0416', 현장영화촬영 '이 선을 넘어가시오', 그림전 '잊지 않을게', 연극, 광화문 버스킹, 춤꾼마당, '그네타기', 추모 슬라이드전 등이 펼쳐졌다.
 전국문화예술인행동 '세월호, 연장전(延長戰)'이 11월 1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문화예술인대책모임,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 세월호희생자·실종자·생존자가족대책위 공동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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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참사를 겪으며 우리 유가족들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말과 행동들 때문에 숨이 막혔었다. 막말을 듣고, 유가족 앞에서 혐오하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럴 수가 없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 행동들 앞에서 가족들은 돈보다 못한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리저리 휘둘리고 인정사정 없이 밟혀야만 했다.

4·16참사에 인권은 없었다. 구조가 최우선이었던 4월 16일 오후,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구조를 막았다. 그것이 지휘체계에 따른 것이건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이해득실을 따진 것이건,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300명이 넘는 생명이 배 안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가족들과 국민들이 배가 침몰해가는 것을 지켜보게 한 정부의 태도는 잔인함을 넘어서 살인에 버금가는 행위이다. 대한민국에서 인권은 침몰하는 세월호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모든 생명이 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혼자 살기에 급급했고 해경도 선원들 구하기에만 바빴다. 그들에게 배에 남은 304명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구조를 기다리다가 창문 밖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해경의 모습을 봤을 때, 심지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외면하는 해경의 모습을 봤을 때, 배 안의 아이들과 다른 승객들이 느꼈을 분노와 좌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가루로 부서지는 느낌이다.

4월 16일 이후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안타까운 소식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온 이들도 많았지만 가족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와서 기다린 이들이 있었다. 바로 사복경찰들이다. 구조인력보다 더 많은 수의 사복경찰들이 미리 와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정부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진실 요구하는데 사찰과 무시와 집시법으로 목을 조였다

정부는 위로받고 도움받아야 할 사람들을 오히려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치부하며 감시했다. 대화 내용과 행동을 끊임없이 녹음하거나 채증했고 통신내역도 사찰했다. 우리들의 분노와 슬픔을 범죄행위처럼 몰고 갔다. 우리 유가족의 인권은 정부에 의해 이렇게 철저히 파괴당했다.

국회와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가족들이 수없이 들은 말은 '집시법 위반'이다. 이 단어를 로봇처럼 반복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만리장성보다 더 단단하게 가족들을 에워싸는 차벽과 경찰들을 보면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의사표현과 집회의 자유'는 이 나라에는 없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청와대의 싸늘한 반응을 마주 대하면서 '더 이상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구나, 아니 최소한 모든 국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만 인권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부당한 일이다.

처음 참사가 벌어졌을 때 사복경찰 다음으로 많이 온 사람은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인들이다. 그들에게 우리 유가족들은 위로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시청률과 구독률을 올리기 좋은 자극적 소재일 뿐이었다.

허락 없이 아무 때나 코앞까지 카메라를 경쟁적으로 들이밀었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으로 가족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언론 앞에서 가족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벗겨졌다. 거기에다가 편집을 통해 왜곡 보도된 기사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댓글들을 불러왔다. 인권을 말하고 지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인권을 먹잇감처럼 집어삼켜 버렸다.

304명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겨진 가족들이 겪은 인권의 상실은 먼저 간 304명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윤극대화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자본가의 무한탐욕에 밀려 생명을 빼앗겼다. 우리 아이들과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마땅히 사용됐어야 하는 비용들이 기업에게 돌아가고, 기업과 결탁한 정치인,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눈감아주는 정부에게 흘러들어갔다. 이러한 은밀한 뒷거래에 304명의 인권은 아무렇지도 않게 폐기됐다.

1년도 안 된 지금, 온갖 의혹이 그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고 어느 한 사람 책임지지 않는데도 '지겹다' '그만해라' 한다. 돈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아홉 구의 시신을 품고 있는 배의 인양을 문제 삼는다. 한 인간의 존엄은 죽은 이후에도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짐승과 다르게 인간에게 장례문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시신 수습은 한 생명이던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권행사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런 권리마저 빼앗겠다고 한다.

우리 가족들이 4·16참사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생명보다 돈을 귀하게 여길 때 생명은 사라지고 돈만 남을 것이다. 돈보다 생명이다. 생명도 그냥 생명이 아니고 모든 생명이다. 함께 살아남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제는 생명에 대한 가치와 보호를 위해 인권을, 그리고 안전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유가족들은 그 긴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하고, 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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